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연은 그저 물에 비친 그림자거나,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름 따위 아니던가’ 라고 작가 이병률은 말한다. 그렇게 허망한 인간 사이의 인연 중 가장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 부부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24년차 부부다. 부부생활은 둘이 외줄 위에서 걷는 것과 같다. 부단히도 애를 쓰며 살았다. 우리만 그런가? 떨어지면 끝장이다. 어떻게 균형을 잡고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하는가? 둘이 함께 산다는 건 마치 지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 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제각기 살던 사람 둘이 맞추면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헤게모니 다툼을 하기 위해 끝도 없는 전쟁을 한다.
둘이 못살 이유는 차고 넘친다. 제일 심각한 예로는 어느 한쪽이 폭력을 행사한다거나 외도를 하는 경우다. 용서하기 힘든 1순위 이혼 사유다. 두 번째로 도박을 한다거나 낭비벽이 있다거나 배우자 몰래 엄청난 빚을 지는 것이다. 남편 친구 중에 이혼 사유가 도박인 경우가 있다. 부인이 여러 차례 기회를 줬지만 습관성 도박으로 인하여 결국 헤어지게 되었고 아이들을 각자 키우고 있다. 부인에게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다시 도박을 안 한다고 어필을 해도 부인의 마음은 닫히고 말았다.
세 번째로는 경제활동이다. 둘이 합의되지 않은 상황인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할 의욕이 없거나 의욕이 있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도저히 기본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다면? 이것은 꼭 남자에게만 해당 되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이유들도 많다. 예를 들면 아내가 육아에 대한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거나 집안일에 등한시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역할 기대가 있지 않은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둘 사이에 원만한 합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는데 둘 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둘 다 육아에 의지가 없다면 그 결혼생활은 유지 되지 못할 것이다.
네 번째, 문제가 있어서 한쪽이 대화를 시도했을 때 다른쪽이 무시를 하거나 소통이 되지 않을 때에도 둘이 같이 생활하기는 힘들다. 둘만의 문제가 다가 아니다. 아이가 생겼는데 장애가 있다거나 여러 가지 질병이나 문제가 있을 때도 삶은 녹록하지 않다. 환경이 그래서일까? 요즘은 아이들이 다양한 질병을 안고 태어난다. 면역 관련 질병이 많다. 천식, 아토피, 비염 등으로 고통을 받는 아이들이 흔하다. 병원에 입원한 심각한 병이 아니라도 매일 견뎌야 하는 질병들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도 큰딸이 심한 아토피라 애간장이 타들어 갈 정도로 힘이 들었다.
다섯 번째, 시댁과 처가의 부모, 형제가 부부갈등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경제적인 원조를 해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반대로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도 문제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부부는 부모에게 의지하게 되고 간섭까지 받을 수 있다. 부부 문제에 부모와 일가친척이 개입된다면 이건 장외전이라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즐겨봤던 프로 중에 ‘돌싱글즈’가 있다. 이혼한 남녀 8명이 나와서 데이트를 하고 며칠간 동거를 하며 최종선택을 하는 구성이다. 나오는 출연자 중 여러 명은 이혼의 사유가 양쪽 부모의 개입 내지는 부모와의 갈등이었다.
여섯 번째로 성적인 문제도 부부관계에서는 꽤 중요한 아니 제일(?)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이혼의 결정적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섹스리스 부부가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겉으로 내놓고 얘기도 못하고 남들에게는 성격 차이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속궁합이 맞지 않아서 이혼한다고 차마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서로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면 부부 생활을 원만히 하기는 힘들다.
많은 지뢰를 피해 다녀야 한다. 남북 사이에 놓인 지뢰만큼이나 숨 막히는 이혼 사유를 밟지 않아야 한다. 설사 밟았다 해도 터지지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을 모면하며 부부생활을 유지한다는 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를 보는 것과도 같다. 남자와 여자, 다른 두 성이 만난 것이다. 남자는 끝까지 남자이고 여자도 죽을 때까지 여자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힘 자랑을 해야 하고 여자도 숨을 거둘 때까지 예쁘게 보이고 싶을 것이다.
최근에 알게 된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에는 70대 부부의 얘기가 나온다. 서로 알고 지내는 두 커플의 스토리다. 남편 둘이 서로 사랑에 빠진다. 둘 다 변호사이고 동업자다. 20년 동안 성 정체성을 부인들에게 숨기며 몰래 사랑을 하다가 커밍아웃을 한다. 40년 가까이 살아온 내 남편이 게이인 것이다. 그리고 70대에 이혼을 통보받는다. 이 기막힘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당하는 부인들 입장에서는 황당하겠지만 남편들의 입장은 다르다. 여생이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성 정체를 밝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남의 나라 얘기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각자의 사연이 있다. 상상할 수 없는, 겪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드라마에는 이혼 통보를 받은 부인 둘이 성격은 안 맞지만 별장에 함께 기거하며 서로의 아픔을 헤집었다가 위로했다가 하며 절친이 되는 과정이 나온다. 인정할 건 깨끗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유쾌하고 솔직하다.
이 모든 문제를 다 비켜가며 줄타기를 하는 부부관계가 어찌 어렵고 위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하루하루 서로의 사이를 점검한다. 아내의 기분이 어떤지? 남편의 컨디션이 어떤지? 주로 여자들은 남편이 밖에서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지 않는지? 또 남편들은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게 가족을 만족시킬까? 아내에게 인정을 받을까? 생각하느라 고민이 많다.
‘평범한 결혼생활’에서 임경선 작가는 말한다. ‘100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결혼의 불리함과 비합리성을 설득시킨다 해도, 망할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어떤 맹목적인 마음에, 나는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찰나를 본다. 결혼은 참으로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하다.’ 매우 공감이 가는 구절이다.
실제로 결혼생활에 온통 안 좋은 것만 있다면 왜 사람들이 결혼을 하겠는가? 고통을 상쇄할 만한 그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기에 우리는 결혼을 종용하고 또 스스로 그 불구덩이에 뛰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넓디넓은 공원에서 아장아장 걷는 어린 내 아이가 두 팔을 앙증맞게 벌리고 내게로 달려오는 모습을 볼 때의 행복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초등학교 운동회 날 단체 무용하는 내 아이의 그 귀여운 모습에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는 걸 왜일까? 그런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내 삶에 무한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런 찰나의 기쁨을 위해 결혼한다. 불행할 수도 있을 걸 알면서 결혼한다. 모르니까 한다고 해야 하나? 재혼을 하는 사람들은 배우자가 달라지면 또 다른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고 감행하는 것이리라.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또 둘째를 낳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