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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다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 이 맛! 푸릇푸릇한데. 나는 곧잘 이렇게 말한다. 파릇파릇한 원피스 어디 없나? 라거나, 저 사람 참 파슬파슬해라든지. ㅍ이 주는 경쾌함 그리고 파괴감. 언제부턴가 나는 여름을 ㅍ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덥다 덥다 파김치 됐어를 입에 달고 산 이여름도 이제 볼 끝자락을 스치기 시작했고, 오고 가는 대로 견디는 게 사람의 일이겠지만, 그 간당간당한 바람을 맞을 마음은 이미 가을 앞에 선 것처럼 서늘하고 차분해진다. ㅍ이 주던 경쾌감이 스산함으로 바뀔 것이다. 단물 빠진 복숭아 민낯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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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들은 딱 두 종류다. 말라죽거나, 흠뻑 젖어 죽거나. 해가 든 날은 부지런히 화분을 내다 놓았고 비가 오는 날은 더 발발히 내다 놓았다. 잘 키워보겠다는 나의 오지랖이 화분을 절망에 빠뜨린 것이다. 애정을 주고받는 것에도 독이 자란다는 걸 몰랐다. 적절하다는 의미. 적당하다는 양. 나는 그런 걸 잘 모른다. 뭘 줘도 양 손바닥 가득 쥐어주고, 마음이 쓰이는 대로 눈물이든 콧물이든 몸짓이든 다 끌어다 놓는다. 그게 독이 될 때도 있다는 걸 저 넘쳐나는 태양 아래 시들어가는 화분들이 살랑살랑 고개를 처박으며 나에게 손짓한다. 인자 그만 주라고! 힘들다고!!
화분을 엎으니 젖은 흙들이 습한 냄새를 풍기며 쏟아진다. 바닥을 닦고 손을 턴다. 언젠가 내게도 딱 저 정도의 습도로 세상에 갇혀 살 때가 있었다. 겉만 멀쩡했지 안으로 눈물 한 자루 채워 살던 때가. 어쩌면 그때의 습관으로 마음씀씀이가 되려 헤퍼져서 눅눅한 지경이 되도록 물을 퍼다 나르는 건 아닐까. 화분을 쓰레기봉투에 담으며 쓸데없이 남아도는 마음도 함께 버린다. 또 자라고 또 자라날 테지만 이젠 그때마다 물을 주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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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고3. 대학생 같은 고3. 아니지. 요즘 대학생은 전쟁터를 구른다는데. 초1 같은 고3이 맞겠네. 엄마, 이미 끝났어. 이젠 운발이 필요한 때라고. 우리 고3 웃는다. 싱글싱글. 숙면을 취하신 건지 피부가 발그레하고 좀 부었다. 엄마, 학교에 체험 말하고 몽골 갔다 오자. 응? 너무 좋을 것 같아? 티브이를 보면서 치킨을 뜯으며 야무지게 나를 쳐다본다. 지금? 그래도 수능은 지나 봐야 되지 않을까? 우리 고3, 동공이 왔다갔다하더니 딱 멈춘다. 그리고 말한다. 아이고 어머니, 괜찮다니까요. 몇 번을 말씀드려요? 모든 건 던져졌어요. 즐겁게 좋은 마음을 기로 모우는 것밖에. 그러니까, 우리 저기 가자. 엄마 제발. 나는 티브이 홈쇼핑을 뚫어져라 본다.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으므로 상품 속에 상품처럼 멍하니 몽골의 초원이나 뜯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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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새소리가 들린다. 한 무더기 찌르레기도. 어디로 쓸려갔는지 한참 있다 다시 들린다. 이 계절 넘고 저 계절로 넘어간다. 나무도 전봇대도 개도 지붕도 어딘가 하얗게 바래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