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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복 Nov 03. 2023

위대한 끌림의 비밀-1

 

드로잉_F20_oil on paper_34x24.5_2023



 예술가에게 위대한 끌림은 정확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없다. 그러나 이 이끌림은 창조적 여정 안에 있을 때 언제나 일어난다. 위대한 그 손짓은 나의 것이 아니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신성한 에너지로부터의 이끌림의 손짓이다. 마치 내 허리춤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려 어딘가로 올려놓는 체험이다. 그렇게 표현된 작업의 흔적은 나를 감탄하게 하고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 내 마음에 들던 안 들던,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저 고개를 꺾고 넋이 나가도록 심취한 상태에 머물게 한다. 그 위대한 느낌의 흔적은 먼저 나로부터 출발하고 재료를 통해 구조를 이루고 형태를 만드는데, 그 결과물을 세상에 보여줄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기존의 나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이라 나의 어떤 것을 드러내는데 극심한 한계를 느끼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평가할 때 대인관계에 알 수 없는 벽을 느낀다고들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조심스럽고 내성적인 태도는 작품 발표에 대한 확신을 갖기까지 만 40살이 되어 첫 개인전을 치를 만큼 인생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그렇게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양태를 띤다. 그런데 이 결과물들은 마치 자기 의무라도 지닌 냥 세상으로 뻗어 나가려는 시도를 한다. 단 한 사람 스치는 눈길에라도 전혀 서운하지 않고 한 번이라도 더 마주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다가간다. 마치 호감 가진 여인에게 다가가려 우연한 기회를 엿보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말이다.


 누군가 내 작품을 본사람들은 항상 묻는다. 작가의 의도가 작품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하지만 나는 절대로 만족할 작품에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없었다. 매번 돌아서서 왜 이 말을 못 했을까 아쉬움만 남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작품을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한 가지 그들에게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내 작품에는 나의 이해를 넘어서는 어떤 힘이 작용했다는 사실만 분명히 말해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그저 창조의 대리자에 불구하다. 창조의 작동원리를 정확하게 알고 실행하는 것은 창조주, 단 한분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영감 받은 작품이 현실로 생겨나기까지 시공간을 넘어서는 모든 섭리를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한 가지 일화를 들자면 이렇다. 몇 년 전 새롭게 지어지는 어느 교회의 대표 조형물에 대한 제안을 받고 디자인을 구상했지만 한 달 반이 넘게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서 디자인을 완성해서 교회에 보여주고 컨펌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에 하루 18시간을 내내 끙끙거리며 고민을 했다. 그러나 도저히 어떤 영감도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나는 모든 잡동사니 같은 디자인들은 내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나는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왜 그 제안을 승낙했나 후회가 몰려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거의 두 달을 조형물 디자인에 대한 고민에 몰두해 있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거기 살아 움직이는 말씀띠들이 어떤 물결을 이루다가 얽히고설키더니 어떤 형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불꽃같아 보이면서 십자가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람의 형태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호하지만 뚜렷한 형태(눈앞에 있으므로)인 것이다. 


 나는 꿈속에서 그 모습을 기억하려 했다. 아니 너무 선명해서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게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잠에서 깬 뒤 몸을 일으켜 자연스레 컴퓨터 앞에 앉았고 3d모델링 프로그램으로 사전 스케치나 드로잉 없이 눈앞에 있던 그 모습을 바로 모델링했다. 꿈속에서 본 그 조형물의 모습은 재료와 크기 모두 한치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았다. 이 모든 설계도는 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후 나는 거기에 여러 미사여구를 섞어 의미와 내용을 추가했지만 그것은 그냥 꿈에서 본 걸 만들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 지어낸 핑계일 뿐이었다.

 

 이처럼 내가 꿈속에서 위대한 이끌림의 힘으로부터 작품을 그대로 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명확한 경험들은 그 외에도 몇 가지 있지만, 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요점은 그야말로 예술가에게 창작이란 자기가 무엇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닌 어떤 창조의 법칙으로 창작물이 자연스레 세상에 드러난 것에 불구하다. 그렇게 예술가는 그저 전달자의 입장에 있을 뿐이다. 이런 체험은 미술, 음악, 디자인, 공연 등 모든 창작분야에 프로젝트를 맡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끌림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 다음 화에서 이야기해 보자.


드로잉_F19_oil on paper_34x24.5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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