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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Jun 23. 2022

강은 원래 길이었을 것이다

마을과 마을 이어주고

1.

   강은 원래 길이었을 것이다 

  그 길 따라 작은 물방울이 서로 안아주고 감싸주면서 물결이 되었을 것이고, 그 물결들이 모여 시냇물이 되어 흘러 강이 되었을 것이다. 또 한 해가 그 강을 따라 시간의 기억 속으로 흘러간다.

2.

  잊을 수 없는 것들과 잊어버린 것들과 잊고 싶은 것들 또한 그 기억의 강 속으로 흘려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는 강은 끝내 무심하다. 강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며 축복이지만 강의 물결 그 숨결을 감지 못하는 이에게 강은 완고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3.

   강은 결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법이 없다. 도도하다. 한결같이 사람을 믿지 않는 것 또한 강이다. 어느 날 강가에 서거나 스산한 바람 한적한 강기슭 한참을 걸어도 쌀쌀맞기 그지없는 것이 강이다. 말을 걸기 전에 마음을 걸어라. 강은 그러므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4.

  가까이 있어도 먼 사람, 멀리 있어도 가까운 사람, 이따위 사람들의 가엾은 수사에 대해 강은 비난하거나 간섭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답답하다. 가에 'ㅇ'을 달고 온통 낮은 곳으로 구르는 것이 강이다. 강은 물과 더불어 한시도 거스르거나, 올라서거나, 부딪히는 법이 없다. 합리와 순리와 상식은 강의 다른 이기도 하다. 

5.

  강은 과거를 묻거나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 지나온 길에 후회하지 않고 아쉬움 없이 먼 날 기약 없는 시간 속으로 근심 없이 흐르는 것이다. 강은 있던 길을 원망하거나 애써 길을 내거나 힘쓰지 않고 간혹 막히면 그저 돌아가서 조금 돌아서 가는 것이 강이다. 

6.

  낮아져서 물의 왕이 된 바다에 이르는 하구에 가서 강은 이미 겸손을 통달한 듯이 보인다. 낮아져서 깊어지고, 깊어져서 낮아진 것이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고, 자신을 물에 새기거나 가두는 법 없이 제 몸을 아래로 내어줌으로써 강이 되어 온 것이다. 

7.

  신은 사람에게 길 대신 강을 주었다. 수천만 년 전 사람들은 강변에서 또는 강에서 살길을 찾았다. 때로는 강을 두고 전쟁을 하였으며, 더러는 용서하고 화해했다. 강은 그때마다 살길을 주었다. 그 속에 생명이 부유했으며 진리가 가득했다. 저만 보고 강을 보지 못한 자들은 결국에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8.

  강을 소유했던 왕국도, 강 앞에서 오만했던 장수도 이제는 모두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이루었던 부귀도 명성도 저 강 따라 과거로 돌아갔다. 강은 유유히 먼 옛날 찬란했던 어떤 왕국의 폐허를 돌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강은 강을 닮아 나누는 자와 참고 기다리는 자와 스스로 낮추는 자에게만 길을 열어 주었다. 

강은 이를테면 편지 같은 것이다.

마을과 마을 이어주고

그 마을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그 사람의 사랑과 사랑을 이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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