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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Jul 28. 2019

'일잘러'의 필요조건

LA 푸드트럭 이야기, 그 두 번째.

 한국에서 교육을 마치고, 나를 포함한 11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16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논의했다. 영업 개시까지 주어진 시간은 1주일. 그 안에 기본적인 준비를 마쳐야 했다. 재료는 어디서 어떻게 구할지, 비빔밥은 얼마나 언제까지 준비해야할지와 같이 할 일들이 산더미였고, 우리는 일단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바로 사회 공헌 활동을 어떻게 유치할 것인가였다. 장사 하나 제대로 하기도 힘들 텐데 웬 사회 공헌인가 싶겠지만, 성공적인 영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사회적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이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공헌할 일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내에서 건강한 식품을 구하기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어려운 지역인 Food Desert, 식품 사막에서 공공 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건강한 식생활의 중요성과 실천 방법을 알리는 것이었다. 비빔밥은 그 과정에서 우리의 상징이자 매개체가 되어줄 것이었고. 여기까진 좋았다. 단순한 영업을 넘어서 우리가 직접 사회에 공헌할 프로젝트를 만들어보고, 실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그렇게 팀원들과 함께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지를 정리해보았다. 연락할 공공기관들 리스트업하기, 프로그램 기획서 쓰기 등등. 이 과정에서 생각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전부 영어로 준비해야 했고, 특히 기관들에 연락을 해서 우리를 소개하고 협업을 요청하는 일은 전적으로 내가 맡아야만 한다는 것. 나라고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 영어를 가장 많이 해 본 사람이었기에 내가 연락과 커뮤니케이션을 맡아야 했다.


그렇게, 나의 아메리칸 텔레폰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조사하며 리스트업한 단체들의 일부.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연락하고, 거절당하는 게 미국에서의 첫 번째 일이었다. 


 다른 팀원들이 프로그램 기획을 하는 동안, 나는 고색창연한 삼성 폴더폰을 붙잡고 전화를 돌렸다. 하루에 3시간씩 전화를 걸고, 매몰차게 / 가열차게 / 차갑게 거절당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건 눈에 보이고, 어떻게든 우리와 함께할 만한 단체를 찾아야 했기에, 내 마음은 더 급해졌다. 


결국 사흘 째 되던 날, 머리를 식힐 겸 산업공학을 전공한 팀원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결과가 잘 안 나온다, 너무 많은 곳에 연락을 해야 해서 관리가 되지 않는다와 같은 푸념을 늘어놓자, 그 친구는 내 마음에 오래도록 파장을 남긴 말을 건넸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차트를 만들면 편할 거에요.
같이 만들어봐요!



왜 표를 만들어서 진행 상황을 체크하지 못했을까보다도, 

나 혼자서 이 일을 맡아서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만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가 한참을 머릿속에 맴돌았다. 


한편으론 정말, 정말 부끄러웠다.

오직 나만 할 수 있다고, 내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 혼자 다 하려 했으니,

다른 팀원들 입장에서는 나와 함께 일하기가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부끄러움이 온 몸을 감쌌다.

도와줄 수 있겠냐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 두 마디만 했으면 훨씬 빨리 해결됐을 텐데.


그 친구의 도움 덕분에, 갈 길을 모르던 나의 업무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바로 이렇게.


기관 이름과 연락처는 물론, 선정 이유와 협업 방식, 진행 상황등을 모두 한 번에 관리할 수 있게 만든 차트. 


 차트로 진행 상황을 정리하니, 명료하게 해야 할 일이 파악되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장점을 발견했다. 어떤 일을 할 때 왜 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게 중요했다. 일을 생각하면서 한다는 것. 시간에 쫓겨서가 아니라,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어떤 이유로 이 일이 필요한지를 이해해서 어떻게 할지를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것. 난 이 때의 경험으로, 정말로 일을 잘 하는 것의 시작점을 발견했다.



소위 말하는 '일잘러' (일을 잘 하는 사람들)로 인정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양하다.

뛰어난 분석력과 집중력, 명확한 표현력, 중요한 것을 잡아내는 통찰력 등.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을 받들어주는 기반은 아래의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잘 하고 못 하는지 파악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것.

일의 목적과 단계를 생각하면서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일잘러'의 시작과 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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