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홍윤표
카메라: MINOLTA HI-MATICAF-D / 필름: Kodak Colorplus 200 / 일자: 25.11.

깨끗한 벽은 시간의 손을 타서 표정을 얻습니다. 거기에 의미는 없지만 인상은 있습니다. 시간이 흔적을 잡고 길게 늘이고 문지르고 덧댑니다. 실금을 거미줄처럼 슥슥 긋습니다. 오래된 벽을 마주하고 있으면 미술관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추상화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이럴 때 보면 시간은 꼭 훌륭한 예술가 같습니다.

아이 학교 앞에 있는 이 벽을 전 지나갈 때마다 쳐다봅니다. 벽은 그냥 서있는데 전 그게 벽의 이유 있는 침묵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눈을 마주치지만 당연하게도 벽은 이유따윈 들려주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의미나 이유를 찾으려는 건 인간의 버릇일 것입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의미나 이유를 찾아내는 건 인간의 특권일 것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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