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관계와 다르게 부부에게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부부관계. 밤에 나누는 은밀한 사랑의 언어. 평범한 부부의 성생활이 뭐 그리 특별할 게 있겠냐만 우리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각 커플의 성생활도 제각각 다를 것이다.
40대까지만 해도 젊었다. 부부생활에 크게 불만이 있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나이 든 사람들도 부부생활을 할까? 지겹지 않을까? 다 늙어빠진 몸뚱아리에 서로 무슨 매력을 느낄까? 성욕이 생기긴 할까?’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도 어느덧 50대가 되었다. 젊은이들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부부관계는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50대이니 지금의 얘기를 하겠다.
부부관계를 해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고 그저 남자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일에 몸을 바쳐야 하는 여자의 입장에서는 횟수는 중요하다. 쓸데없는 에너지를 쓴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저 가정의 평화와 남편의 정신적 건강을 위하여 희생 봉사한다는 신념만 있을 뿐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합의가 필요하다. 일 년에 한 번으로 만족스럽다는 것에 둘이 합의가 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또 둘이 부부관계를 즐기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일주일에 한 번 사랑을 나누는 것에 동의한다면 갈등이 없을 것이다.
들여다보면 부부마다 사연이 없는 부부는 없다. 그 사연 중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마도 둘의 성에 대한 생각 차이일 것이다.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으니 그저 성격차이라고 말하겠지만 부부에게 중요한 성생활이 배우자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부부관계는 깨어지기 쉽다. 노래 가사에도 있다. 백지영의 ‘사랑 안해’. ‘나를 만지는 너의 손길 없어진 이제야 깨닫게 되었어. 네 맘 떠나간 것을’ 서로를 만지냐 아니냐로 상대방의 마음이 뜨거운지 식었는지 가늠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가사이다.
문제는 둘의 니즈(needs)가 엇나갈 때 생긴다. 남자가 더 원하거나 혹은 여자가 요구하는데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불만이 쌓이기 마련이다. 서로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다. 본능이라는 어마어마한 틀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결 안 된 한 쪽이 배우자 외의 다른 파트너를 찾아 헤맬 수 있다. 운 좋게 서로에게 들키지 않거나 원나잇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어디 인간의 만사가 그리 단순하던가? 육체적인 관계가 만족스러우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오래된 부부생활에서 생활의 구질구질한 얘기만 하던 배우자와 달리 따뜻하고 열정적으로 안아주는 다른 상대가 나타난다면 소위 말하는 불륜이 될 가능성은 높다.
다른 부부의 성은 어떤지 궁금하긴 한데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직도 우리문화권에서 성은 드러내놓고 얘기하기에는 꺼려지는 카테고리이기 때문이다. 또 전문가에게 상담을 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 털어놓는다고 해도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저 운이 좋아 속궁합이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난 거고 운이 좋지 않아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고 포기하고 살기에는 꽤 중요한 문제라는 것 정도만 짚고 넘어간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색다른 환경을 가지려고 노력해보라는 거다. 우리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항상 여행을 같이 다녔다. 그런데 딸들이 크고 엄마 아빠를 잘 따라다니려 하지 않는 때가 온 것이다.
우리 부부는 등산을 좋아한다. 그래서 주로 산을 정해놓고 그 주변의 숙소를 알아본다. 등산으로 노곤해진 몸과 주변 식당에서 취향대로 맛있게 먹은 흥겨운 기분이 서로의 몸을 터치하기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샤워를 하고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흥이 돋아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놓는다. 그러다 보면 어둠이 내리고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 무르익는다. 집과는 다른 분위기, 둘만 오롯이 있는 공간, 조금만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면 색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더 깊은 얘기를 여기서 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의 약점이나 신체적 결함을 찾기 보다는 좋게 봐주려는 시각을 극대화해서 안아주려 애써본다. 신혼 때와 같은 분위기의 설렘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게임 끝이다. 서로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온전한 내 반쪽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보다 좋은 타이밍은 없다. 어쩌다 있을법한 이런 강렬한 기억으로 또 한참을 견딜 수 있다. 어떻게 매일 좋고 설렐 수 있을까? 불가능한 얘기다. 찰나처럼 지나가는 좋은 기억으로 우리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여자 눈에 남편이 매일 상 남자로 보일 리 없고 남자 눈에 아내가 매일 공주처럼 예뻐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기름칠 잘한 기계처럼 한동안 잘 굴러갈 수 있다. 노력도 안 해보고 왜 이렇게 기계가 녹슬었냐고 탓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