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기준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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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낸시코야

나의 혼란과는 상관없이 그날 화제의 중심은 SK하이닉스에서 상여금 1700%를 지급한다는 뉴스였다. 가파른 서울의 집값 상승에 달콤함을 느끼던 친구들에게조차 부러움의 이슈였다. 나는 하이닉스가 있는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특파원이 된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내가 받을 상여금도 아닌데 수다의 중심에 서서 집값에서 밀린 박탈감을 털어내듯 이것저것 들은 얘기들을 떠들어 댔다. 쓸모 있는 내용은 없었다. 수다 속에 끼어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덮으려 했는지, 나의 존재를 그렇게라도 보여주려 안달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허함은 극에 달했다.

모임 후 며칠간은 시류에 편승하지 못한 아쉬움에 마음을 다독였던 것도 사실이다. 적당하지 않은 시간, 적당하지 않은 장소에 있었을 뿐이라 털어내면서 말이다. 무심해서 무지했건, 무지해서 무심했건 어쨌든 간에 시류를 쫓지 못한 행동이 후회된다는 거니까 말이다.

흔들리지 않고 산다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삶의 기준이 흔들리는 때였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평범하게 돈 벌고 평범하게 죽는 것을 원했다. 그 평범함을 위해 사회에서 다수에 속해야 했고, 다수의 경계가 계속 바뀌어 갈 때마다 사회적 다수에 들지 못할까 봐 아등바등했다. 경쟁을 거치며 남들과 다른 ‘튐’은 피곤하고 어려워 피하고 살았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정도의 무난함. 이런 ‘무나 니스트’(‘무난’과 사람을 뜻하는 ‘ist’의 합성어)가 나를 정확히 표현한다.


무나니 스트로 남들보다 넘치기도 싫고 모자라고 싶지도 않아 튀지 않으려 억제하던 감정과 낭비됐던 시간들,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려 초조해하고 내가 그렇게 보일지 신경 쓰며 살아온 것이 나에게 정말 행복이었을까?.

주체적인 삶의 기준은 없어지고 다수에 속하려고 기를 쓰며 살아온 셈이다. 행복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냥 자연스럽게 조금은 다르게 사는 것인데 말이다. 이 사회에서 나의 개성마저도 대중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몇 개의 브랜드에 맞추어진 입맛이나 남들과 똑같은 것을 입고 들고 다녀야 편해지는 취향뿐만 아니라 휴가지와 숙소, 심지어 노력이나 양심마저도 ‘다수의 선택’이 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많이들 원한다고 해서 폭등 지역의 아파트가 잘 산 인생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기준이란 것은 간절하다 해서 정의로울 수 없고, 이익을 좇아 바뀌어 간다면 기준으로서 가치 있을 수 없다. 여전히 다수가 편한 나지만 그래도 사람이 우선하길 바란다. 가치보다 가격으로 평가되는 사람됨을 그들만큼 못 가진 자들의 시기심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기에 말이다.


당신에게 집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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