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사진 1. 방과 가방
모든 것이 풀어헤쳐진 방에 여행가방 하나만이 잠겨 있었다. 재개발 공사로 갈등하던 청량리 4구역의 4층짜리 상가 옥탑방이었다. 건물들이 하나씩 철거되면서 밀려난, 그럼에도 남은 누군가가 들어와 지냈던 모양이었다. 가방에 든 것이 최소한의 살림이었을 것인데, 그조차도 풀어놓을 곳을 찾지 못한 것인지. 언제 치워질 지 모르는 방에서 자신을 가방 한 개 크기로 줄여야 했을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겨울이었다.
독립한 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았다. 집에서 가지고 나왔던 상자 세 개 중 두 개는 풀지 않은 채 지냈다. 무언가를 사모으는 것도 최대한 피했다. 최소한의 면적만으로 살고 싶었다. 내 존재를 언제든 비워야 한다면 그래도 괜찮도록. 삶의 크기도 질량도 그 면적에 맞춰졌다. 사람은 이런 식으로 가방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장 강제로 밀려나느냐 순응하며 서서히 밀려나느냐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고도.
청량리동 4층짜리 상가는 가을에 철거됐다. 그 일대는 어떤 흔적도 없는 공사터로 정리되었다. 공사장비들이 수직으로 꽂히고 가림막이 수평선처럼 주위를 가렸다. 그 뒤에 누군가 망루를 세웠으나 잘 보이지도 않았다. 오래 버티지도 못했다. 가방은 어떻게 됐을까. 알 길도 없었다.
그후 다시 온 겨울에는 아현동에서 강제철거를 당한 남자가 투신했다는 부고가 들려왔다. 남자는 사흘을 길거리에서 보낸 뒤 구깃해진 광고전단지 뒷면에 유서를 썼다.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는 왜 가방 한 개로 남게 됐을까. 그 가방마저 왜 자꾸 치워지는가. 우리는 왜 가방 풀 곳 하나 찾지 못하면서 복합쇼핑몰과 뉴타운과 아파트의 수많은 방과 방과 방들 사이를 헤매고 있나. 몇 번이고 몇 번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