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그러면 작가는 왜 쓰려고 하는가? 참으로 엉뚱한 물음이다. 그러나 그 물음 안에는 문학의 본질, 그리고 소설의 본질이 들어 있다. 요즈음 같이 문학작품이 상품화된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답인지는 모르나, 작가는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가슴속의 복받침 때문에 소설을 쓴다. 외부의 요구 때문에 억지로 만들어 낸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비록 천재가 있어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의 감동은 길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쓴 사람의 한, 혹은 설움, 즉 혼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 참다가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 되었을 때 말해야 한다. 그래야 그 안에 자신의 진실을 담을 수가 있다. 평생 한 편의 작품만을 쓰겠다는 것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별로 환영할 바가 못 된다. 그렇다고 하룻밤에 장편 한 편씩 일 년에 수 편의 장편을 쓴다는 것도 그리 자랑은 못 된다.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말이 무어 그리 많겠는가.
필자는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는 문외한이나, 작가가 왜 작품을 쓰는가에 답을 하기에는 ‘콤플렉스’라는 단어가 안성맞춤이다.
자신이 알게 된 비밀을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면 거기서 오는 중압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얼마나 입이 간지럽겠는가. 일종의 complex가 생길 것이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그 사실은 시원하게 발설하는 것이다.
그렇다 작가는 입으로 발설하기보다 펜으로 발설한다. 한 편의 작품을 마무리하고 펜을 놓을 때 작가가 느끼는 시원함, 쾌감은 다름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조리 있고 진지하게 끝마쳤을 때 느끼는 상쾌함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콤플렉스를 감추기도 한다. 그것을 보상심리라 해도 좋고, 배상 심리라 해도 좋다. 작가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자신이 지닌 콤플렉스와는 대조적인 사건과 인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작가의 콤플렉스는 다양할 것이다. 사랑의 실패에서 오는 것일 수도, 집안의 가난에서 올 수도, 많은 형제 틈에 끼어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에서 올 수도 있다.
이런 콤플렉스 - 한을 끝내 감추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작가는 작품을 쓰는 것이다. 그런 한이 없다면, 쓰고픈 욕망이 없다면 결코 작품을 쓸 생각을 말자. 누군가가 청탁을 했다 해서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지 말라. 물론 노련한 작가는 청탁을 받는 순간, 청탁의 조건에 맞는, 숨겨놓았던 자신의 한을 찾아내어 순식간에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습작기에 있다면 우선은 숨겨져 있는 자신의 한을 찾기에 노력하자. 물론 자신의 한, 혹은 콤플렉스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생각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을 쓰자.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 이야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