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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uruvuru Jan 19. 2017

이별을 향하는 자세에 대하여

영화 <이별까지 7일>


※ 주의 영화 <이별까지 7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별 앞에서 사람은 더디다. 숱한 이별을 겪어오며 만고의 세월을 거친 노익장도 이 앞에서는 절차 없이 무너진다. 하물며 단 한 번도 이별다운 이별을 겪지 못한 순백의 이들에게 이별은 얼마나 가슴 시린 일일까. 긴 세월을 벼르다 난데없이 급습하는 이별은 결코 헤아리고 싶어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크기를 온전히 감당해낼 만큼 깊고 너른 담대함을 갖추면 되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다. 


속절없이 찾아오는 이별에 대처할 방법이 있기는 할까? 차라리 모든 걸 포기하고 이성의 고삐를 놓으면 될 일일까? 혹자는 이야기한다. 아픈 것은 당연하다고. 삶이란 그렇게 무뎌지는 것으로부터 익숙해지는 비통함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이별을 직면하는 매 순간 가슴속에 큰 상실의 구멍을 매겨갈 때, 우리는 과연 그 아픔을 온전히 견뎌낼 수 있을까? 이별과 이별을 향한 남겨진 자들의 대책은 끊임없이 논의되지만 결국 이별다운 이별이란 없다. 그저 아파하고, 속 쓰려하고, 토해내야만, 이별로 피폐해진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고 나서야 아픔은 그나마 조금씩 사그라든다. 



영화 <이별까지 7일>은 이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제목과 다르게 이별을 향해가는 뭉클한 7일간의 여정 따위가 아니다. 반대로 이별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해보는 7일간의 사투를 그려낸 이야기다. 작중 주인공인 큰 아들 코스케(츠마부키 사토시)가 어머니의 뇌종양 선고와 아버지에 의해 남겨진 수많은 부채에 대해 가까스로 아주 가까스로 저항하는 영화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 앞의 비극을 두고 현실을 저주하고 이내 자신마저 무너뜨리는 말로를 걷는다. 하지만 영화는 묘하게 담담하고, 되려 포부로 가득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근거가 불충분한 시점부터 이 영화는 엉터리가 된다. 하지만 그 명확성이 불분명한 만큼 그 앞에 제시된 어렴풋한 희망 역시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함의를 가져가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극복의 의지다. 이별을 두려워하며 희망을 그르치는 처사가 아님을 내비친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암담하게 시작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서는 건 단 한순간이다. 불분명한 의지는 형태 없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주목할 점은 바로 그런 ‘지점’에 있다. 주인공 코스케는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모든 걸 부정하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달린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반대로 옆을 스쳐가는 풍경들은 무심할 정도로 평소 같다. 그는 더 악착같이 달린다. 주변의 미온한 모든 걸 끌어안고, 이 땅의 처연함에도 굴하지 않는다. 더 악착같이 달리고 달릴 뿐이다. 


그는 현실의 기울기를 부정한다. 이윽고 도약의 의지가 담긴 상승곡선은 막힘없이 가도를 달린다. 어머니의 뇌종양이 단순한 혹으로 판정 나고, 아버지의 부채에 대한 정연한 대처가 부상한다. 어둠 속에 감춰졌던 빛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비극으로 주저앉던 가족들은 서서히 하나가 되어간다. 희박한 가능성이 진짜베기 현실로 거듭난다. 그렇게 영화는 더할 나위 없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헤어져야만 하는 현실을 거듭 부정하던 이 가족에게 이별은 정작 먼 이야기가 되었다. 



모두 언젠가는 이별의 때가 찾아올 것임을 알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지만 실은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 시간도 좀을 먹듯이, 동시에 굳게 결속된 인연의 끈도 조금씩 헐거워진다. 우리는 이별의 때를 향해 끝없이 발버둥 치지만, 언젠가는 그 절박한 고삐를 놓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영화는 영화답게 억지스럽다. 이별을 등지고자 하는 발악의 기저에는 ‘사랑’이란 더하고 빼기가 불가능한 불가분의 의지가 깊숙하게 서려있지만 현실은 이처럼 관대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별을 피할 수 없기에, 언젠가는 절박한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별의 사실을 받아들이건, 이에 도망치든 간에 자신 앞에 닥쳐온 현실의 크기를 최대한으로 받아들여 부딪혀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세상이 부서질 만큼 울거나 세상을 부숴낼 만큼 저항하고 저항해야만 후회는 작아진다. 그제서야 비로소 이별에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이별까지 7일>은 가장 억지스럽게 다가오는 동시에 가장 현실다운 이야기가 된다. 영화는 수렴과 발산의 이야기다. 막무가내로 행동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걸 끌어안을 거대한 기백이 있다. 이는 언젠가 이별로 인해 병들지도 모를 나약한 우리가 이별에 대처할 자세로서 충분히 배울만하다. 정체모를 의지가 현실의 관성을 비틀 때, 희망이 피어오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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