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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희 Apr 23. 2021

가방이 되어버린 사람을 아시오

사물, 사진 1. 방과 가방



모든 것이 풀어헤쳐진 방에 여행가방 하나만이 잠겨 있었다. 재개발 공사로 갈등하던 청량리 4구역의 4층짜리 상가 옥탑방이었다. 건물들이 하나씩 철거되면서 밀려난, 그럼에도 남은 누군가가 들어와 지냈던 모양이었다. 가방에 든 것이 최소한의 살림이었을 것인데, 그조차도 풀어놓을 곳을 찾지 못한 것인지. 언제 치워질 지 모르는 방에서 자신을 가방 한 개 크기로 줄여야 했을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겨울이었다. 


독립한 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았다. 집에서 가지고 나왔던 상자 세 개 중 두 개는 풀지 않은 채 지냈다. 무언가를 사모으는 것도 최대한 피했다. 최소한의 면적만으로 살고 싶었다. 내 존재를 언제든 비워야 한다면 그래도 괜찮도록. 삶의 크기도 질량도 그 면적에 맞춰졌다. 사람은 이런 식으로 가방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장 강제로 밀려나느냐 순응하며 서서히 밀려나느냐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고도. 


청량리동 4층짜리 상가는 가을에 철거됐다. 그 일대는 어떤 흔적도 없는 공사터로 정리되었다. 공사장비들이 수직으로 꽂히고 가림막이 수평선처럼 주위를 가렸다. 그 뒤에 누군가 망루를 세웠으나 잘 보이지도 않았다. 오래 버티지도 못했다. 가방은 어떻게 됐을까. 알 길도 없었다.


그후 다시 온 겨울에는 아현동에서 강제철거를 당한 남자가 투신했다는 부고가 들려왔다. 남자는 사흘을 길거리에서 보낸 뒤 구깃해진 광고전단지 뒷면에 유서를 썼다.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는 왜 가방 한 개로 남게 됐을까. 그 가방마저 왜 자꾸 치워지는가. 우리는 왜 가방 풀 곳 하나 찾지 못하면서 복합쇼핑몰과 뉴타운과 아파트의 수많은 방과 방과 방들 사이를 헤매고 있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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