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거든

도담 박용운

by 도담 박용운


나 죽거든

내 이름을 부르지 말고

내가 남기고 간 자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길


내가 비워둔 의자에

한 줄기 햇빛이 앉거든

그게 나라고 믿지 말고

그저 오늘도 빛이 왔다고

살며시 웃어주길


나 죽거든

내가 했던 말 중에

단 한 문장이라도

당신을 조금이라도 살게 했다면

그걸 내 장례식 대신 기억해 주길


그리고 무엇보다—

나 죽거든,

당신은 더 살아주길

내가 다 못 산 계절들을

당신이 대신 걸어주길


그게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줄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유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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