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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테가베네핏 May 10. 2024

머리를 왜 가만히 놔두질 않니?

컬러풀한 나의 머리칼

부모님의 많지도 않은 단골멘트가 몇 개 있는데 그중에 유독 자주 나오는 말은 머리 스타일에 관련된 것이다.


염색을 또 했어?
염색 아니고 탈색한 거야
그러니까 염색을 또 했냐고
응 탈색


머리를 탈색하면 머리카락의 세포와 색상을 죽이는 거라서 신경 쓸 것이 참 많다. 우선은 머리가 녹아내리기 때문에 머릿결을 신경 써야 하고 세포를 죽이는 거라 찰랑함은 아예 날아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부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도 머리도 바짝 잘 말려주어야 하고 전체 탈색이 아닌 부분 탈색이라서 탈색이 아닌 부분의 까만 머리와 탈색 부분이 극명한 톤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전체 염색약으로 컬러를 입혀주고 맞춰주는 작업을 해줘야 한다.


머리카락의 일부분이 컬러를 입힐 수 있게끔 하얀 도화지가 되었으니 그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려볼지 상상하는 재미도 엄청나다. 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멜라닌의 정도에 따라 염색약을 동일하게 써도 다른 컬러가 표현되는 알 수 없는 결말도 있겠다. 미디어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이런 작업을 거치는 건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관리할게 많지만 활동시즌의 어떤 이미지를 위해선 머리 스타일과 컬러는 필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테헤란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뭐 이렇다 할 콘셉트라는 게 없지만 탈색머리를 유지한지도 햇수로 2년 정도는 된 거 같다. 탈색모에 염색약을 입히고 매일 머리를 감고 뜨거운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는 과정이 한 달 정도 지나면 염색약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처음의 탈색 상태로 돌아간다. 처음의 컬러에서 샛노란색이 되기까지의 다양한 컬러변화가 있고 아주 샛노란색이 되기 전에 다시 염색약으로 다른 분위기의 컬러를 연출하는 반복적 스타일링이다. 그래서 내 머리는 탈색을 했지만 초록색도 되고 파란색도 되고 뭐든 될 수 있는 머리색이다.


푸른 바다를 닮은 나의 탈색머리

테헤란로가 좀 답답한 나로서는 내 안의 트렌디함과 화려함을 머리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 탈색머리를 꽤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거나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내 머리로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 머리칼만 한번 자연스럽게 넘겨주면 그만인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제일 좋아하는 은빛 탈색 머리

이곳저곳 잘도 다니는 나의 머리 덕분일까 사람들은 나의 머리를 보면서 각자의 타임머신을 탄다. 그들의 추억을 그리고 미래를 상상하며 이들에게 과거를 소환하는 기억과 앞으로를 그리는 희망을 품어준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하면서 뿌듯함도 느껴본다.


와 나도 조금만 더 어렸으면 이런 거 했을 텐데
나도 더 나이 들고 은퇴 하면 한번 해봐야지
난 나중에 회색으로 해봐야겠어요
학교 다닐 때 샛노랗게 해서 선생님에게 많이 혼났었지


어쩌면 이 트렌디함은 나의 오랜 단골 미용실 원장님과 매니저님의 합작품으로 만들어진 거고 머리 하나 덕분에 내 소개 없어도 이미 상대방은 나를 어떤 사람일지 가늠하는 그 눈빛들이 신기하기도 하다. 다양한 나로 선보이게 되는 점이 재밌고 또 나는 그렇게 트렌디하지 않은데 가만히 있어도 굉장히 창의적이고 앞서 나가는 신여성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추측도 해본다.


앞서 소개한 원장님네 부부는 나의 똥손에 대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쉬시면서 어쩌면 이렇게 손이 야무지지 못할까에 대한 고찰을 10년이 넘도록 하시면서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열정이 존경스럽다. 애정어린 잔소리 덕분에 트랜디한 사람이 된 거 같은 느낌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에다가 저 탈색해 볼래요라고 하는 용기 있는 한마디가 무엇인가 신경쓰고 있다는 유니크함이 기분이 좋았다. 어쨌든 나쁠 게 없는 스타일링이라는 결론이다.


할까 말까 생각이 들면 하는 게 맞지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여 그대들에게 울리는 마음 속본능을 언제든지 그리고 기꺼이 꺼내어보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나도 그 타임머신 여행에 언제든지 탑승시켜 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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