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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복 Nov 12. 2023

위대한 끌림의 비밀 -2

드로잉_F18_oil on paper_34x24.5_2023

 지난 글에서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창작이란 것이 마치 신에 의해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작가는 그저 무당처럼 접신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몰라도 다 가능한 것처럼 이해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창작으로 가는 과정에 우주와 작가와의 관계에 관한 견해에서 오는 오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 창조의 섭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작가가 처음부터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진행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고 해서 스스로 수만 가지 부품을 가진 슈퍼카를 뚝딱뚝딱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즉 작가 자신이 감당가능한 그리고 실현가능한 방법을 알 수 있는 방면으로만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작가 본인의 그릇 문제가 된다. 작가가 어떤 크기의 그릇을 지니고 있냐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영감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누가 그랬듯 간장종지를 들고 서서 한강물을 다 퍼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창작에 과정은 우주의 정확한 법칙에 따라 현실세계로 나온다는 것이다. 다중적인 가능성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고 인간의 관측에 따라 그중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히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만이 현실세계로 나타난다는 양자역학의 다중세계이론과도 마찬가지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결론은 우주는 창작의 과정에서 예술가가로 하여금 대리자이면서 동시에 주동자로 명확히 인식하게끔 한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부모가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일과 빗대어 볼 수 있겠다. 만약 아이가 처음 자전거를 탄다면 부모는 당연히 아이의 뒷바퀴를 꼭 잡아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도울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바퀴를 굴리는데 능숙해지면 손을 놓는다. 스스로 전진하게끔 말이다. 그럴 때 아이는 부모가 내 자전거에 손을 떼버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안함에 균형을 잃고 넘어지거나 반대로 내가 이 자전거를 정복했다는 기분으로 용기를 얻어 더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가 넘어질까 불안해할 것도 모두 나 혼자 해낸 것처럼 으쓱 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모의 눈길은 항상 자식에게로 향해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작의 여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는 혼자서 무언갈 창조해내야만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혼자힘으로 모든 걸 감당해 냈다는 과도한 자만 둘다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부모님이 잡아주던 손길을 기억하며 두려움 없이 확신을 가지고 전진해 나갈 때 앞서 말한 창조적 영감의 바다에 헤엄칠 수 있게 된다.


 파도를 타는 서퍼는  보드를 들고 저 멀리 최대한 먼바다로 나간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기 위해 보드 위에 몸을 싣고 팔을 휘저어 묵묵히 나간다. 밀려오는 작은 파도들을 거스르고 바깥으로 흐르는 한 파도 한 파도를 온몸으로 버티며 저 멀리 다가오는 가장 큰 파도에 몸을 싣기 위해 때을 기다린다. 그것은 노동과도 같다. 튼튼한 보드와 준비된 체력, 성실하게 몸을 이동시키는 어깨와 균형감각으로 언제 올지모를 큰 파도를 기다리기 위한 기다림의 수련이다.


 마침내 기다리던 파도가 온다. 프로 서퍼라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도 위를 올라탄다. 강한 속도로 밀어 올리는 파도의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섬세함과 수많은 경험으로 쌓아 올린 특유의 균형력으로 거친 파도를 견뎌내며 결국 모든 이들이 부러워할 환희의 고개를 탄다. 해변에서 그를 보는 관객들은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의 오랜 기다림을 모두 보상받듯이 짧고 강렬한 시간이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파도도 서서히 육지로 부드러운 착륙을 한다. 숙련된 서퍼는 부드러워진 파도 위를 내려와 다시 거친 파도로 갈아타야 할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서퍼는 다시 묵묵히 바다로 들어간다. 예술가들의 모든 창작 과정이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즉, 예술가의 모든 창조의 근원은 우리의 부모와도 같은 우주섭리의 손길 없이는 자연스레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그 손바닥 위에서 걱정 없이 춤추는 여자 아이와도 같다. 그러나 아마도 누군가는 그 근원의 손길에서 스스로 멀어져 버렸거나 거친 파도 위에 자기의 온몸을 던져버릴 확신이 없다면 그의 길은 순탄치 못하다. 그래서 작은 흔들림에도 큰 좌절을 겪고 예전만 못한 결과물이나 반복적인 일상의 매너리즘 때문에 슬럼프에 빠지거나 버거운 현실생활의 두려움으로 꿈을 접고 다른 일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성공이란 결국 모두 포기하고 떠나버린 경기장에 끝까지 남아있는 자에게 주어진다. 자전거에서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것도, 때로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는 것조차 마침내 목적지로 가는 과정 중일 뿐이라는 교훈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묵묵히 견딜 수 있다.


 그렇게 단지 삶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라고 속삭여 주는 것만 같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돌아가야 할 내 고향집이 어디인지 잊지 않고 창작의 여정에서 방향을 잡고 가다 보면 언젠가 부모님이 계시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동안 어떤 것을 보고 느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었는지 모두 이해하게 될 것이다.

 


드로잉_F17_oil on paper_34x24.5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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