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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Jul 14. 2018

내 신발 밑창이
조금 더 빨리 닳는 이유

발자국에 나의 경험과 느낌을 담다

누구나 자신이 아끼는 공간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집에 있는 방일 수도 있고, 제일 친한 친구들과 뭉치는 술집일 수도 있으며, 조용하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좋은 카페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합정역 근처에 있는 빈브라더스라는 카페이다. 카페라고는 스타벅스와 이디야, 투썸이 전부인 줄 알았던 용인시 촌놈에게, 그 곳은 새로운 문을 열어준 공간이었다. 빈브라더스 합정은 카페라기보다는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혼자 오거나 친구들, 연인과 함께 오거나 어디든 자연스럽게 앉을 수 있는 좌석들, 손님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내려주는 바리스타들, 커피가 담긴 컵에 꽂혀 있는 원두 안내 카드까지. 단순히 커피를 사서 마시는 곳이 아닌, 어떤 브랜드를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은 그 카페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고. 그 곳에서 나는 메세지와 컨셉을 담은 공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를 느꼈다.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닌, 커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다가온 빈브라더스.



그러면 다른 곳에는 어떤 공간이 있을까?
나에게 새로운 영감과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이 있지 않을까?




나의 독특하다면 독특한 취미인, ‘공간 발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이폰과 블루투스 이어폰, 보조배터리만 챙긴 채, 잡지나 책, SNS 등에서 본 기억에 남는 장소들을 무작정 가 보는 것이 내 취미다. 여기서 포인트는, 정말 무작정 가 보는 것. 장소의 이름과 위치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2년 동안 이 취미를 이어 오면서, 나는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는 기쁨은 물론, 그 공간을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새로움을 통해 영감들과 아이디어들을 정말 많이 얻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지와도 같은 현대카드 바이닐 앤 플라스틱.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 공간의 좋은 예로, 이태원 3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현대카드의 바이닐 앤 플라스틱이 있다. 현대카드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드에 자주 표시돼서, 이 곳은 어떤 곳일까 해서 무작정 가 본 첫 번째 장소여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운영을 시작할 때부터 큰 화제가 되었던 이 곳은 기존의 음반 샵과는 상품들을 배치해 둔 구조부터 많이 다르다. 장르별로, 신제품 순으로 배치하는 것 이외에도 테마를 정해서 앨범들과 LP들을 배치한 거의 최초의 가게이다. 입구 한 쪽에는 애완견들이 물을 마실 수 있는 곳도 앙증맞게 마련되어 있다. 바닥에 그려진 헤드폰 로고에 서야만 들리는 음악들,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잡지들은 공간을 기획하고 구성한 사람들의 세심함을 잘 보여준다. 매장 한 켠에는 서울 내 다른 LP 판매점들을 간단하게 표시해 둔 가이드 책자까지 마련되어 있다. 이렇게 단순히 앨범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런 음악도 한 번 들어보라고 옆에서 안내해 주는 듯한 느낌이 이 곳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케팅이나 광고에 대한 생각을 딱히 하던 때가 아니었는데도, ‘사람을 배려하고 새로운 생각을 주는 공간이 이런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공간이어서 나에게는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기분에서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마스다는 같은 매장도 아침의 기분, 점심의 기분,
저녁의 기분으로 몇 번을 본다.
- 마스다 무네아키,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끌어들이는 공간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마스다 무네아키의 말처럼, 꾸준한 관심과 관찰,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말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오는 것 같다. 꾸준하게 그런 곳들을 찾아다니며 발견하는 새로움에 대한 기쁨, 각자의 매력적인 스토리들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 덕분에 나는 더 다양한 곳들을 누비고 있고, 그런 곳들에 대한 감상을 사진들로 붙잡아두고 있다.


그 동안 돌아다니며 영감을 얻은 공간들을 찍어보았다. 카페부터 전시장, 도서 큐레이션, 편집샵까지. 찾으면 찾을수록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는 역시 ‘힙’한 장소들일 것이다.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게 절묘하게 숨겨진 카페와 술집들, 핫한 연예인들이 방문해서 유명해진 클럽과 같은 곳들. 이런 장소들에는 많은 좋아요와 하트, 공유가 몰리고, 곧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된다. 새롭고 색다른 장소들을 알 수 있어 좋지만, 한편으로는 공간에 대한 취향마저 비슷비슷해지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소셜 네트워크 피드에서 보이는 힙함이 아닌 나만의 힙함을 찾고 싶다면, 가끔은 무작정 가방을 들쳐메고 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내가 신는 신발들은 조금 더 빨리 더러워지고, 밑창이 빨리 닳는다. 그리고 그렇게 때묻은 신발들에는 내가 혼자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공간들에 대한 감상과 기억, 느낌들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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