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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Jun 05. 2018

LA에서 비빔밥 팔아보신 분?

국제통상을 공부하던 평범한 대딩은 어쩌다 마케터가 되기로 했는가

#1. "진수 씨는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막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고 스타트업에서 인턴 자리를 알아보던 2016년 5월, OEC 대표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말이었다. 그때 나는 무역을 공부하다가 우연히 하게 된 대외활동으로 마케팅이라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마케팅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인턴 자리를 찾던 때였다. 인턴 자리를 제안받은 적도 있었지만, 2학년이라는 제한 때문에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곳이 스타트업과 대학생들을 매칭 해주는 '스타트업 인턴즈' 프로그램이었고, 그 프로그램의 대표님은 상담하던 중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진수 씨, 장사 안 해볼래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나를 추천해 주시겠다는 말이었다. 현지에서 비빔밥을 운영하는 푸드트럭의 상품 기획부터 고객 응대와 관리, 판매 및 마케팅 전략까지, 비즈니스 전체를 두루 경험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주저 없이 지원했다. 그렇게 3개월을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 마케터가 되어야겠다고.




#2. '마케팅'이 무슨 일인지에 대한 정의는 천차만별이다. 물건 잘 팔리게 만드는 사기라는 말도 있고, 광고와 마케팅이 거기서 거기라고도 하며,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주는 과정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3달 동안, 1주일에 6일씩 하루에 12시간을 쏟아부으며, 나는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마케팅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믿음이 섰다. 



"저 이거 처음 먹어보는데, 왜 진작 안 먹었는지 모르겠어요."
"고마워요. 항상 먹던 거 지겨웠는데 진짜 맛있고 좋네요."
"언제 와요? 다음 주에도 또 오는 거죠?"


영업 초기 3시간 동안 30명도 오지 않던 우리 트럭은, 3달이 지난 후 150명이 넘게 몰려오는 트럭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고,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려 노력했다. 우리 트럭을 처음 본 과정부터 비빔밥을 손에 들고 떠나는 과정을 하나하나 지도로 그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했다. 


트럭을 운영하며 사용한 메뉴판과 디스플레이. 어떤 형태가 더 눈에 잘 보일까, 더 이해하기 쉬울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정하며 완성된 형태이다. 


그 결과 우리 트럭을 좋아해 주는 '팬'이 생겼고,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먼저 찾는 단골들도 생겼다. 비빔밥 그릇을 들고 신기해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미소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 마케팅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기쁨을 주는 일.
삶을 편리하게,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일.



#3. 인생에서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던 나에게, 보다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 마케팅은 단순한 직무가 아니라 나의 삶의 방식으로 다가왔다. 직접 경험해보니 더욱 가깝게 다가오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무역학도의 길을 내려놓고, 마케터의 길을 걷기로 했다. 마케팅을 하기로 한 결정을 내린 이후로 커리어 컨설팅 스타트업에서 마케팅 인턴을 했고, 운이 좋아 컨설팅 RA (Research Assistant)도 했으며, 지금은 '책은 도끼다'의 저자로 유명한 박웅현 CCO님이 계신 광고회사 TBWA에서 주니어보드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걸까 싶고, 한편으로는 마케터로의 길을 나름대로 잘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스타트업 인턴을 하며 경험하고 성장한 이야기들을 공유했다. 한 때 이야기를 듣던 입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기에, 남다르고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하기나 해
그냥 하기나 해
어차피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깐
재밌게 즐기자구 그냥 하기나 해
- 그레이 (GRAY), "하기나 해"


주변에서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고, 마케터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취업을 걱정하고, 경험이 없어서 불안해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지금의 나는 유명한 기업의 마케터도, 전문가도 아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의 입장에서, 나는 관심 있는 것들을 찾고 무엇이든 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내가 경험해본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사람에게 소문내는 것이 기쁘다면, '이런 것도 있어!'라며 친구들에게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아니라도 세상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고 체험하는 것이 두근거린다면, 당신은 이미 마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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