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쓸수록 진지하게 된다
어떤 글을 쓰기 시작해서 다 썼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더 써보자.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다. 글은 쓸수록 진지하게 된다. 그래야만 좋은 글을 쓰게 된다. 글은 쓰면 쓸수록 쉬워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자신의 글을 합평한다거나, 비평가가 비평하며 이것도 글이라고 썼냐고 혹평을 하더라도 거기에 신경 쓰지 말자. 그저 하나의 비평이기 때문에 나의 글쓰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이다.
자신이 쓴 글이 있다면 발표해야 한다. 글이 글 같지 않다고 생각해도 남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로부터 작품이 떠나야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써 놓은 글에 애착을 갖지 마라, 될 수 있으면 나로부터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 이것도 나와의 글쓰기에 대한 약속이다.
앞서 말한 체험 지향적인 삶, 일상을 낯설게 보기, 악의 편에 서기 등의 태도와 생각하고 축적한 내용을 묘사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려면 장이로서의 스킬이 있어야 한다. 소설을 만드는 일에 무엇보다 필수적이면서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어휘 실력이다.
작가는 어휘의 마술사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어휘의 마술사가 되지 않으면 작가가 되기 어렵다는 말도 될 것이다. 묘사를 정확하게 하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뭔가 머리에서 뱅뱅 돌기는 하는데 막상 글로 쓰려면 안되는 것은 바로 어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어휘가 적으면 뭔가 묘사를 해놓아도 영 이미지가 다르게 전달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어휘 실력이 늘 수 있을까? 그야 말할 것도 없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읽을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물론 고전 명작 등이나 사회, 인문, 지리 등등의 교양서적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다. 이런 공부도 그저 일상중에 부담 갖지 말고 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신문을 보는 그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신조어나 외래어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전에 없던 뭔가를 만들어 내면 이름을 붙이는데 그런 물건 그런 조직 그런 이름 등등이 하도 많아서 그런 어휘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거짓이 없던 시절에는 신문 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신문에 대한 신뢰도가 없어지면서 신문을 멀리하게 된 것이 아쉽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어휘를 늘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다 외국어에 관해서 하루에 그냥 심심풀이로 단어를 2개씩 외우고 하나를 잊어버린다면 그래도 일 년이면 3백 개의 단어가 남지 않을까? 10년이면 3천 개, 이 정도면 간단하게 외국 여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나이가 문제가 되겠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휘가 풍부해지지 않고는 글 자체가 신선해지지 않는다. 어휘도 유행이 있다. 과거에 유행했던 말을 지금도 하고 있으면 안 된다. 맞다. 계속해서 변해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삼국시대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람들의 노래가 鄕歌인데 아직도 모르는 단어들이 있다. 그분들을 지금 만나면 할아버지들이지만 통역 없이 는 거의 소통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도 70년대 언어와 80년대 언어가 따로 있다. 그렇다고 그때 유행했던 말을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소설을 쓸 때 지금에 살아가는 인물을 그리면서 과거 수십 년 전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해놓으면 그 주인공은 사실성이 떨어지고 이상한 인물이 되어 버린다. 작금의 감각 나아가 앞으로의 신감각을 이 어휘 분야에서도 계속 따라붙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또 변천하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