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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복 Apr 06. 2022

무엇을 위한 상처인가



흔적 다시 세우기(Resurrection of the Stigma), 230x380x80mm, mixedmedia, 20220324





나는 인간이 각자 편향으로 연속 판단된 인생의 흔적을 쌓으며 자기 인식의 굴레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을 그 사실을 어떤 이들은 쉽게 말해 냉혹한 현실, 자기만의 형식, 또는 관습의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흔적들을 무엇이라 부르던 중요한 것은 내가 쌓아 올린 흔적을 반추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물론 대다수는 그런 되새김질 할 겨를 없이 하루를 그저 소화하기에도 바쁜 일상을 보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렇게 애써 만들어낸 상처와 흔적들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이다. 

누군가에게는 자기 개인의 삶에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발버둥 중에 생긴 상처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박애주의에 입각한 인류애적 지향의 운동일 수 있고, 시스템의 오류를 발견하고 외치는 정치적 올바름일 수도 있고 또는 자식새끼 키우느라 등골 빠진 일평생 후에 남은 지긋지긋한 관절염 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더 많은 부를 위한 착취와 개싸움의 결과일 수 있겠다. 
아무렴 어떠할까 생의 투쟁 중에 지나온 자기 흔적을 스스로 관조할 수 있고 그것의 명분들을 분명히 인식한다는 것만큼 희망적인 인생의 지평은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내 안에 어떤 바이러스가 감염되어있는지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명확한 치료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미술 작업을 하는 삶에 있어서 내 안으로부터 출발하는 인생 치료의 목적은 거창하게도 스티그마(stigma)를 향하고 있다. 내 모든 인생을 통틀어 쌓은 크고 작은 영광의 상흔들이 온전히 사람들의 정서적 영혼 구원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기 바란다. 고대 군인과 노예들의 낙인이자 소속의 의미인 스티그마가 성스러운 영적 전쟁의 군대로서 진리를 향한 승리의 한 걸음으로 내 삶에 발현되길 바란다. 진리를 향한 고난과 역경, 인내의 증거는 영광을 드러낼 훗날을 위한 화력 좋은 땔감이기 때문이다.


흔적 다시 세우기(Resurrection of the Stigma), 230x380x80mm, mixedmedia, 20220324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 안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롭다. 진리는 구조적 형식의 반대이며 사회적 관습의 원수다. 나를 옭아매는 관습적 상태를 벗어나 자유를 찾는 유일한 길은 예술의 창작행위에 빠져 있을 때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상상과 창조적 몰입 상태는 창조주의 천지 만물의 창조 원리이고 동물과 인간의 구별이자 신과 함께 공유되는 인간 고유 본성의 발현이다. 즉, 진리는 행선지를 잊은 채 음속으로 지나쳐버린 풍경에서 잠시 멈추어 나의 삶에 나침반을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간이역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상을 통해 내가 함께 공감하고 그의 본질을 찾고 그것과 하나 되어 가진 매력을 최대한 그대로 두는 것. 나는 그것이 감히 신의 본성이라 느낀다. 내가 거기 있었지만 내 흔적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상을 가장 존중하며 사랑하는 행위다. 이렇게 모든 관념을 떠난 순수의 몰입에 상태로 대상에 집중하는 창조적 몰입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갈 때, 허상마저 실체로 인식해야만 하는 현대 디지털 사회의 거대한 관습과 속박을 승화하는 탈분화적인 자유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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