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는 수질이 좋지 않아 샤워필터를 구매해 챙겨갔다. 한국에 살면서 특히나 우리나라가 점점 현대화되어갈수록 물 걱정을 안 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샤워할 때 물을 걱정해야 한다니 불편하게 생각되었다. 간혹 피부가 예민한 사람들은 피부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불길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해외를 나갈 때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라 이런 말들에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워낙 급하게 알아본 터라 샤워필터는 출발일 전날 밤늦게 도착했다. 샤워필터 교체는 의외로 간단했다. ‘정말 필터 색깔이 누렇게 변할까?’ 궁금했고 이틀이 지난 후 결과가 나왔다. 믿을 수 없었다. 하얗던 샤워필터가 황토빛으로 변한 거다.
신상호텔이나 고급호텔도 예외가 아니라던 말이 실감났다. 왜냐하면 첫 번째 숙소인 호텔은 지은지 6개월 정도 된 새 호텔이고 두 번째 머문 곳도 24년에 오픈한 5성급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샤워필터를 꼭 챙기라고 했구나’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질 않았다.
치앙마이는 대체적으로 치안이 안전하다고 하고, 남편이 옆에 있으니 든든해 밤 늦게까지 돌아다녔다. 로컬인들이 사는 주거지역도 가 보았는데 문도 제대로 걸려있지 않았다. 야시장의 매력에 빠져 ‘여기가 마지막이다. 아니, 저기 또 있네’ 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은 훌쩍 훌쩍 지나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크고 검은색 개가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개를 싫어한다기보다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목줄도 하지 않은 개라니.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니 일반 주민들이 사는 동네를 보고 싶어 일반 주택가를 돌아다닐 때도 어김없이 목줄을 하지 않은 진돗개만한 개들이 돌아다녔다.
이들은 왜 개를 관리하지 않는가? 개 물림 사고는 없는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단다. 심지어 광견병에 걸린 개들도 있다고 한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무얼 먹는지 어디서 자는지 알 수 없고 위생상태나 무슨 병에 걸려 있는지 알 수 없다. 개를 무서워하는 나 같은 사람은 동네 골목에서 불쑥 튀어 나오는 개가 반갑지 않다. 우리 나라도 워낙 개가 많아서 항상 경계태세인 나는 치앙마이에서 주인 없는 개들을 만나 놀랐다.
태국에는 윤회사상을 믿는 불교신자들이 많다. 인간이 개로 태어날 수도, 개가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개를 경계하지 않는 것이다. 치앙마이 대학교 내에도 진돗개 사이즈의 개가 털털 걸어 다녀 놀랐다. 그 넓은 대학교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해외에 가면 현지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는 음식에 대한 기대가 없다. 예전에 중국에서 북경오리를 단체로 시킨 테이블에서 한 입도 넘기지 못하고 몰래 뱉은 기억이 있다. 홍콩에서는 온통 빨간색의 메뉴 사진만 보고 뭘 골라야 할지 몰라 새우볶음밥만 먹었다. 대만에서도 무얼 먹어야 할지 몰라 일식만 잔뜩 먹고 왔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라멘을 시켰는데 돼지뼈 육수가 이상한 냄새를 풍겨 한 입도 먹지 못하고 교자만두만 먹고 나왔다.
음식에 대한 모험심이 없는 편이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소화가 잘 안돼 체하기 일쑤다. 제일 사랑하는 음식이 빵인데 먹는 양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밥 위주의 식사를 하고 고구마, 야채를 주로 섭취한다. 한 숟가락만 더 먹어도 체하고, 비위가 상한다 싶으면 속이 불편하다. 이런 내가 치앙마이에서 예외일 리 없다.
그런데 의외로 치앙마이에서 음식과 관련해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올드시티에서 골목골목을 열심히 뒤지며 구경하다 발견한 집이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뭔가를 볶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나길래 코너를 도니 식당 입구가 나온다. 예약을 해야 할 것 같은 고급진 분위기의 곳이다. 인원수를 얘기하니 다행히 자리가 있다고 한다.
페이스(Face)라는 이름의 식당이다. 더 페이시즈 갤러리 앤 게스트로 바 (The Faces Gallery & Gastro Bar) 안에는 폭포도 있다. 야자수에 온갖 나무와 오래된 조각들로 가득한 신비로운 곳이었다. 야외의 몇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가 들어간 이후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여기서 우리의 고민은 또 시작되었다. 과연 무엇을 시킬 수 있을까? 이걸 먹고 나의 속은 괜찮을까? 걱정반 기대반이다.
세 가지 음식을 호기롭게 시켰다. 먼저 랍스터 볶음밥이다. 우리가 아는 익숙한 맛이라 통과. 두 번째 요리는 새우링 튀김이다. 튀김옷보다 새우가 메인이라 이것도 성공. ‘와! 마지막 요리는?’ 아니 요리라고 할 수 없는 특이한 음식이다. 분위기 있게 2단 접시에 나왔다. 윗층에는 깻잎같은 비틀잎(Betel leaf)이 한 장씩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아래층 접시에는 라임, 잘게 썬 말린 생강, 고추, 말린 코코넛 조각, 건새우, 땅콩이 들어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소스다. ‘ 이걸 어떻게 먹는 거냐?’ 는 눈빛으로 직원을 바라보자 친절하게 먹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먼저 비틀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소스를 얇게 펴 바른다. 그런 다음 아래 접시에 있는 모든 재료를 조금씩 넣어서 싸 먹는 것이다. ‘아하, 그렇게 먹는 거구나’ 아랫단에 있는 재료를 하나씩 올려가며 쌈을 만들어 입에 넣었다. 감탄에 감탄이다. 세상에, 이런 맛은 처음이다. ‘맛있다’ 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상큼하고 달콤하고 감미롭고 새로운 맛이다. 마지막 비틀잎까지 한 장도 남김없이 쌈으로 만들어 먹었다.
소스가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어떤 소스와 비슷할까?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간장과 땅콩버터와 설탕과 잼을 섞으면 이런 맛이 나오려나? 주부인 나도 맛의 정체를 분석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맛있다는 거다. 새로운 곳에 와서 조금 용기를 내니 이런 맛의 향연을 체험할 수 있구나. 몸에서 앤돌핀이 생성되는 게 느껴졌다. 남편은 연신 웃으며 즐거워한다. 이 음식의 이름은 트러디셔널 타이 리프 랩(Traditional Thai Leaf Wrap) 이다. 가격은 7,000원 가량. 7,000원에 천국을 맛보았다.
다른 것을 힘들어하던 내가 새로운 것을 즐기며 매료되어 헤어나오질 못하다니. 익숙하게 맛있는 것이 아닌 색다른 맛의 세계를 체험하는 것이 즐거웠다.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하자.
같은 달, 다른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