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유명하고 상징적인 건축물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을 떠올릴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그 건축물이 이렇게 유명해지게 될 줄 누가 알았던가? 고집도 부려야할 때가 있나 보다. 한 사람의 우직한 계획과 실행이 이렇게나 멋진 건축물을 선물할 줄이야. 프랑스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멋진 에펠탑. 멀리에서, 또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심지어 올라갈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이때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다른 때보다는 덜 더웠다고 하지만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그늘막 없이 30도의 기온 속에서 1시간 30분 동안 서 있었다. 그나마 양산과 선글라스를 가져갔으니 다행이지 그마저도 없는 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양산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 여자들밖에 없었다. 그러면 어떠랴, 더위에 짜증 내는 것보다 낫지. 한참을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파리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비슷한 색깔의 건물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파리 시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통일된 색깔과 조각을 품은 건물들이 예술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거기에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공원과 푸른 가로수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에펠탑은 멀리서 보면 완벽한 아치와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안에서, 밑에서 들여다보면 딱딱하기만 한 철골구조물이다. 중간층에 올라가니 안에 카페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 그리고 안에서 볼 때 에펠탑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을 닮았다고 할 수도 있다. 멋있고 화려한 타인의 삶을 볼 때 에펠탑의 모형처럼 아름다운 곡선만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딱딱한 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드러움은 강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 내부에서는 숨겨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환상이 깨졌다고는 하지만 파리를 떠날 때까지 에펠탑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에펠탑은 파리요, 파리는 에펠탑이다. 마지막 날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탈 때도 1시간 동안 마치 달을 보는 마음처럼 에펠탑을 눈으로 쫓았다. 높은 건물이 없는 파리에서 에펠탑의 높이와 모양은 독보적이다. 세느강은 영화 ‘퐁네프의 다리’ 덕분에 더욱 유명해진다. 레오 까락스 감독, 줄리엣 비노쉬의 작품, 충격을 넘어 거부감이 일었던 작품이다.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나의 영화 취향과 맞지 않아서였는지 감동이 없었는데 세느강에 와보니 그 작품이 생각난다.
젊은 날, 겨울에 왔을 때는 한없이 슬프고 초라하게만 보이던 세느강이 이렇게나 생동감이 넘치다니. 그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유람선, 파리를 흠뻑 즐기는 전 세계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 어쩌면 파리는 이토록 아름다워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약 1,000여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유람선을 탔다. 사람이 많으니 타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가만히, 얌전히 앉아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니 한 두명씩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일어난다. 가장자리 난간을 붙잡고 사진을 찍는다. 딸이 가만히 다가와 귀에 이어폰을 꽂아준다. 낭만도 챙기라며 재즈를 틀어준다. 이 순간 내게 바랄 건 더 없다. 파리, 세느강, 유람선, 재즈 그리고 함께 여행하는 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