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포비아(phobia)

by 글로

나이가 들면 이해심도 많아지고 아량도 베풀며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세월이 있고 경험치가 있으니 왠만한 일들은 무난히 넘기고 무덤덤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나이 들수록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생각이 고립될 수도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변하려는 의지가 없는 경우도 있고 변하고 싶어도 생각이 굳어져 물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다.

‘개’라는 말이 먼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늑대 비슷하게 생긴 짐승이 먼저 생겼고, 그 짐승이 유난히도 사람 주위를 맴돌며 살았을 것이다.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고, 계속 여러 모양으로 치근덕거리며 괴롭혔을 것이다. 사람의 먹이를 훔쳐 먹거나 의지간 같은데를 무단히 점거하여 어지럽히거나 하는 귀찮은 이웃으로 접근하였을 것이다. 때로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애교로 접근하였을 수도 있겠다. 귀찮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미운 것은 아니면서 너무 가까이 접근하여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겠다. 그 놈을 자주 쫒아버렸을 것이다. “저리 가 이놈아, 저리 가, 저리 가!···.” “가, 가!···.” 이러다가 그놈의 이름은 ‘개’가 되었을 것이다. “가, 가이, 개···.”

『2024 창작수필,여름호,황덕중,개』

이제 개의 위상은 가장의 자리를 위협한다. 이사갈 때 개는 데려가고 남편에게는 주소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 높은 위치를 점유한 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곱지 않다. 좋은 데 이유가 없듯이 싫은 데도 이유는 없다. 싫다기보다는 무섭다. 공포를 뜻하는 phobia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환공포, 폐쇄공포, 고소공포, 새공포, 뾰족한 것에 대한 공포등이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것들이 있다.


요즘 더 늘어난 반려견의 수를 보면 개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세상살이가 편치 않다. 공원산책길을 점유하더니 이제는 쇼핑몰까지 서슴없이 활보한다. 작은 개도 아니고 중사이즈의 개를 끌고 다니면 피해 다니느라 힘들다. 개들끼리 서로 으르렁 거리면 쇼핑몰이 순간 컹컹 소리로 가득찬다. 다른 종의 동물을 사랑해야 인류애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현실이 감당하기 버겁다. 스스럼없이 개도 만지고 고양이도 쓰다듬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공원잔디밭에 개를 풀어놓고 뛰어다니게 해서 식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견주에게는 귀엽고 자식처럼 사랑스러울지 몰라도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는 피해가 갈 수 있는 일이다. 아침에 산책하러 나가보면 여기저기 치우지 않은 개의 흔적들이 남아있어 눈살을 찌푸린다. 제일 큰 문제는 산에서 만나는 개들이다. 반대편에서 미친 듯이 뛰어 내려오는 개를 마주치면 공포로 몸이 얼어버린다. 그나마 남편과 함께일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다. 나를 안다는 듯이 다가와 맴돌면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어느 날 대모산에서 등산을 하는데 중간 사이즈의 개가 아무렇지 않게 등산을 하고 있다. 저만치 뒤에서 오는 견주. 목줄을 하고 다니는 건 기본인데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 불쾌하라고 한 소리 했더니 바로 따라오는 말. “이 산이 아줌마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예쁘다고 하는데 왜 아줌마만 난리야?”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개를 사랑한다고 믿는 저 편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혹여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저렇게 자신감 있게 개를 풀고 다니며 불편해하는 사람에게 소리를 질러대는지 모를 일이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심지어 네 발 달린 짐승 전체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나는 비둘기나 벌레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벌레 하나만 나타나도 이리 팔짝 저리 팔짝 뛰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공중에서 날라오는 비둘기를 보고도 기겁하는 사람이 많다. 각자의 phobia가 있는 것이다. 왜 생겼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정치노선이 다르고 좋아하는 칼라가 다르고 옷 하나를 골라도, 커피를 마셔도 선호하는 것이 다르듯 개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이는 개 전체를 다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키우는 개만 좋아하며 또 누구는 나처럼 개 전체를 무서워한다.

외출할 때 반드시 가방을 가지고 다닌다. 핸드폰만 가지고 산책을 하거나 산에 가는 일은 없다. 언제 어디서 개가 갑자기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도시 한복판에 유기견들이 돌아다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누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나에게는 큰일이다. ‘혹시나 개가 나에게 달려오거나 하면 어쩌지? 짖으면 어떡하지?’ 생각만으로도 공포가 극에 달한다.

공원에 가려고 혼자 걸어가는 도중 목줄이 없는 개를 발견했다. 백구였는데 집을 나온 건지 주인이 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경계경보 발령. 거리를 두고 걷는데 그 개가 공원으로 들어간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견주 곁으로 백구가 다가간다. 조그만 강아지를 향해 맹렬히 짖는다. 얼른 다른 길로 피해 걸었다.

며칠 후 그 공원에 갔다. 혹시 그 개가 아직도 있으면 어쩌지? 혼자 걸을 때는 주변을 항상 살핀다. 공원에 개를 풀어놓는 사람들이 있어서 산책할 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니나다를까? 그 하얀 개가 아직도 공원을 배회하는 거다. 며칠을 공원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먹을 것도 없이 얼마나 배가 고프고 밤에는 어디서 잔 걸까? 별의별 걱정을 다 했지만 그건 차치하고 내가 걱정이었다. 걸을만한 마땅한 공원이었는데 이제 개 때문에 마음 놓고 산책도 못할 지경이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알려주었다. 며칠 전부터 목줄이 풀린 큰 개가 있으니 최대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그리고 한참 동안 공원에 가지 않았다. 그 개는 어떻게 되었을까? 주인에게 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공원관리인에게 발견되어졌으면 유기견보호소로 보내졌겠지. 아니면 다른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뭐라 말할 수 없고 서로 조화롭게 살기 위해 기본만 지키면 된다. 목줄은 반드시 하고 반대편에서 사람이 오면 개가 가까이 가지 않도록 목줄을 짧게 잡아주면 된다. 어떤 견주는 개를 안아 다른 사람이 편하게 지나갈 수 있게 하는 아량까지 보인다.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최대한 개의 흔적을 깨끗하게 치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 것을 지키지 않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관리를 잘하는 전체 사람들이 비난을 받는 것이다.

어릴 적 놀다가 큰 세퍼드에게 쫓긴 적이 있다. 안 그래도 태생적으로 개를 안 좋아하는데 큰 개에게 쫓겨 달려가다 넘어지기까지 했으니 두려움이 증폭되었을 것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 많으니 나의 시각도 변하면 좋으련만 안타깝다.

호주에 있을 때 지인과 함께 호주인의 집에 놀러갔을 때 샴고양이 두 마리가 다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공포스러웠던 적이 있다. 또 다른 집에 놀러갔을 때는 집주인이 친구에게 개를 몇 시간만 봐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개가 계속 짖어대고 안절부절 못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알고 보니 밖에 나가야 볼일을 보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밖에 데리고 나가지를 않아 개가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던거다. 우리로 치면 볼일을 봐야 하는데 화장실을 못 찾은 격이다.


귀여운 개들도 많아 나를 위협하지 않고 짖지 않는다면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을 때도 있다.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를 보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자식처럼 안고 자고 데리고 다니고 귀여워하는지 알 것도 같다. 그러나 눈을 희번득 거리며 짖고 이빨을 드러낼 때는 저렇게 험한 동물과 어떻게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마음 먹는다고 마음이 바뀌면 얼마나 좋겠냐만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어려울 때가 있다. 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언제 바뀔까? 시댁에 갔는데 누가 며칠만 봐달라고 했다면서 새끼 강아지를 거실에 풀어놓았다. 딸들은 좋아라 하며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다. 강아지만 졸졸 쫓아 다니고 배 위에 올려놓고 깔깔대며 즐거워한다. 강아지가 내 옆으로 올까 마음을 졸이며 피해 다녔다. 다 큰 어른이 조그만 강아지를 무서워하며 ‘엄마야’ 하고 피해다니는 모습이 남들 눈에 얼마나 웃길까? 창피하기도 하지만 두려운 걸 어쩌란 말인가?

송충이가 덩치가 커서 무서워하나? 내게 개나 고양이는 징그럽고 무서운 존재다. 나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기호나 시각 고쳐주는 곳은 없나? 개를 키워봐야 변하나? 개를 키우면 노인들의 치매도 더디게 진행되고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더 없이 좋은 친구가 된다는 사례를 보았다. 순수하고 꾸밈없는 동물이 눈 앞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여대니 아기가 꼬물대는 것 보듯이 변화무쌍함에 지루함이 달아날 것이다. 그건 그 사람들 얘기고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사람과의 공존도 힘든데, 이제 개와도 공존을 해야 한다.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해결방법이 없다. 누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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