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것들 | 단어 에세이
나는 손 들지 않고 주저하는 나를,
대표로 줄곧 선택해 왔다.
<'대표'의 사전전 의미>
1. 전체의 상태나 성질을 어느 하나로 잘 나타냄. 또는 그런 것.
2.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
흔히들 알고 있듯 무언가를 대표한다는 것은 책임을 져야 하고, 모두의 앞에서 방향을 잘 잡아야 하는 그런 무거운 자리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왔다.
어릴 적 발표 시간, 제일 먼저 손드는 일 같은 건
내 인생에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누구보다 먼저 떠올랐더라도, 꾹꾹 참았다가 적당히 네다섯 번째쯤 되어서야 조심스레 손을 들던 아이였다. 혹여 중간에 내가 생각한 의견이 먼저 나와 버리면, 그마저도 기회는 없어져버리고 마는. 내 의견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내가, 대표라는 자리에
서는 건 영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와는 달리 내 아이는 클수록 발표를 좋아했고, 발표해 내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가족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모두를 앉혀두고 공연을 하거나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내심 부러워지곤 했다. 한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반장 해본 적 있어?"
당연히 없었다. 손을 들지를 않았는데 그런 기회가 내게 있었을 리 없지.
"엄마는 용기가 없어서 손을 안 들었어.
근데 사실은 반장 하고 싶었던 것 같아."
라고 대답했더니 아이가 대답했다.
"손을 들었으면 반장이 됐을 텐데 기회를 놓쳤네!"
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나는 손을 들지 않는 매 순간 기회를 놓쳐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대표라는 말은, 어딘가 고착화된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했다. 한 번 대표로 나서면 그 이미지가 내 이름처럼 굳어버릴까 두려웠다.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든, 대표라는 자리는 곧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낙인처럼 작용할 것 같았다.
특히나 그 낙인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대표하는 어떤 무리의 낙인이 되기도 하니까 마음이 배로 무거워졌다.
그게 어린 나에게는, 반장이 되고 싶었지만 못 된 아이, 발표하고 싶어서 번쩍 손을 들었지만 선택받지 못한 아이라는 낙인이 될까 봐 두려움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늘 뒤에서 지켜보거나 조력하는 쪽을 택하며 수많은 기회들을 내 가슴 한편에 버려둔 채 켜켜이 쌓아갔다.
그런 내가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는 점점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 일은 내가 대표가 되어야만 가능한 것들이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또한 그렇다. 결국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써 내려가야 하는 내 목소리이니까. 출판사 창업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대신 앞장서 줄 수 없는 일이다.
합평수업을 할 때면 질문을 받을 때도 있고, 내가 나서서 질문을 하거나 답변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여전히 나는 어린 나처럼 적당한 때에 손들기를 선택한다. 그래도 이제는 한 세 번째 정도는 되려나.
가끔은 첫 번째로 손을 들고 말을 할 때도 분명 있다. 그건 종종 내가 구상한 설정이나 캐릭터를 대변해야 할 때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들어낸 내 것들을 지키기 위해 책임지고 나서는 일들에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이고, 내가 가장 잘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내가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편들어 줄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그러면 나는? 누가 나를 대표해 주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책임지고 설명해 줄 사람 역시 나뿐이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나는 손 들지 않고 주저하는 나를, 대표로 줄곧 선택해 왔다. 대표라는 단어에는 여러 얼굴이 숨어 있다. 요즘 말로 본캐와 부캐가 있듯, 내가 선택하는 본캐나 부캐가 나의 한 부분을 대변해 주기도 하고 그게 꼭 나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그저 내가 필요한 때에 적절한 얼굴을 대표로 드러내면 충분하다 생각하니 한결 편해졌다.
내가 쓰고 그려낸 캐릭터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대표하여 알리고 응원해 줄 대표가 되고 싶다. 언젠가 내 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될 작가들 또한 책임지고, 응원하고, 알리는 일이라면. 그 무게는 오히려 기꺼이 감당하고 싶어진다.
대표라는 단어는 여전히 나에게 무겁지만, 누군가의 목소리와 세계를 대신해 전한다는 것이 어쩐지 설레는 것은 그것을 해낼 이가 오로지 나이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겨가고 있다는 것. 대표하는 것들이 하나둘 쌓이고 스며들어, 내가 나를 대표하는 일 또한 어느 날엔가 아주 당연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