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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rok Kim 김영록 Sep 19. 2022

#89 VC 고르는 법: 큰 VC≠좋은 VC

펀드의 크기는 VC의 중요한 투자 전략

VC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날마다 많은 VC를 만날 기회가 있는데요, 펀드 사이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앞으로 몇천억 원을 조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유나 계획 없이 무작정 펀드 사이즈를 늘리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애초에 현실성 있는 이유나 계획이 있더라도 펀드 사이즈를 늘리기는 어려울 정도인데, 단순히 큰 펀드부터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을 만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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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펀드들이 몇 천억 원짜리 펀드를 만든다고 해서 단순히 '저기가 그렇게 하는 거면 우리도 해야지'라는 식의 자존심 싸움으로 펀드 사이즈를 정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펀드 사이즈를 올바르게 설계하는 것은 VC의 투자 전략을 생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 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두 명의 파트너가 있는 시드 스테이지에 특화된 VC 펀드가 있는데 1,000억 원의 펀드를 조성하고 싶다고 가정합시다. 최근 미국에서는 투자 기간이 짧아져 앞으로 2년 동안 펀드를 소화할 예정입니다. 이는 관리비용 등을 제외하고 이야기를 최대한 단순하게 할 경우, 한 명의 파트너당 연간 250억 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당 10억 원 투자를 한다고 가정하면, 매년 25개 회사, 매달 약 2개 회사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두 사람이 각각 매달 2건, 건당 10억 원을 투자, 2년 동안 100개사에 투자를 하는 펀드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건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는 전략입니다. 


우선 한 달에 두 건 투자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한 건의 투자를 하려면 많게는 5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찾아야 합니다. 한 달에 두 건 투자를 하려면 한 달에 100개 정도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데,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2명의 파트너로 100개의 투자처 기업을 관리하는 일도 정말 힘듭니다. 투자처 회사와 매달 한 번 30분 정도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한 달에 투자처 관리 미팅에만 25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게다가 위에서 말한 대로 한 달에 새롭게 100개 회사를 찾아야 합니다.


이 대로라면 파트너들은 좋지 않은 투자처에 서둘러 투자를 하게 되거나 아니면 전혀 투자를 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펀드의 퍼포먼스도 늘지 않고 투자처 기업에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게 됨으로써, VC로서의 최악의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맙니다. 


주변에 자꾸 대형 펀드가 만들어지거나 하면 "큰 VC=좋은 VC"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사이즈에 맞는 경험과 능력 없이 사이즈 업만 하다 보면 잘 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위의 예는 극단적인 예시이고, 팔로우온 투자를 한다든지 어소시에이트를 채용한다든지 해서 비교적 쉽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적은 파트너들에 대해서는 저는 언제나 투자전략을 세우기 비교적 쉽고 관리하기도 쉬운 소규모 펀드로 시작을 할 것을 추천합니다.


위의 예시에서 만약 1,000억이 아닌 500억의 펀드라면 월 1개, 건당 10억 원 투자, 포트폴리오의 수는 50개로 갑자기 현실적인 수준이 됩니다. 1000억 원의 펀드로 2배의 리턴을 내는 경우와 500억 원의 펀드로 3배의 리턴을 내는 경우와 파트너에게 주어지는 성공보수의 금액은 같습니다(1000*0.2 vs 500*2*0.2). 다만, 큰 차이는 2배의 리턴 밖에 낼 수 없었던 VC에는 앞으로 아무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펀드의 사이즈는 파트너의 자존심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들의 능력과 경험, 강점을 바탕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현실적인 사이즈로 충분히 실적을 만들어 가면 자본은 뒤따라옵니다. 펀드 사이즈 업은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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