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기 시작한 건
우리가 골목을 반쯤 지났을 때였다
구름은 숨을 깊게 내쉬고,
하늘은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
당신은 가방 속에서 작은 우산 하나를 꺼냈다
평소엔 두 사람이 쓰기엔 너무 작은 우산
그러나 그날, 그 우산은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가깝게 만들었다
내 어깨와 당신의 어깨가 겹치고,
머리칼에 묻은 빗방울이
당신의 향기와 섞여 스며들었다
우산 끝을 스치는 비 소리가
작은 파도처럼 귓가를 때렸다
나는 비가 조금 더 내리길 바랐다
우산 속에서 걷는 이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지길 바랐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비를 피하며 달려갔지만
우린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이 빗속이
우리만을 위해 준비된 무대인 것처럼,
우산은 조용히 우리를 가려주었다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넓은 하늘을 함께 보는 것도 좋지만
좁은 우산 속에서
한 뼘의 세상을 나누는 순간에
더 깊이 자란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우산 속에서 나는
당신과 평생 같은 빗속을 걸어가기로
조용히, 아주 조용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