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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Aug 11. 2019

디테일을 디테일하게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LA 비빔밥 푸드트럭 이야기, 그 세 번째.

(지난 이야기에서는...)

LA에 도착한지도 4일이 지났다.

하루에 3시간씩 전화기를 돌리고, 

일잘러의 기본을 어쩌다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젠 진짜 장사를 해야 하는데... 뭐부터 결정해야 할까?




0.

디테일.

세계 최고의 명품들부터 수많은 매니아들을 거느린 패션 브랜드와 

아티스트, 자동차 회사, 그리고 식당까지. 

성공한 존재들의 인터뷰를 보면 비결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의 비결 중에는 '디테일'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영어 격언에도 있지 않은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이 '디테일'이란 건 도대체 뭐고, 왜 중요한 걸까?

대학생 때부터 즐겨읽던 매거진 B에 심심하면 나오던 이 '디테일'이란 유령.

이 유령의 실체를 목격하게 된 건 3개월 간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얻은 나의 자산 중 하나다. 



1. 

D-7.

첫 영업을 앞두고, 

나와 10명의 백패커스 팀원들이

결정해야 할 것들은 크게 3가지였다.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건 장소였다. 오전 11시 ~ 오후 1시까지, 

3시간 남짓 한 점심시간 동안만 영업을 할 수 있었고, 

판매장소를 옮기는 것이 자유로웠기에 

그만큼 '목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LA 근처 베니스 해변가 근처를 새로운 영업 장소로 

개척하기 위해 트럭을 주차했다 주먹다짐까지 갈 뻔하기도 했다.) 


3일간 팀원들과 열심히 토론하고,

장사할 만한 '스팟'을 찾기 위해 

UBER를 타고 LA 곳곳을 돌아다녔다.

다른 푸드트럭들이 모여있다 싶으면 구글 지도에 표시해두고,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푸드트럭들이 어떤 음식을 파는지, 

얼마에 파는지도 발품을 팔며 조사했다.


4일의 기간 동안 밤낮을 안 가리고 돌아다니면서,

우린 기본적인 준비를 마쳤다고, 

우리가 생각해둔 장소에 가서 

장사만 잘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첫 장사에서 3시간 동안 20그릇도 못 팔고 

멘탈이 탈탈 털리기 전까지는.



2.

우리 뭐한거야?

그러게. 나도 진짜 궁금했다. 

4일 동안 그렇게 '새빠지게' 조사를 했는데 왜 이것밖에 안 나가지.

말이 좋아서 3시간에 20그릇이지, 

1시간에 10그릇도 안 됐고, 

6분에 1그릇도 못 팔았단 얘기였다.


다른 날도 장사가 안 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당혹감과 속상함만 짊어지고 숙소로 돌아온 지도 4일.

주말 동안 우린 다음주 장사를 위해 재료들을 다듬고,

우리가 어떻게 장사를 했는지를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그리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장사가 왜 안 됐는지 너무나 명확해졌다.

장사하는 날 침대에서 일어나는 날부터 

트럭을 준비하는 그 순간까지, 사방이 구멍투성이였다.

요즘 마음고생 많이 심하신 백종원 선생님께서 

그 때의 우리를 보셨다면 열받다 못해 몸져 누우셨을 거다.

장사는 정말로 전쟁터가 맞았다. 우린 장사가 모험이라고 착각한 애송이들이었고.



3. 

진짜 디테일은 

우리가 알던 그게 아니었다.


'어디서'는 그냥 '어디서'가 아니었다.

1. 우리 제품 (비빔밥)에 매력을 느낄만한 사람들이 많은 곳.

2. 다른 푸드트럭들이 모여 있어 목표 시간대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

3.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운영이 합법적인 곳.

4. 주먹다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이 바로 '어디서'였다.


'어떻게'는 상태가 더 심각했다.

생각나는 것만 적어봐도...

1. 채식주의자 고객들을 위한 메뉴가 따로 있는지.

2. 비빔밥이 처음인 고객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할 건지.

3. 우리가 파는 메뉴를 주문하는 과정은 어떻게 설명할 건지.

    3-1. 안내 카드? 직접 말로 설명? 영상으로?

    3-2. 메뉴판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나?

    3-3. 어떤 메뉴를 중점적으로 밀어야 하나?

...

이런 것들이 거의 고려되지 않은 채 장사를 했으니,

당연히 잘 될 리가 없었다.

'디테일'이란 단어의 무게감을 그 때 처음 생생하게 느꼈다.

아, 이게 진짜 디테일이구나.



4. 

복습.

우린 복습을 하기로 했다.

바둑 선수가 대국 후 판을 복기하듯.

수험생이 모의고사를 마치고 오답노트를 적듯.

매일매일의 장사를 찬찬히 뜯어보고 기록했다.

땀에 절은 채, 영혼이 60%쯤 탈출한 눈빛으로

회의를 하고, 기록하고, 다음 장사에 적용하려 했다.

그리고 우리가 고민한 디테일의 내용만큼,

딱 그만큼 우리의 실적은 좋아졌다.

매일의 영업을 마친 후, 아무리 피곤해도 꼭 팀원들끼리 모여서 회의했던 내용들. 시간이 지날수록 디테일이 붙었다.


3시간에 20그릇도 못 팔던 우리는

1개월 후 60그릇을, 1개월 반 후에는

3시간만에 150그릇을 팔 수 있었다.

2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을 기록해두고,

어떻게 우리의 영업에 적용할지를 고민했다.

메뉴판의 폰트 크기부터 DP할 제품 배치,

호객하면서 말할 대사들, 빌지 뒷편에 휘갈겨 

적어둔 단골 고객들을 관리하기 위한 방법까지.

그런 작은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결과로 나타났다.




5.

되돌아보기.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내가 생각하는 디테일의 다른 말.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정한 순간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잘못된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수정하는 것.

그게 미국에서 비빔밥을 팔며 배운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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