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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Jun 24. 2022

베트남

궁당익견(窮當益堅)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혼자 오래 살면서 생겨난 버릇이 있다. 자주 눈을 감는 버릇이다. 화날 때, 속이 상할 때 눈을 일단 감고 본다. 이해할 수 없을 때 눈을 감는다. 서운할 때도 감고 참을 수 없을 때도 눈을 감는다. 눈을 감게 되면 내 안을 볼 수 있다. 현실과 불화 혹은 타협하는 나를 보게 된다.

  눈을 감고 잠시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뜨거운 몸을 식히듯 마음을 식히는 것이다. 돌처럼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찐빵처럼 삶는 것이다. 마음이 좁아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눈을 감고 조금 참아보면 마음이 참하게 다듬어지는 것이다.
 
  베트남이란 나라는 우리와는 정말 다른 나라이다. 또 한 베트남 사람도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그들에게 일을 시키다 보면 우리와 같은 생각, 같은 느낌, 같은 이해를 바라게 되는데 위험한 착각이라는 것을 이내 하게 된다. 같은 듯하면서도 아주 다른 게 이들이다. 다른 것이 틀린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순간 좋았던 감정은 졸지에 나쁜 감정으로 변하게 된다. 
  마음은 언어라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마음이 부정적이면 부정적 언어가 나오고 부정적으로 말할 때 마음도 부서진다. 게으르다. 더럽다. 못생겼다. 시간과 목표 개념이 없다는 등 부정적인 말들을 상대에게 말하기 시작하면 내 마음 역시 부도가 나서 당장은 재생 불가가 된다. 부정적인 마음은 펴지지 않는 낙화산이 되어 끝내 추락하고 만다.
 
  베트남은 또 없는 것이 많고,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 이기도하다. 엎드러져 있다가 막 일어나는 그런 나라이다. 너무 많은 기대를 너무 빨리 원하다가는 빨리 쉽게 망한다. 시간이 매우 필요한 나라이다. 외형적으로 산업 인프라가 구축되어도 선진국형의 비가시적 인프라-투명, 정직, 신뢰, 고객 위주의 시스템이 정착되기까지는 적어도 한두 세대가 지나야 할지 모른다.
  베트남은 베트남 식대로, 우리는 우리 식대로 누구 마음대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경제 발전을 이루는 동안 베트남은 전쟁으로 통일을 이룬 나라이다. 가난하지만 당당한 나라이다. 가진 것은 없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나라이고 우리와는 완전 가치관이 다른 나라 이기도하다. 다르다는 것은 존중해 주어야 하고 인정을 해주어야 대우받는 나라이다.
 
  알면서도 베트남 현장으로 들어가면 화부터 낼 때가 많이 있다. 화내기 전에 눈을 감아야 하는데 화부터 내고 눈을 감는다. 한번 화를 내면 수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감정의 낭비로 인한 낭패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나를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베트남에 왔고 또 이들을 직원으로 채용해서 일하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부족함이 많은 나에게 베트남이란 인성을 키우고 인내를 키우고 가꾸는 학교이다. 인내를 배우고 겸손을 학습하고 친절을 훈련하는 훈련 코스이기도 하다. 언제나 늘 문제를 던져주는 이곳의 사람들은 마치 나의 교사 같은 때도 있다. 매일 부딪히는 문제 앞에서 버럭 화를 내면 최악의 답이 되고는 한다. 마음이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순간에 흉기도 되고 향기도 된다. 다시 화를 내기 전 눈을 감고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베트남은 나에게도 기회를 가져다주는 나라이다. 마음 밭에 꽃씨를 뿌리고 가꾸어 끝내 향기를 끌어내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자주 눈을 감아 조금씩 마음의 평수를 넓혀가는 나만의 나를 만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괴롭히는 사람도, 불친절한 사람도, 가장 조급한 사람도, 가장 소심한 이도 내 안에 있다.
  베트남의 오늘이 던져준 문제 앞에서 마음을 달래고 내게 친절을 베푸니 내가 먼저 따뜻해진다.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세상은 문제의 연속이다. 문제를 피하기보다는 오늘의 문제를 내일의 기회로 삼고 풀어나가는 큰마음이 자신에게 친절한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내일의 교훈으로 산다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고 미래를 키워나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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