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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5억! 말이 돼?”
나는 입주 8년 차에 분양가에서 미동 없는 매매가를 보이는 지방 아파트에 살고 있다. 불경기에도 서울의 아파트값이 2년 새 5억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니 부러움보다는 멍한 기분이다. 대학 친구 영채가 2년 전 퇴직금 중간정산받고 모아둔 돈을 합쳐 산 아파트가 1년 반 만에 5억이 올랐다.
서울 몇 개 지역에서 시작된 집값의 엄청난 폭등세가 아파트, 주택, 상가를 막론하고 서울에 있는 부동산 전체를 휘감고 있다.
“서울 사는 너네는 좋겠다.”
서울 사는 동창 모두를 치켜주는 친구 미정이의 말에 나도 축하해 주었지만 부러운 마음만은 아니었다. 부조리하다느니 지역 불균형이라느니 하는 말은 친구의 집값이 2배가 된 상황에 어울리지 않아 삼켰다.
20년 지기 다섯 명, 동창의 오늘 만남은 ‘서울에 산다’와 ‘서울 밖에 산다’라는 거리에 그치지 않고, 시류를 타는 사람과 시류에 떠내려가는 사람이 나뉘는 자리였다.
대학 동기였던 친구들은 20대 후반 무렵부터 차례차례 결혼했다. 대부분은 서울에서 대출을 조금 낀 5천만 원대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다. 특별한 금수저도 없었고 허영이 심한 친구도 없었다. 성실한 부모님 밑에 평범하게 자란 무난한 출발이었다. 처음 결혼한 친구는 잠실주공아파트에, 다음 해 결혼한 친구는 신천역 주변의 다세대 주택에, 다음 해 나는 분당 목련마을 빌라에, 같은 해 고등 동창은 과천 주공아파트의 20평대의 집에서 비슷하게 출발을 했다.
친구 한 명이 천안으로 이사를 하고 내가 이천에 살기 전까지는 아이들과 남편까지 한 달에 한 번씩은 서로의 집에 번갈아 모였다. 육아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드나들던 집들이라 구조와 위치까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서울, 분당 전세금에 조금만 더하면 30평 아파트도 살 수 있는 정도라 경기도 친구들이 먼저 집 장만을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중간에 남편 유학 뒷바라지를 했던 한 친구를 빼고 친구들은 다 신혼을 시작한 언저리 동네에 집을 장만했다. 주부가 된 후에도 특별히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거나 모험심이 있는 친구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서울에서 계속 살았는지 서울 밖에서 시작했는지가 인생을 빛내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간의 성실함보다 말이다.
2년이 안되 제값의 3배 가까이 폭등한 서울의 아파트 때문에 직장도 학벌도 필요 없이 서울 아파트 한 채 물려받는 사람이 승자란 말이 충격을 더한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노력보다도 서울에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잘 산 인생의 기준처럼 보이니 부지런히 살아왔던 지난 시간은 뭔가 싶다. 잘 산 인생의 증표가 돼버린 서울의 아파트, 가파르게 가격이 상승한 집이 사람보다도 더 가치 있게 평가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서울 프리미엄!
서울의 유리한 인프라를 고려하더라도 2년도 안 돼 5억이란 폭발적인 집값 인상을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그런 일로 여기고 추종할 수가 없었다는데 따른 이 혼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나도 모르겠다.
‘사는 지역에 따라 나란 사람이 판단되도록 놔두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내 삶을 증명할 가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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