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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Jul 05. 2023

버지니아울프의 '등대로'

지난 여름이 끝날 무렵 홍천에 가면서 몇권의 책을 들고 갔었다. 물론 나는 퇴직한 사람이라서 시간이 많이 남기에 한가롭게 책이라도 보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속독가도 아니고, 문장을 이해하며 읽는 버릇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책 읽는 시간이 긴 편이다.


  시골에서 한 눈 팔 시간없이 책에만 몰두했더니 책을 2권이나 완독할 수 있었다. 그 중 첫번째 책이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라는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은 두번째이다. <자기만의 방>을 아주 오래전에 읽고 ‘버지니아 울프’를 천재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접하게 되며 그 시안에 나오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동경해 오면서 생겨난 버릇이라고 할까)

  이 사람을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게'라는 형용사가 붙을 만큼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느꼈다. 가벼워 보이지만 문장이 지니고 있는 생각의 무게가 엄청나게 두껍고 묵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마치 은사를 동경하듯 머릿속에 각인하고 있었는데, 올해 '소설가가 추천하는 세계문학' 5종 중에 2권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중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골랐었다.


  소설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작가들이 인생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산문으로서의 서사성을 최대한으로 부여함으로써 그 정체성이 확립되며 장족의 발전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20세기 초반에 이에 대한 반발이 런던 출생의 버지나아 울프와 제임스 조이스에 의해 싹이 텄다. 이들은 객관적이고, 외적인 세계로부터 눈을 돌려 개인의 심리 내부에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잡다한 이미지, 정서, 기억을 그대로 포착하여 기술하는 작법을 창안하여 실천하였다.


  특히 섬세한 감성을 지닌 여류작가 울프(1882~1941)는 대표작 (자전적 소설) 등대로(To the Lightouse)(1927)에서 한 편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시를 방불케 하는 정서적 이미지를 담은 문장으로, 산문으로서의 서사성을 중시해 온 기존의 관습에 도전했다.


  “가을철의 수목들은 비록 황량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들은 마치 전사자들의 이름과 멀리 인도의 섬에서 전사자들의 유해가 썩거나 불타고 있음을 금빛 글씨로 새긴 대리석 비석이 있는, 차가운 성당 지하실 한 구석에 세워져 빛나고 있는 찢어진 군기와도 같다. 가을철의 수목은 휘영청 밝은 달빛 속에 빛나며, 그 달빛은 노동의 대가를 무르익게 하고, 보리를 벤 그루터기들을 고루 감싸주고 해변의 푸른 파도를 출렁이게 만들어 준다.”(등대로의 일부)


  이것은 계절이 드러내는 정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상心象에 명멸明滅하는 느낌의 상태를 메타포metaphor로써 표현하고 있다. 나뭇잎이 떨어진 수목을 ‘전사자들의 이름’ ‘금빛 글씨로 새긴 대리석 비석’ ‘찢어진 군기’로 비유한 것은 이미지즘imagism과 맥을 같이 한다. 계속 이어지는 달빛에 대해서는 흡사 릴케의 서정시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등대로”는 정말 글발에서 빛이 난다.

  한폭의 수채화를 글로 그리면 이런 문장이 나오지 않을까?

  글을 읽으며 자연스레 그림이 그려진다. 사실 '자연스러움' 보다는 '강제적으로' 가 더 와닿는 표현이다.


  '별장 안에서 아이를 품에 앉고 책을 읽어주는 부인, 마당에서는 학자들이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한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구석구석 스며든다.'


  1차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배경을 그릴 때도 묘사는 아름답다.


  ‘봄이 되자 정원의 화분들에는 우연히 바람에 불려 온 풀들이 꽃을 가득 피워 여전히 화려했다. 제비꽃이 피었고, 수선화가 피었다. 하지만 고요하고 화사한 대낮은 혼돈스럽고 소란한 밤만큼이나 기이했다. 거기 서 있는 나무들과 거기 서 있는 꽃들이 앞을 바라보고 올려다보았지만, 눈이 없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그래서 끔찍했다.’(등대로의 일부)


  이렇게 묘사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버지니아 울프가 탁월한 관찰가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과거에 <자기만의 방>을 읽을 때에도 느꼈던 감각인데,


  “항상 공간의 분위기를 파악해야만 하는 사람의 습관적인 관찰이 느껴졌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분위기를 파악하는 사람의 관찰능력은 기민하고 섬세할 수 밖에 없다. 그 공간에 있는 사실적인 풍경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추상적인 감각들도 캐치하는 관찰.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나는 이렇게 멋진 문장을 쓸 수 없지만.

  나는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문단이 나오면 적어 놓는다.  훗날 필사를 하고 싶을 때 적어 놓은 것들 중 골라서 필사하기 위함이다. 이번에도 빽빽히 수첩에 적어놓고 싶은 부분들을 적어놓았다. (볼펜을 잡을 수 없어 노트북으로 저장함.)


  <등대로>의 '릴리 브리스코'는 충분히 매력적인 등장인물이라고 소개하겠다.

  읽어보면 빠져들게 될 것이고,

  빠지진 않더라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 죽음과 삶


    등대로는 그림같은 소설이다.

    1부 <창 >은 스코틀랜드 해변에 있는 스카이 섬의 별장을 배경으로 램지갸족이 친지들과 휴가를 보내는 9월 어느 오후의 정경을, 2부 < 시간이 흐른다 >는 전시를 거치면서 폐가가 되어 가는 별장의 황량한 분위기를, 3부 <등대>는 다시 돌아온 램지 가족 일부가 등대를 원정하고 나서고 릴리 브리스코가 그림을 완성하는 9월 어느 오전의 풍경을 그려낸다.


  1부의 중심인물인 램지부인과 출중한 학자가 될 재능이 있었던 앤드루, 빼어난 미모와 부드러운 심성을 지닌 프루의 돌연한 죽음은 대단치 않은 사건처럼 괄호안에 몇줄로 간단히 기술될뿐. <등대로>의 상상력은 죽음이 가져올 소멸와 삶의 의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죽음의 엄연한 존재를 선명하게 부각, 죽음이 작품의 중심 테마로 등장한다.


  2부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떠난 별장에 빌려드는부재, 퇴락, 폐허, 소멸의 어둠을 묘사하면서 인간이 일으키는 재난의 위험과 그에 상응하는 자연의 파괴적인 힘을 형상화한다. 스카이 섬이 부서져서 바닷속에 가라앉으리라는 반복되는암시도 자연재해나 기상 이변으로 인한 소멸의 두려움을 일깨우며 인간의 위태로운 존재 상황을 부각한다. <등대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이처럼 소멸 위기에 처한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인간 삶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수 있는가 하는 실존적 물음이다. 1910년대 전후 시대의 정신적 풍경화를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2. 의식의 드라마


  삶이란 말끔하게 정리되고 명확히 정의될 수 있는 "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늘어선 가로등 " 이 아니라

  "의식이 시작되고 끝날때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빛나는 후광이자, 반투명한 덮개 " 라고 울프는 말한다.


  일상적인 날의 평범한 마음이 받아들이는무수한 인상들과 거기서 촉발되는 연상들과 기억들, 즉 ' 심리의 모호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 보다 진정한 리얼리티다.


  삶이란 " 답을 찾을 수없는 절망적 상황에 처한 인간 의식을 드라마 "


  3. 순간과 영원


  울프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자신 삶의 큰 질곡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여러 시도들... 그는 위대한 철학자라는 명성을 통해서 유한한 존재를 넘어서는 의미를 찾으려 한다. 발에 걷어 차이는 돌멩이도 세익스피어보다 더 오래 남는다고 생각하며 영원한 명성을 바라는 자신의 집착을 희화화하기도 한다. 반면에 램지부인은 단절되고 분열된 사람들 간의 화합을 꾀하려는 이타적 인물로 제시된다. 화합을 추구하는 것은 혼돈과 무의미, 허무를 넘어서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바쳐야 하는 일이었다.


  4. 존재의 순간


  램지부부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을 풀어내는 릴리 브리스코의 의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램지씨의 준엄한 지적 통찰과 램지 부인의 초월적 감각. 



   울프에게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로서 부모에 대한 진혼곡이나 만가 같은 것이었다. 20세기 초반 영국 모더니즘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 중 하나로 꼽히고 또한 영국 소설의 정전에 포함되는 작품으로 산문을 시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풍부한 시적, 상징적 이미지와 극히 섬세하고 예리한 묘사가 일품이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의식들 사이의 빈번한 관점 이동, 울프 자신이 "간접화법"이라고 부른 내적 독백과 실제 대화의 불분명한 경계, 다층적 시간, 외적 사건의 연속성 해쳬등 파격적 서술 양식으로 인해 종래 소설과 달리 난해한 구조를 이룬다. 하지만 이처럼 참신한 서사 양식은 독자의 의식과 감각을 일깨워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게 하는 이점이 있다,


  ※ 전체적인 감상


  1. 버지니아 울프야말로 진정 지식인처럼 사유하고 글을 쓰는 사람같다.

  2. 1부는 정말 따뜻하고 평화롭다. 너무 평화로워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3. 2부는 무슨 불꽃놀이마냥 펑펑 놀래키는데,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사족처럼 적혀있어서 더 충격적이다.

  4. 빛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다. 이름부터 등대가 들어가서 그런가. 구불구불한 빛, 직선적인 빛, 먼지가 둥둥 부유하는 빛 등등.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로서 “등대로”를 발표하며 영국의 제1류 작가로 떠올랐다. 캠브리지 대학 출신으로 ‘델러웨이 부인’과 ‘파도’ ‘세월’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며 한 때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나, 결국 신경쇠약 증세로 우즈강에 투신자살함으로 생을 마감한 불운의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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