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k walls

좌충우돌 알래스카 적응기

by voyager 은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여러 장벽 중 '가장 크게 느껴졌던 장벽'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세요.




'Brick walls are there for a reason,
They give us a chance to show how badly we want something."

장벽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게 해 줍니다.





오늘의 주제는 이곳 알래스카 섬에 처음 왔을 때 정말 많이 고민했던 부분을 꽝 하고 터트려주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장벽은 '문화의 장벽'이다.


문화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문화(culture)라는 말은 경작이나 지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cultus)에서 유래했다.

문화를 단순히 이것이라고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문화 안에는 정치나 경제, 법, 예술, 도덕, 종교 등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고 공유되는 어떤 생활양식들을 포함한다.


한국을 생각해 본다면 같이 밥을 먹는 것이 일종의 '문화'이다. 수저를 사용하는 '문화'가 있고 어른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다. 청소년들은 청소년들만의 '문화'가 있다.

한국에 살면서 제일 싫어했던 문화는 나이와 서열을 가리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이름을 소개하고 나서 바로 몇 살이냐고 묻는다. 그 후에 자동적으로 언니, 오빠, 동생, 선배, 후배로 서열이 정해진다. 이것은 보편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절대 먼저 나이를 물어보지 않는다. 그것은 실례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것, 나이로 우열을 먼저 가리지 않는다는 것, 내가 동경했던 문화다.

아시아 문화에서는 서로가 의존적인 부분들이 많다. 많이 연결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시선과 말을 늘 의식한다. 그에 반해 이곳 문화는 굉장히 독립적이다.

"independent" 이곳에 와서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다. 특히 알래스카 사람들은 independent가 더 심하다고 한다.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해서 그런 것일까?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다르다.






오래전부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을 꿈꿨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배우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양 문화에 대해 특별히 더 많은 정보나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동양 문화가 익숙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서양 사역자와 아시아권에서 함께 일했던 한국분이 말해주었던 내용이다. 그들은 냉장고를 같이 사용했는데 서양에서 온 사역자가 우유에 본인 이름을 써놓았다고 한다. 현지인이 그 이름이 적힌 것을 보고도 우유를 자기 것처럼 허락 없이 마셨다. 서약사역자는 너무 화가 났고, 우유를 마신 현지인은 오히려 그 사람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냉장고를 같이 쓰기 때문에 이름을 써놓은 것은 전혀 의미가 없고 우유는 공용이라는 주장이었다. 서약사역자와 현지인의 문화와 관점의 차이다. 이들이 왜 힘들었는지 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차이를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알래스카에 와서 살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미국에 온다는 개념보다는 이곳 원주민들과 같이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왔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정서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 올 때 문화충격에 대한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비슷한 문화니까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섬에는 백인, 알래스카 원주민, 필리핀 사람들, 소수의 아프리카, 중국, 일본, 한국 사람들이 산다. 내가 같이 일하는 분은 75세, 69세 백인 할아버지, 할머니이다. 그분들을 처음 만났을 때 서양인이지만 어떤 면에서 동양인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것에 문화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아무리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사전 준비가 없었던 내게 문화충격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분들도 나도, 기본적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수용하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오랜 시간 자라온 문화의 배경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많은 스토리가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질문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관계 안에서 단계가 있듯이 폭풍과 같은 시간이었다고 할까... 그렇다고 싸우거나 관계가 틀어진 것은 아니다. 나의 내면의 갈등을 표현한 말이다.

많이 혼란스러웠고 힘들었다.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지 찾고 싶었다. 아시아 문화인 한국 문화를 입고 이곳에 온 나, 서양 문화 속에서 자란 두 분, 신앙이라는 공통적인 분모가 있지만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게다가 윗집 케냐 아저씨의 아프리카 문화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종종 있었다. 물론 그들도 나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장벽을 심하게 느꼈을 때 동양과 서양의 문화차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작은 너무 힘든 마음과 갈등으로 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흥미로웠다. 기회가 된다면 문화인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 문화, 대륙권에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지 신기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 관해 유튜브를 검색했다. 대부분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생각의 지도>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파친코>의 이미진 작가 '하버드 래드클리프 펠로우십 강연'을 통해 또 다른 통찰력을 얻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문화 장벽을 한 고비 넘어갔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것은 그렇게 문화의 크고 작은 장벽을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스스로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no라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성격상 그렇기도 하지만 한국 문화권에서 no라고 하면 안 된다는 압박을 은연중에 받았다. 신분상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나의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삶이 피곤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no라고 말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 피곤함을 선택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no라고 했던 때가 기억난다. 문자에 no라고 쓰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큰 기쁨과 자유함을 느꼈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었지만 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문화라는 거대한 장벽을 계속 넘어가고 있다. 때로는 좌충우돌, 이것이 맞는 것인지 잘하는 것인지 고민될 때도 있다. 매일 사용하는 영어조차 그렇지 않은가! 언어는 문화를 담고 있기에...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 문화의 장벽을 넘어가는 것을!


이곳에서의 삶은 매일이 새롭고 또 새롭다. 이 말의 의미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힘들 때가 많다. 사람이 변한다는 게 얼마나 큰 도전인지...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것은 그렇게 배워 갈수록 변화할수록 나의 생각과 정서가 더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느낌, 기분, 감정! 이 너무 좋다. 단일 문화권에서 계속 살았다면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도전!

마치 허들 선수처럼 오늘도 나는 새로운 문화의 장벽을 점프하며 뛰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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