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떠났다.
난 D-24 플랫폼에서 그들을 배웅했다. 여기도 저 비행선을 마지막으로 폐쇄된다.
늙은 지구가 밭은기침을 할 때마다 오래된 화산이 내뿜는 검은 연기가 비행선의 꼬리를 지웠다.
지구의 끝을 예측한 인류는 다행히 대체 행성을 찾았고, 이주계획도 성공했다.
이제 지구에는 인류가 남긴 거대하고 아름다운 쓰레기와
지구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전송할 기계들만 남았다.
인류는 자신들의 장대하고 유구한 지식을 데이터화하여 모비행선에 저장했다.
그리고 거기에 실리지 못한, 인류가 남기고 간 것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영혼이 온전히 담긴 것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아 존재의 의미가 없어진 것들.
난 혼자 남아 수많은 예술작품들을 모았다.
난 무의미에 시선을 보내고, 손길을 보태고,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만 해주면 그것들은 소복이 쌓인 먼지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그것들은 지구가 거대한 먼지 덩어리가 아닌 인류의 요람이었음을 증언한다.
텅 빈 지구의 시간은 더뎠지만 착실했다.
지구는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끝에 다다랐다.
화산은 발광했고 하늘은 산맥의 어깨에 낮게 걸려있었다.
이제 무너지지 않은 대륙은 거의 없었다.
기계들은 마지막 정보를 전송하고 제 손으로 전원을 껐다.
하지만 그 정보들이 인류의 모비행선에 전달될지는 미지수다.
언제부턴가 인류가 보내는 수신확인 신호가 오지 않았다. 어쩌면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 관심이 없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난 그동안 모은 예술작품들에 둘러싸였다. 이런 끝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거대한 홀의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내가 가진 예술작품들의 정보를 있는 힘껏 전송했다.
인류에게 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닿을 때까지 신호는 우주를 유영할 것이다.
지구는 사라지지만 인류가 지구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우주에 각인될 것이다.
난 전원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