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내게서 멀어지기 위해 제일 싫어하는 과일들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맛도 모르겠는 오이나 당근까지도. 사람들을 피하며 혼자 내버려 두었다. 심지어 책도 읽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지날수록 이상했다. 나는 내가 예전보다 친숙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떼어놓기 위해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가지고 싶은 게 뭔지, 바닥까지 무너진 마음 같은 것들을 잘 살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이 나에게 연민과 긍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일들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집중했다. 파, 두부, 금붕어, 흰색, 선글라스, 너무 환한 거실과 지나치게 빗나간 예상들, 우유부단한 너의 감정까지. 나는 나를 설득시켜 가며 더듬더듬 걸어 나가는 아이처럼 때로는 노인처럼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살다 보면 내가 나조차 부축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온다는 것을. 또한, 내가 나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뿐 아니라 누구나 자기라고 믿는, 자유의지라고 확신하는 자신에게 매일매일 복종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나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질문이 생기기도 전에 답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처럼 애초에 왜는 존재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나는 나의 맨 뒤가 되기로 했다. 나는 이제 뒤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