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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Jan 21. 2022

하노이에서 살아가기(1)

빛과 조명 照明의 역사

  ※ 필자가 2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베트남 하노이에서 사업을 하면서 썼던 글 중에 발췌하여 정리한 내용이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새삼스레 살아온 인생을 말하다 보면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전기조명에 관한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음에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 때가 있다. 조명이라고 하면 인간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술적으로 크게 나누면 태양광에 의한 채광인 주광조명과 인공광원에 의한 인공조명이 있다. 태양광은 인간이 느끼는 모든 빛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태양광은 계절, 시간, 기후에 따른 변동에 한계가 있고, 인간 생활을 위한 조명 전부는 아니기에, 인공광원을 개발하여 형광물질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빛을 조명으로 이용하고 있다.

    

  2천 년대 초반 베트남의 광원을 바꿔 보겠다는 야심 찬 기획과 함께 포스코 건설이 벌이고 있던 하떠이성 북 앙카잉 신도시 개발에 참여 조명공사 부문을 직접 진행하였고, 두산 하비코 타워를 비롯하여 롯데 센터 등 크고 작은 전기공사 프로젝트에 참여  일부 수행을 한 경험이 있다.     


  월드 비나(World Lighting Vina)를 설립해서 베트남의 전기에너지 자원으로 빛을 바꿔 보려고 무던히 노력했었다. 또 한 하노이 플라자호텔 기초공사를 할 무렵 한국에서 1군 건설업체 조명을 제조 납품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대기업 협력사인 ㅇㅇ산업 영업본부장 시절 유명 호텔 설계를 많이 했던 플러스 건축설계의 제안을 받아 베트남에 정착하는 인연을 맺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막상 베트남 하노이에 들어와 보니 예상외로 사업환경이 너무나도 열악했다. 다시 말해서 제조 공장을 운영하기에는 모든 제반적인 사항이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므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하노이에서 보름, 한국에서 보름 번갈아 가며 일을 꾸려 나가야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여 본격적으로 전기조명 전문업체를 설립하여 운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노이 시가지에서 비포장도로를 2시간 가까이 터덜거리고 나가 조립공장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고 그 또한 6개월 이상 걸렸다. 사회주의를 몸소 체험하며 끝도 없는 불합리에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앞만 보고 달린 덕분에 초기에 몇 개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수주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시간이 지나면서 두산이 건설하던 하비코 타워가 분양률이 너무 저조해서 건설 도중 부도 발생하는 등 뜻하지 않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 와중에 참빗 오피스 타워 35층 건물 조명 전체를 납품하였고, 호텔의 일정 부분을 납품할 수 있었다.


  당시 정신을 차려보니 크고 작은 공사들이 클레임에 많이 걸려 있었다. 그 속에서  한편으론 건설업체의 밝은 전망을  보았다. 어차피 하노이와 인연이 된 이상 시간을 두고 전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큰 기업은 아니었지만 일이 많아지면서 직원들이 늘어남에 따라 운영상 어려움은 현지 직원들과 한국 직원들 간의 융화가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호 간에 크고 작은 일들도 하루 멀게 벌어지고 때론 사고를 치고 도주하는 직원들도 있어 그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나보다 먼저 하노이에 온 지 오래된 사람들이 말하기를 현지 베트남 직원들은 6개월 이상 고용을 하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니 퇴사를 시키고 새롭게 직원들을 뽑으라는 말의 뜻이 무슨 말인지 나중 알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베트남 사람들은 처음에는 순진하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일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자면 6개월 정도 일을 해서 그 일에 숙련이 되면 일은 안 하고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들 머리 위에서 갑질을 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전체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기왕에 베트남에 진출한 이상 무엇이라도 이루려고 하는 마음만은 간절했다. 베트남의 빛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와 함께 기계식 안정기를 전자식 안정기로 교체 보급을 통해 낭비되는 전력을 막을 수 있었기에, 하노이 전력국 등을 찾아다니며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며 적극적인 영업에 나선 덕에 외국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하노이 관급 공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밤을 밝혀주는 조명이 없었다면 ~~~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끔찍하다.      


  빛은 생명을 창조하였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북경원인)가 불을 사용한 이후 인류 조명은 취사와 난방의 복합 기능에서 독립적으로 분화하여, 1만 4500년 전 크로마뇽인이 횃불을 이용해 벽화를 그리게 되었다.   

 

 

  인지의 발달로 인간의 빛의 효율적인 이용은 점차 다양해지고 인공조명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 우리나라는 낙랑 유적에서 청동제 고배 형 등잔과 토기 등잔이 발견되었고, 가야, 삼국시대의 청동 등잔과 이형 토기 등잔 등이 고대 조명의 형태를 유추하게 한다.

    

  1. 전통 조명     

  빛은 신화의 소재이자 근원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생산 활동을 위한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도구이기도 했다. 따라서 빛과 조명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발자취이자 빛으로 표상된 인류의 사고가 함축된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조명 관에서는 옛 등 화구를 통해 선조들의 지혜로운 생활 방식을 이해하고 희로애락 가득했던 그들의 삶과 마주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물적 삶을 밝혀온 빛이 그 안에 함께 하기 때문이다.     

   

       

  2. 근대 조명      

  서구사회는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의 향상과 자본의 확대, 상업의 발전으로 눈부신 문화발전과 근대화를 이루었다. 그 원동력 중의 하나가 교통기관의 발전이다. 수레에서 시작한 마차, 자동차, 기차, 선박과 같은 운송 수단의 발달은 사람과 자원의 이동, 지역과 지역의 근거리와 나라와 나라의 접촉, 문화와 문화 간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교통기관에서의 조명의 장착은 야간의 원활한 운송과 안전한 통행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산업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반 생활 조명으로 쓰이던 램프와 가스등, 배터리와 전기가 그 시대의 운송 수단과 결합하면서 다양한 마차 등, 자동차 등, 기차 등, 선등 등의 교통 조명으로 세분화, 변화, 발전하면서 근대 교통문화와 조명문화의 성장을 이끌게 되었다.     


   18세기 유럽은 고래기름을 연료로 하는 오일 램프를 일상의 주 조명으로 사용해왔었으나 고래의 멸종과 대체 에너지의 전환이 대 두면서 18세기 말부터 석탄을 가열해 가스를 만들어 빛을 내는 가스등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가스등은 무대나 도시 주택, 큰 건물, 거리 가로등으로 사용하기 좋은 고 광량을 가졌고 한 장소에서 여러 장소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적인 조명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수도관처럼 땅 밑에 묻힌 가스관을 통해 가스가 공급되어야 불을 밝힐 수 있어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조명이었다. 또한 가스가 연소할 때 암모니아와 황을 배출하였고 가스 연기와 냄새가 빛 공해를 가져와서 건강에 해를 입히는 문제가 존재했기 때문에 19세기 말 전기조명의 등장으로 점차 퇴화하게 되었다.     


  3. 현대 조명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 이전에도 데이비드, 린지, 우다드와 같은 여러 과학자가 백열전구를 연구해왔다. 단지 상용화하기에 불완전한 단계였을 뿐이다. 1879년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은, 에디슨이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해 40시간 동안 꺼지지 않는 보다 완벽한 백열전구 계량화에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백열전구는 1738년에 발명된 석유등이나 1799년에 점화된 가스등보다 위생적이고 화재 위험이 없는 진보된 조명이었으며 1808년부터 쓰인 아크 등보다 편리하였고 경비 면에서도 훨씬 효율적이었다. 1910년 쿨리지가 백열전구에 텅스텐 필라멘트를 사용하여 수명이 더 길고 더 밝은 백열전구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하였고 이로써 백열전구는 세계인의 밤을 밝히는 전기조명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전기조명은 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불과 8년 후인 1887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침실이 있던 건청궁에 백열전구 750등이 경복궁을 밝히면서 시작되었다. 민간에서는 한성전기회사가 1900년에 종로에 가로등을 점등하면서 점차 사용하게 되었다. 1938년 미국에서 수은등 내면에 형광물질을 바른 형광 전구를 발명하여 실용화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1955년부터 수입되어 1957년에 국산품으로 대량 생산되었다. 지금의 국내 전기조명은 1965년 한국전력 농어 촌전 화촉 진법(農漁村電化促進法)의 시행 이후 전국적으로 대중화된 것이다.     


  4. LED 조명               

  LED(Lighting Emission Diode, 발광 다이오드)가 백열등을 대체할 차세대 광원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LED는 전류를 흘려보내면 빛이 발생하는 반도체이다. LED는 1960년대 미국의 GE에 의해 처음 개발되었는데, 그러나 그 밝기나 연색성(자연광과 유사한 정도)이 낮아 일부 품목에서만 사용될 뿐이었다.   

  

  그런데 백색 LED가 등장하면서 LED가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7년 Nichia 화학의 슈지 나카무라 박사는 세계 최초로 청색 LED를 개발했다. 그리고 1997년 청색 LED에 황색 형광체(Yellow Phosphor)를 도포해 단일 칩으로는 최초의 백색 LED를 구현하였다. 여기에 Cree, Toyoda, Gosei와 같은 업체들이 LED 칩 개발과 양산에 동참했습니다. 또 한 LED가 차세대 광원이 될지 모른다는 판단을 한 기존 조명 시장의 강자들도 1990년대 후반부터 LED 개발 및 양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LED의 성능이 급속하게 향상되고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부터 LED가 차세대 광원으로 채택되기 시작하였다. 이미 주위를 둘러보면 신호등, 자동차의 후미등, 전광판에서 LED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휴대폰, 모바일 기기, 디지털카메라 대부분도 LED가 채용되어 있다. 최근에는 냉장고에서 살균 기능까지 겸한 내부 조명과 인테리어를 위한 외관 조명을 LED를 통해 구현하기 시작하고 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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