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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uruvuru Feb 02. 2017

<공조> 잘만들어진 어설픈 오락

영화 <공조>

영화 <공조>를 보고 가장 떠올리기 쉬운 건 어렴풋이 묻어나는 어떤 ‘기시감’과 ‘익숙함’이다. 설정이 그리고 플롯이 그렇게 만든다. 한국 영화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묻어나는 지루함 또한 <공조>에는 다분하다. 한 번쯤은 듣고 보고도 했을법한 그런 이야기와 설정이 전반적으로 영화 속에 가득한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국 영화는 지겨운 ‘동어반복’ 속에 ‘환골탈태’라는 말과 이미 담을 쌓은지 오래다. 거기서 거기인 장르가 태반이고 어쩌다 흥행하거나 찬사받는 작품들도 결국 어딘가에서 베낀듯한 의혹을 지워낼 수 없다. 제목마저도 비슷해져 가는데, 시기별로 우리나라 영화들의 제목 글자 수와 문장이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는 건 극장만 가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영화를 다 보고나서 신선하다는 느낌없이 오로지 재미라는 관점에서만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테다.


<공조>를 평하기 전에 가장 먼저 선행해야 되는 건 애초에 제대로 된 각본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부터다. 애초에 각본이 있었고, 그걸 오로지 0에서 출발해 만든거라면 영화 <공조>의 설정과 이야기가 진부하더라도 익숙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조>는 명백히 표절 의혹이 드러나고 그 부분을 좀처럼 지워낼 수 없는 작품이다. 

영화 <레드 히트>(1988)

아놀드 슈왈제너거의 옛 작품인 <레드 히트>(1988)는 <공조>와 스토리부터 설정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비슷하다. <레드 히트>는 주인공 형사(아놀드 슈왈제너거)가 수사를 하던 도중 같이 수사하던 친한 동료를 잃게 되고 복수심에 타올라 그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있는 타국으로 넘어가 타국의 형사와 함께 사건을 쫓는다는 이야기다. 잠깐? 방금 이야기한 스토리라인은 어처구니 없게도 <공조>와 비슷한게 아니라 똑같다. 주어만 슬쩍 바꾸면 된다. 즉 현빈과 아놀드 슈왈제너거의 이름만 바꾸면, 영화 <레드 히트>는 시간을 넘어서 <공조>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레드 히트>라는 작품은 대중에게 있어 꽤나 생소한 작품이다. 80년대 미국 영화를 일일히 찾아볼 정도로 사람들은 한가하지 않다. 그렇지만 어찌됐든 <공조>는 모방 의혹이 있고, 만약 이를 별 것 아니라는 듯 넘어가더라도 <공조>에는 우리에게 있어 익숙한 설정들로 넘쳐난다는 점에서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는 이미 우리나라 영화사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또한 영화가 두 형사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나열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이를테면 <투캅스>나 <살인의 추억> 그리고 <마이 뉴 파트너>등 여러 작품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더구나 <공조>가 두 형사의 성향과 가치관이 상반된다는 설정은 범죄∙서스펙션 장르의 영화들에 일종의 공식처럼 굳어진 설정이다. 그렇기에 <공조>는 장르의 기존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기에 익숙하지만 한편으로 심심하게 다가온다. 


다행인 건 <공조>가 이런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할만한 대체제들이 제법 있다는점이다. 캐스팅을 예로 들 수 있다. 배우 현빈과 유해진이 주연이라는 것은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신뢰를 줄만한 캐스팅이다. 이 영화가 400만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해낸 건 둘의 이미지가 전면에 드러난 공이 크다. 이외에도 매해 감초같은 역할을 자처해오며 존재감을 과시했던 와이프역의 배우 장영남과 그녀의 여동생 역할로 등장한 소녀시대의 윤아 그리고 잠깐이지만 나름 박진감있는 액션씬을 가로챈 이동휘 등. 제법이 아니라 나름의 호화 캐스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악역으로 나온 김주혁은 이 영화의 진정한 주연이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준수하고 안정된 연기를 선보인다.  


여기에 현빈의 거침없는 액션이 더해졌다. 다부진 근육을 과시하는 몸매부터 절도있게 상대를 제압하는 그의 액션까지. <공조>가 못 볼 정도로 지루한 건 아니다. 오히려 박진감이 은근 있다. 그에비해 유해진은 조금 아쉽다. 영화 <럭키>를 통해 이제는 완전주연으로 역할을 꽤찬 듯이 보였지만 아쉽게도 <공조>에서 그의 역할이었던 개그 파트와 감정 전달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공조>의 전반적인 전개가 자연스럽고 유연해진건 사실이지만 그건 유해진이 아니더라도 할 수있는 일이다. 그만의 장기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가 뛰어난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맥락 자체를 배제했다는 점과 크게 부각시켜야 했을 두 형사의 가치관 충돌(이를테면 남북 문제 혹은 형사 성향)이 느슨하다는 점이다. 이는 영화에 몰입하다가도 의문짓게 만들며, 가끔은 엉뚱함을 넘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가득하다. 이를 설명하려면 끝도없이 이야기해야겠지만 이는 결국 <공조>가 벗어나지 어떤 그늘에서 파생한다. 


 <공조>는 아무래도 형사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측면에서 수많은 역경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한 동시에 권선징악이라는 뚜렷한 테마를 우선시켜 뜨거움을 바탕해야만 했다. 선이 악을 짓누르고 결국에는 악이 모조리 몰살당하는 그런 직선적 시퀀스.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베테랑>을 떠올리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황정민이라는 어설프지만 확고한 절대 선과 유아인이라는 완고한 절대 악. 대결구도를 펼치며 서서히 악을 깨부숴나가는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그 어떤이들에게라도 시원스럽고 통쾌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공조>역시 이를 의식하지 않은 건 아니다. 결말은 말그대로 권선징악이 이뤄졌다. 그렇지만 <공조>는 선과 악의 대립이 어설프고 <베테랑>이라는 영화와 너무 유사하게 만들면 안된다는 강박을 받은 듯한 느낌을 보인다. 


<공조>는 베테랑과는 다르게 열혈을 뺐다. 대신 황정민의 역할을 둘로 나눴다. 액션을 현빈이 맡고 드라마를 유해진이 맡았다. 거꾸로 생각하면, 현빈과 유해진을 더하고 여기에 열혈을 또 더하면 여지없이 황정민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나를 둘로 나눈 만큼 총량자체가 미달인 두 형사는 다소 어설프다. <공조>의 이런 선택은 <베테랑>이란 지난 히트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화의 비애처럼 다가온다. 

<공조>의 진정한 함량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공조>는 적어도 좋은 작품은 아니다. 따라하고 어설프고 제법 지루한, 못만든 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그에비해 관객수는 정반대 양상을 보인다. 1월 말 기준. 공조의 관객수는 400만명을 넘었다. 500만 고지를 바라보는 중이다. 설 연휴라는 황금기간이 겹치고 과다 스크린수라는 술수가 야릇하게 끼어있지만 어찌됐든 <공조>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가 ‘호’인 것에는 분명하다. 가볍게 즐기고 웃고 넘기기엔 이만한 영화가 없는 것이다. 괜히 극장와서 심각해지거나 울상짓는일 없이 설 연휴답게 즐거운 걸로 충분했다. 그저 가족과 함께 2시간 가량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을 생각한다면 <공조>는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한 셈이다. 영화는 사실 만듦새가 전부는 아니다. 쉽게 말해 엔터테인먼트로 생각하면 이 영화는 맘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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