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상한 건가?

by 글로

많이들 가는 동남아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번 치앙마이 여행은 강렬했다.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의 쾌활하고 거대한 나무들을 볼 기회가 적어서였을까? 아니면 우리나라 겨울의 산이나 나무의 살풍경한 풍경과 반대여서일까? 신선하고 즐거운 충격을 받았다. 치앙마이도 나무 속에 마을이 있는 격이다. 온통 나무다. 나무에는 꽃이 핀다. 꽃은 아름다운 녹색에 포인트를 준다. 주로 분홍색, 빨간색, 노란색 꽃이다. 탐스럽고 풍성하다. 나무가 넓고 크고 웅장하니 그 열매나 꽃들도 화려하다.


경기도 수리산 밑자락 아파트에 산다. 집 베란다에서 산이 보인다. 매주 남편과 산에 오른다. 산에 있는 나무를 관찰하며 한발 한발 오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어느새 나무에 관심이 생겨 해외에 나가면 신기한 나무에 눈길이 간다. 결정적으로 호주 멜번에 1년 넘게 머물 때 그곳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나무에 반해버렸다. 길거리 가로수에서 향이 난다. 서서히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싹텄다.


이번에 방문한 치앙마이는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세게 흔들어놓았다. 사랑하는 연인을 다시 만나 밀회를 즐기듯 그렇게 나무와의 애정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오랫동안 못 보던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처럼 나는 나무를 감상하느라 다른 것은 보는 둥 마는 둥이었다.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다. 배만 고프지 않다면 아무리 걸어도 더 필요한 것이 없다. 끝없이 펼쳐지는 나무의 향연에 정신이 없다. 맹그로브라고 불릴만한 줄기가 얽히고 설킨 나무부터 넓은 잎의 나무, 소나무와 비슷한 색깔이 연한 나무 등 종류도 다양하다. 호텔 높이 만한 나무도 많다. 크기나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무들.

우리나라 같으면 보호수라고 해서 팬스를 쳐놓았을 만한 나무들이 아무런 보호 없이 가로수처럼 서 있다. 올려다보면 전기줄과 나무가 사이좋게 나란히 공중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온통 푸르고 온통 분홍색이다. 그러니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 날씨는 쾌적하고 좋아하는 나무가 지천이니 행복하다. 남편은 싱글벙글이다. 나무가 많은 곳에만 데려가면 아내가 즐거워하니 편하다며 좋아한다. 뭔가에 홀린 듯 골목 속으로 마구 파고든다.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치앙마이에는 거대한 산이 많이 있다. 사방이 산에 둘러싸여 있어 분지 형태를 띠고 있다. 다 올라갈 수 없으니 낮은 지대에 서식하는 나무만 둘러본다. 그래도 충분하다. 자연과 가까이 있다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카페든 식당이든 나무가 인테리어다. 더 필요한 것이 없다. 제주에 가면 온통 귤밭이지 않던가? 창밖으로 보이는 귤밭은 훌륭한 인테리어다.


나무는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 다양하게 멋있다. 누가 디자인을 했는지 팬텀스레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뻗어도, 어디로 뻗어도 멋있다. 이 나무보다 저 나무가 더 멋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나무는 이것대로, 저 나무는 저것대로 멋있고 특색있다. 인간도 그렇게 저마다의 특색을 인정받아 경쟁하거나 자리다툼이 없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나무만 못하다.


나무는 한 자리씩 붙박이로 차지하고 있으니 땅 걱정이 없어서 좋겠네. 집 없는 설움으로 눈물짓는 가장은 없겠다. 다만 좋은 자리 나쁜 자리는 있을 수도 있겠다. 산에 있는 나무가 제일 행복하겠지? 도시에 있는 나무들은 사람들이 전기줄을 휘감아 놓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반짝반짝 불빛으로 도시를 밝히고 흥겨운 기분을 돋구지만 전기가 흐르는 나무는 얼마나 힘들까?


인간은 동물에게나 식물에게나 몹쓸 짓을 참 많이도 한다. 나무만큼만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무는 옆에 있는 자리 뺏으려 몸을 옮기거나 이동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 만족하며 자리를 지킨다. 인간은 자리를 더 차지하려고 전쟁도 불사한다.


나무 끝 수많은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면 신비롭다. 어떻게 시작이 되어 저렇게 풍성한 나뭇잎을 매달고 있을까? 뿌리는 또 얼마나 깊을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하긴 하지만 치앙마이에서는 깊은 생각을 할 수도 없는 것이 눈이 호사를 누리기 때문에 보는 것이 바쁘다. 길게 머무는 여정이 아니기에 최대한 많은 나무를 보고 싶은 욕심에 감상하기 바빴다. 발밤발밤 걸으며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고 높이에서 내려다보기도 했다.


인간이 만든 멋있는 카페나 거리보다 나무를 즐겨보는 나는 나무가 많은 나라에 가면 신이 난다. 치앙마이 대학교는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의 정점을 찍었다. 대학교가 아니라 식물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나무가 있었다. 감탄에 감탄을 이어가며 학교 내부를 구경했다. 건물은 띄엄띄엄 하나씩 있었고 제각각 모양도 달랐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늦게까지 문을 연 스타벅스에 들어가 창밖을 내다봤다. 어둑해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거대한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몇 십년도 넘은 대학 시절이 생각나 여유를 즐겼다. 치앙마이대학은 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대학이다. 숙소에서 약 20분경 걸으니 나왔다. 작은 카트같은 차에 3명을 태우고 출발한다. 100바트면 탈 수 있다. 4,600원의 행복이다. 대학이 워낙 넓으니 다 둘러볼 수 없어 관광객을 중심으로 이런 카트를 운행하나 보다. 중간에 쉬는 시간 10분도 준다. 한참을 달리다 거대한 호수 앞에 사진을 찍으라고 차를 세운다. 나무로도 충분한데 호수까지 있다니, 경치에 넋이 나가버렸다.


남편과 사이좋게 사진을 찍고 쉬다가 다시 카트를 탔다. 차를 타고 구경해야만 할 정도로 학교가 거대했다. 이곳에도 야자수나 열대우림지역의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서 자연 속에 대학교가 살포시 안겨 있는 듯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다른 모양의 나무들이 제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반긴다. 살아있는 캐릭터를 대하듯 반갑게 마음속으로 인사한다. 나무는 처음 만났지만 반갑다. 그리고 신기하기만 하다. 물어보고 싶다. ‘넌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니? 불편하지는 않니? 외롭지 않니?’ 참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


치앙마이는 넘치는 행복을 주었다. 치앙마이에 간다는 것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무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하다. 여행 가서 나무에 집착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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