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by 홍윤표
카메라: MINOLTA HI-MATIC AF-D / 필름:Fujifilm Fujicolor C200 Expired / 일자: 25.08.

휴직을 하고 아버지가 남기셨던 필름 카메라를 다시 꺼냈습니다. 서랍에 약 십 년 동안 묵혀 놨던 필름들을 테스트하기 위해 서툰 솜씨로 집안 여기저기를 찍었고, 그때 찍은 냉장고입니다.

냉장고에는 아이가 어렸을 적 그린 그림과 어버이날, 생일에 아이가 써준 카드, 편지들을 붙여놨습니다. 생일이나 어버이날을 보낼 때마다 냉장고의 편지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지금도 저 때보다 두 장 더 늘었습니다.

글씨가 왜 이래. 받침도 엉망이고. 어린이집 다닐 때 서툰 글씨로 한 두줄 쓴 카드를 보며 아이도 웃습니다.

편지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사랑해요 좋아해요 입니다. 삐뚤빼뚤 글씨로 꼭꼭 눌러 쓰인 이 말들을 보면 사랑이 종이 위를 막 뒹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툴지만 한 획 한 획 꾹꾹 눌러쓰는 게 꼭 사랑 같네, 라는 생각도 듭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언젠가 냉장고를 전부 덮을 때까지 편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앞으로도 사랑해요, 좋아해요 라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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