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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uruvuru Sep 16. 2017

맥도날드 리믹스

영화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  / 미타니 코기

방음된 외벽 사이로 날카로운 고성이 오고 간다. 당연히 들리지는 않는다. 벽 사이에 작게 난 창문 너머로 호통치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라디오 현장의 흔한 살풍경이다. 라디오를 관제하는 이와 읊는 사이의 늘 있는 고충이기도 하다. 이들은 서로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소통할 수 없다. 외벽은 그만큼 단단한 철옹성이다. 미타니 코기 감독의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이 같은 라디오 방송국을 배경으로 소통의 아이러니를 농담처럼 받아냈다.


아 이런 영화 있을까. 이렇게 주어진 제약에 영리하고 기민하게 그리고 새삼 유쾌하게 미소까지 자아내는 영화가? 제목만 보면 뭐야 저거? 맥도날드? 한다지만, 영화를 보면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있다. 뜬구름 잡는 제목이어도 대번 납득가게 만드는 영화다. 그렇게 대단한 완성도는 아님에도 박수까지 자아낼 정도다.

어느 방송국의 라디오 녹화 현장. 라디오 드라마라는 어마어마한 기획이 통과됐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많은 방면의 전문가들이 한 곳에 모였다. 라디오 편집팀과 유명 성우들 거기에 극작가까지. 걔 중에는 방송국의 높은 사람들도 현장 참관을 이유로 참석했다. 그렇게 모두가 숨죽여 모인 가운데 녹화가 시작된다. 그간 쌓아온 계획들이 이제 막 시작되는 순간이다. 계획대로라면 문제 하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스태프 머릿 수만큼 사공이 너무 많아서다. 배가 산으로 가버렸다. 라디오 드라마는 우주로 간다.


이 영화는 한 가지 계획의 무산과 그에 따른 개조와 또 그에 따른 무산을 반복해 나열한다. 만약 영화의 리듬을 나타내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건 필시 사인∙코사인 그래프와 흡사할 것이다. 좀처럼 중간이 없어서다. 그런데 이 같은 영화의 광경이 왠지 모르게 익숙한 건 왜일까. 라디오 방송국의 소동임에도 자꾸 우리의 신경을 자극한다.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는 저마다의 입장과 의견을 일체 물러설 생각이 없는 사람들과 이에 번번이 휘둘리기만 하는 사람들의 소동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내리받은 하달과 현장의 고충을 애드리브처럼 받아낸다. 그리고는 수정을 거듭한 기획이 어떤 삼천포로 빠지게 되는지 보여준다.

처음 기획된 라디오 드라마의 초안은 파칭코에 빠진 여성이 일상을 벗어나 사랑을 찾아간다는 극적인 탈피와 순애보가 겹쳐진 멜로드라마였다. 파칭코가 나오는 걸 보면 배경의 주무대는 당연히 일본이다. 하지만 여주인공 역을 맡은 성우가 말한다. “나는 외국 이름이 좋아”. 라디오의 높은 사람은 성우가 우선인 듯 보인다. 그녀의 의견을 적극 반영토록 지시를 하달한다. 갑작스러운 지시에 어안이 벙벙한 관계자는 극작가에게 달려가 호소한다. 이름을 바꿔달라고 말이다. 극작가는 배경이 통째로 바뀌기 때문에 그건 무리라고 반박한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어르고 달래서 설정이 셀 수 없이 바뀌고 추가된다. 이윽고 주무대는 미국 시카고가 되고 배우들은 어째선지 외국인이 되었다. 어부였던 남자 주인공은 우주비행사로 출세한다.


지나친 월권과 허무맹랑한 비약. 영화에서 마주하는 상황들은 우리의 사회생활과 절묘하게 포개진다. 잦은 마찰과 그로 인한 찰과상까지 그 모든 것이 흡사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어떤 거북함 없이 시종일관 유쾌하다. 비슷한 콘셉트를 잡은 대다수의 작품들이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인걸 생각해보면,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포지션은 신선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어찌 보면 감독이 미타니 코기라서 가능한 연출이다.

<옷음의 대학> 중 한 장면 배우 야쿠쇼 코지

사실 그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이력보다 드라마 감독으로서의 이력을 더 쌓아온 인물이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영화는 드라마 연출에 비해 수가 적다. 그래서인지 미타니 코기의 작품에는 사실 영화적인 연출이 별로 없다. 있다면 드라마 같은 연출이다. 이를테면 이제는 그의 장기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세트장의 알짜 활용이 그렇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시작으로 야쿠쇼 코지 주연의 <웃음의 대학>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방영했었던 단편 드라마 <미타니 코기의 대공황>까지 그의 장기가 바탕이 된 값진 결과물들이다. 더구나 쉬지 않고 코미디 장르 쪽으로의 연구를 거듭해 온 감독이기에 예나 지금이나 유머 코드가 닳지 않았다. 여전히 건실하다.

남의 고생이 나의 고생처럼 투영되고 남의 성취가 나의 성취 마냥 느껴진다면 영화와 우리의 눈높이가 분명 일치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 영화가 보통의 사무공간이 아닌 라디오 녹화현장이란 생소한 공간임에도 공감대를 놓치지 않는 건 이 같은 이유임에 분명하다. 이야기는 우주로 가지만 그럼에도 흐뭇하고 뒷 내용이 궁금해지는 결말. 한편으론 벅차기도 하다. 작중 어쩌다 우주로 날아간 이 드라마를 들은 트럭 운전사 역의 와타나베 켄은 감동에 차올라 다짜고짜 방송국으로 트럭을 몰고 온다. 그리고는 관계자를 붙잡고 이렇게 말한다. “굉장했어요”, “어떻게 이런..” 말을 다하고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관계자는 당황하지만 그 말에 용기를 얻는다. 빗나간 의도와 실수가 한 데 모인 괴작이지만 누군가는 감동 받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영 아닌 방향으로 나아갔을지 몰라도 달리지 않은 게 아니었다. 일을 하는 그들 모두 시종일관 분주했다. 땀을 이마에 달고 다녔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그들의 작품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미스터 맥도날드 역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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