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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May 16. 2022

골목길

하노이

  길이 막힐 때, 인생의 길이 막힐 때 자주 골목이 그리웠다. 골목은 막히는 법이 없다. 그저 나아가면 새로운 집과 또 다른 골목과  새로운 친구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골목에서 자랐고 골목에서 나왔다. 구슬치기며 고무줄놀이며 모두 골목에서 익힌 놀이였다. 그러니까 골목이 우리를 키운 거나 마찬 가지다. 어쩌면 골목은 엄마의 자궁이다. 설익은 누나의 가슴이다. 

  하노이 골목, 하노이 쪽방, 막 상경한 20대들이 한방에 많게는 다섯 명까지 먹고 자고 뒹군다. 칼잡이 세월, 월 오십만 동하던 이 방이 구정 지나 이십만 동이 올랐다. 한 친구가 어찌해서 실직하면 단가는 바로 오르고 당분간 눈치 잠을 자야 한다. 기를 쓰고 일해야 겨우 먹고사는데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애인도 가지고 싶고, 우선은 멋진 모바일 폰도 먼저 사고 싶다. 저축보다 낭비가 많은 세월, 오 년째 이 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이 많다. 

  번잡하고 산만하고 정리가 안 될 때, 도시 골목 산책은 마음의 아스피린이다. 골목은 도시의 속살이다.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면 대로보다 부드럽고, 대로보다 친근하다. 도시의 골목은 잊고 있거나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소주 한 잔을 걸치고 귀갓길, 정든 사람, 정든 고향 잊었단 말인가. 흥얼거릴 수 있는 곳이 골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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