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가 경기도 안흥시 상공에서 사라진 건 12월 24일 밤 11시 26분이었다. 미국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1955년부터 시작한 이 유서 깊은 산타클로스 위치추적서비스에 의하면, 산타클로스는 24일 밤 11시 25분경 서울 상공을 지나 도쿄로 넘어갈 것이라 예상했지만 산타클로스는 11시 26분 서울 상공에서 남하하여 경기도 안흥시에서 종적을 감췄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는 그 뒤로 산타클로스의 위치추적에 실패했다고 공식 SNS에 공표했다. 시간당 최대 25㎝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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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는 25일 새벽 4시 41분에 시청 안전총괄과에서 보낸 비상근무명령 문자를 받고 일어났다. 연수의 자취방과 행담2동 행정복지센터는 걸어서 십 분 남짓 걸리는 거리다. 대충 얼굴을 물로 훔치고 양치를 한 뒤 컴퓨터용 의자에 걸쳐놓은 검정 롱패딩을 걸쳤다. 올 초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자 엄마가 시즌오프로 싸게 나왔다며 사준 거다. “공무원 되면 꼭 필요할 거야.” 엄마 말이 맞았다.
거리는 압도적으로 내리고 있는 눈에 조용히 뒤덮여 있었다. 골목에 주차된 차들은 모두 눈을 두껍게 뒤집어쓰고 있었고 더 두꺼워질 예정이었다. 연수는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독차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니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예상한 일이었다. 행담2동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중에 연수의 집이 제일 가까웠다. 덕분에 금요일 오후에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주말 보건소 지원 근무명령이라던가 체육생활과에서 주관하는 ‘토요 시민 건강 걷기 대회’에 매번 차출되기 일쑤였다. 연수가 사무실 막내라는 이유도 있지만 뭣보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사무실 하고 집하고 가까워 봤자 좋은 거 하나도 없다니까.” 같이 자취방을 보러 다녔던 형의 충고가 뼈저렸다.
어두운 사무실 문을 열자 냉기가 엄습했다. 연수는 얼른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벽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제설도구가 어디 있었더라. 연수는 사무실 구석의 민방위 창고를 뒤졌지만 눈삽과 넉가래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가 아니라면 지하주차장에 있는 미화 창고에 있을 거다. 연수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 구석 창고 쪽에서 어스름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창고에 들어가니 미주가 창고 구석에서 문 앞으로 눈삽과 넉가래를 옮기고 있었다.
“김 주무관님, 언제 오셨어요?”
연수가 놀라 물었다. 창고 안쪽에서 미주가 양손에 눈삽을 들고 왔다.
“지금 막이요.”
“사무실 문 잠겨 있었는데?”
“어차피 제설작업하려면 창고에서 장비 꺼내야 하니까 이리로 바로 내려왔어요. 이것 좀 받아주세요.”
연수는 미주가 건네는 눈삽을 받아 문 옆에 가지런히 기대 세웠다. 이미 눈삽 다섯 개와 넉가래 네 개가 세워져 있었다.
미주는 연수의 삼 년 선배다. 8급 지방사회복지서기. 9급 지방행정서기보인 연수보다 급수도 높다. 나이는 동갑이었나? 그러고 보니 연수는 미주의 나이를 몰랐다. 사실 미주는 사무실에서 그렇게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다. 언제나 검정이나 회색, 아니면 어두운 갈색 옷을 즐겨 입는 미주는 자신이 입는 옷들만큼이나 무채색에 가까웠다. 민원인과 상담할 때는 조곤조곤 말을 잘하지만 직원들과는 말을 잘 섞지 않았다. 어쩌다 하는 회식에서도 싫거나 좋은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맥주 한 잔을 따라 회식이 끝날 때까지 조금씩 잔을 비웠다. 사회복지 업무 특성상 악성 민원과 상대할 일이 많은데, 아무리 민원인이 서류를 집어던지고 욕설을 섞으며 고함을 질러도 무테안경 속에 잠긴 쌍꺼풀 없는 눈은 항상 고요하게 상대 혹은 모니터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미주의 그런 기이할 만큼 침착한 태도에 민원인은 몇 분 소리치다가 제풀에 꺾여 돌아가곤 했다. 사람들은 그런 미주를 돌부처라고 불렀다. 행담2동 돌부처.
미주와 연수가 창고에서 눈삽과 넉가래를 다 꺼냈을 때 연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영택 행정팀장이었다.
“역시 연수 씨 나와 있었구나. 나 지금 가고 있는데 차 속도를 못 내겠네. 엄청 미끄러워. 먼저 작업 시작하고 있어.”
“네.”
서울에 있는 김영택 팀장의 집은 평소에도 사무실까지 차로 편도 오십 분 이상이 걸린다. 곧 재개발이 될 거라며 집을 팔지도 못하고 사는 게 벌써 십 년이 지났다고 했다.
“다른 직원들도 다 출발했다고 하니까 금방 도착들 할 거야.”
연수는 아닐 거라 확신했다. 연수를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직원은 연수보다 일 년 선배인 이한울 주무관인데 그의 집도 차로 삼십 분 이상 걸리는 거리다. 더구나 그는 차가 없어 버스로 출퇴근하는데 날씨가 이래선 버스도 엉금엉금 기어 올 거 같다.
전화를 끊고 보니 미주가 이번엔 창고 안에서 염화칼슘 자루를 나르고 있었다.
“엇, 주무관님. 제가 할게요.”
“안에 아직 많이 있으니까 이리로 날라 주세요.”
25㎏이나 되는 염화칼슘 자루를 미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에 짊어지고 문 옆에 쿵 내려놨다. 연수도 묵직한 염화칼슘 자루를 두 손으로 안아 들고 어기적어기적 걸어와 문 옆에 놨다. 연수가 자루를 두 개째 내려놨을 때 다시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동 재난담당인 7급 지방시설주사보 임병호였다.
“연수 씨, 미안한데 영동초등학교에서 박문시장 사거리로 가는 내리막길 있지? 거기 먼저 작업 좀 하고 있을래? 염화칼슘도 뿌리고. 경사길이라서 거기 먼저 해놔야 할 거 같아. 나 지금 가고 있으니까 금방 합류할게. 한 사십 분 정도 후면 갈 거야.”
전화를 끊고 보니 거기까지 염화칼슘을 어떻게 옮길지 걱정이었다. 손수레로 끓고 가기엔 길이 너무 험하고 멀다. 관용차인 1톤 트럭이 있긴 한데 안타깝게도 수동이다. 2종 보통인 연수는 수동은커녕 트럭을 몰아본 적도 없다. 특히나 이렇게 길이 미끄러운 상황에선 더더욱.
“제가 차 이리로 가져올 테니까 연수 씨는 염화칼슘 마저 옮겨다 주세요.”
연수가 말도 꺼내기 전에 미주가 차 열쇠를 가지러 사무실로 올라갔다. 창고 문 옆에 염화칼슘 자루가 여덟 개 쌓였을 때 미주가 창고 앞으로 트럭을 몰고 왔다. 드르륵. 명쾌하게 핸드브레이크를 당기고 운전석에서 훌쩍 뛰어내린 미주가 철삽과 눈삽 하나씩 트럭 뒤에 실었다. 연수도 미주를 거들어 염화칼슘을 실었다.
밖은 아직도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고 잦아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거리에서 트럭이 눈을 밟으며 천천히 전진하는 소리만 들렸다. 연수는 어색한 정적을 없애려고 라디오를 틀었다. 24시간 뉴스채널에서 뉴스단신이 나오고 있었다.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이틀째 폭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서해상에서 만들어진 강한 눈구름대가 바람을 타고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 그 뒤로 지루한 사건사고 뉴스가 계속됐다. “어젯밤 열한 시경 경기도 산동시의 한 방제공장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현재까지 사망자가 아홉 명이 발생한 가운데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로…….”
“산동이면 바로 옆인데……. 크리스마스에도 우울한 소식은 변함없네요.”
연수가 채널을 돌려 심야 음악방송을 찾았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디제이가 서울과 수도권 남부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릴 거라고 말했고, 한반도 상공에서 사라진 산타클로스의 실종 소식도 짤막하게 전했다. 이어서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흘렀다.
“정말 완벽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그러게요.”
미주는 기어스틱을 능숙하게 당기며 대답했다.
“원래 트럭 운전할 줄 아셨어요?”
“아빠 차가 이거였어요.”
트럭은 어느새 영동초등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연수 씨가 차 뒤 짐칸에서 길 중간중간에 염화칼슘 자루 던져놓으세요. 이따 차 세워놓고 자루 던져 놓은 곳에서 염화칼슘 뿌리면 되니깐.”
연수는 미주의 말대로 트럭 뒤로 옮겨 탔다. 트럭이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가면서 중간중간 멈췄고, 연수는 그때마다 염화칼슘 자루를 길 한편에 던져 놨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가 박문시장 사거리에 도착할 때까지 실어놨던 염화칼슘 여덟 자루를 다 던지고 나서 연수는 운전석 옆자리로 옮겨 탔다. 미주가 커다란 핸들을 우아한 팔 동작으로 돌려 트럭을 유턴하고 초등학교 정문으로 다시 올라갔다. 정문 앞에서 트럭이 멈췄고 미주가 핸드브레이크를 당겼다. 드르륵. 이번에도 명쾌한 소리가 났다. 연수는 이상하게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차라리 아까 트럭 뒤에서 제가 염화칼슘을 거리에 뿌리면서 내려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차 위에서 염화칼슘 자루 열면 차가 상할 거예요.”
미주가 대답하며 운전석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미주와 연수는 철삽과 눈삽을 하나씩 들고 거리에 섰다. 하늘에선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거리는 아직 조용히 잠들었고 귤색 가로등 불빛이 띄엄띄엄 골목길을 굽어보고 있었다.
미주가 길바닥에 놓인 염화칼슘 자루에 철삽을 세차게 내리꽂으며 대문자 T형으로 자루를 찢은 뒤, 삽으로 염화칼슘을 퍼서 거리에 흩뿌렸다. 연수도 눈삽으로 염화칼슘을 퍼서 거리에 뿌렸다.
“눈이 이렇게 계속 오는데 이게 효과 있을까요?”
“그래도 염화칼슘 뿌려 놓으면 바로 녹으니까 적어도 쌓이진 않겠죠. 눈 녹은 게 얼지만 않으면 다행인데.”
둘은 묵묵히 제설작업을 했다. 미주가 염화칼슘 자루를 삽으로 찍어 찢으면 둘이 같이 염화칼슘을 퍼서 골목 여기저기에 뿌렸다. 두꺼운 눈이 염화칼슘이 닿자마자 스르르 녹으며 속살을 드러냈다. 하얀 눈은 세상과 함께 세상의 모든 소리까지 덮었다. 오직 눈이 귓속에 소복이 쌓이는 소리만 들렸다. 연수는 미주를 흘낏 쳐다봤다. 미주는 능숙하게 염화칼슘을 삽에 담아 살살 흔들면서 일정한 양의 염화칼슘을 골목 여기저기에 골고루 뿌렸다. 공무원으로서 연수보다 몇 번의 겨울을 더 지낸 상급자의 유려한 솜씨다.
둘이 지나간 자리마다 눈이 녹은 흔적이 반짝였다. 내리막길의 중간쯤, 네 번째 염화칼슘 자루로 작업을 할 때 미주가 삽질을 멈췄다.
“연수 씨. 저기요.”
연수는 고개를 들어 미주가 삽 끝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조그만 미끄럼틀 하나와 벤치 두 개, 그네 두 개가 전부인 조그만 어린이공원이었다. 귤색 가로등 빛이 미처 닿지 않는 미끄럼틀 뒤편에 무언가 있었다. 사람이라기엔 좀 커 보였다.
“저게 뭐지?”
연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시력을 총동원했다. 정체 모를 시커먼 그림자는 몸을 웅크린 채 목을 빳빳이 들고 이쪽을 바라봤다. 목에 걸린 은방울이 가로등 빛을 머금고 빛났다.
“순록이요.”
미주가 말했다. 순록이 코에서 하얀 입김을 뱉고 있었다. 코가 붉은색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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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와 연수는 삽을 창처럼 쥐고 천천히 어린이공원으로 들어갔다. 순록은 미주와 연수를 보고도 미동도 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기만 했다.
“순록이 왜 이런 데 있지?”
연수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실제로 순록을 본 건 처음이었다. 순록이 이렇게 생겼구나. 연수가 아는 순록이라곤 <겨울왕국>의 스벤밖에 없다. 연수의 상상보다 더 컸다. 순록 옆에는 커다란 썰매 같은 탈것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쳤나 봐요.”
미주가 손가락으로 순록의 다리를 가리켰다. 순록의 오른발 무릎이 검붉게 젖어 있었다. 피인 거 같았다.
“일단 야생동물 관리하는 데에다 연락해야겠어요.”
연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하지만 야생동물을 관리하는 부서가 어딘지 떠오르지 않았다. 환경관리과? 공공위생과? 근데 이 시간에 전화한다고 누가 받을까? 그래, 일단 시청 당직실로 전화해야지.
“잠깐. 잠깐만요.”
어디선가 굵은 바리톤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마세요.”
목소리는 미끄럼틀 아래에서 들렸다. 미주와 연수는 몸을 숙여 소리가 난 곳을 봤다. 거기엔 덩치 큰 남자가 몸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붉은 털모자에 붉은 털옷, 덥수룩한 흰 수염, 불그스름한 얼굴의 외국인이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산타클로스의 모습이었다.
“누구세요?”
미주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참, 민망한 상황이군.”
외국인이 유창한 한국말로 말했다.
“산타클로스. 보시는 바와 같이.”
정말 산타클로스였다. 오히려 산타클로스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로 완벽한 산타클로스의 모습이니까. 연수는 그제야 실종된 산타클로스 뉴스가 생각났다.
“아, 어젯밤에 서울 상공에서 사라졌다던 그……. 그런데 왜 산타클로스가 여기서 이러고 계신 거예요?”
“설명하자면 좀 길어요.”
그래도 설명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였다. 지금 이 시간이면 전 세계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다 돌리고 북극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아니던가. 그런데…….
“그렇지. 그렇긴 한데, 아이 한 명을 도저히 못 찾겠어.”
“아이요?”
“그래요. 아이. 선물 줄 아이. 여기에 한 명 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산타클로스의 말은 이러했다. 산타클로스는 당연히 전 세계를 돌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하지만, 당연히 혼자의 몸으로 전 세계 모든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산타클로스를 대신해서 선물을 줄 사람이 있는 아이는 배제한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에게 선물을 받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부모를 대신해 선물을 줄 사람이 대부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산타클로스는 그런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가져다준다.
“물론, 가가호호 방문해서 굴뚝을 타고 내려와 트리 아래 선물을 살포시 놓고 초콜릿 쿠키와 따뜻한 우유까지 얻어먹는 건 불가능하지. 나도 나름의 기술이 있으니까.”
그렇지. 당연히 기술이 있을 거다. 초능력이나 마법 같은.
“페덱스.”
“페덱스?”
“그래요, 페덱스. 우린 사전에 선물을 배송해야 할 아이들 목록을 작성하고 페덱스에 넘기지. 이보다 정확한 배송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렇지요?”
“분명 그런 것보다 더 멋진 방법이 있을 줄 알았는데…….”
“노노노. 페덱스보다 더 확실한 건 없어요. 아무튼 우린 그렇게 세상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지요. 그런데 한 아이, 목록에 미처 올리지 못한 새로운 아이가 오늘 새벽에 추가됐답니다. 우리 명단은 실시간 반영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직접 여기로 오게 됐지요.”
실시간 반영이라. 그러니까 결국 마법이구만. 연수는 생각했다.
"그런데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주소가 확실한데 집에 아이가 없어요. 아무도 살지 않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이 시간까지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그 아이를 도저히 못 찾겠단 말이에요.”
“그래서 여기 이렇게 계신 거예요?”
“그것도 그거지만, 다리를 저리 다쳐서……..”
산타클로스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순록을 바라봤다. 순록은 웅크린 채로 오른쪽 무릎을 할짝거렸다.
“근처 착지하다가 교회 십자가에 걸려서 그만……. 눈발이 너무 강해서 시야 확보가 어렵더라고요. 여긴 왜 이렇게 교회가 많은지 모르겠어요. 국교가 기독교였나요?”
“저도 가끔 그게 헷갈려요. 많이 다쳤나요?”
“상처가 심하진 않은데, 저 상태로 나는 건 무리지요. 더구나 괜히 사람들 눈에 띄면 귀찮아질 뿐이고요. 그렇다고 선물을 안 주고 갈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상황이지요. 호, 호, 호.”
산타클로스가 예의 그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주소를 잘 못 아신 거 아니에요?"
연수의 물음에 산타클로스가 웃음기를 싹 거두고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언제나 선물을 줘야 할 아이들의 집을 정확히 알고 있지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그 아이 이름이 뭔데요?”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미주가 옆에서 물었다.
“말하면 아시려나. 이채연. 일곱 살 여자아이.”
“이채연, 이채연…….”
미주는 이름을 되뇌며 골똘히 생각했다. 사회복지 업무를 하면 생활이 어렵고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관리하기 때문에 혹시 아는 이름일까 기억을 되짚었다.
“혹시 관내에 부모가 없다거나 조손가정 중에 그런 아이 없어요?”
연수의 물음에 미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그런 가정의 아이들은 웬만하면 다 기억하는데…….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는 건 아니에요. 기관이나 단체에서 나눠주기도 하고, 특히 우리 동에는 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아동양육시설이 있기 때문에 혼자 지내는 아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요. 우리 목록엔 분명 한 아이가 있습니다. 선물을 못 받은 한 아이가.”
연수는 산타클로스가 아까부터 말하는 ‘우리’가 누구일지 궁금했지만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언제까지 선물을 줘야 하죠?”
“오늘 동이 틀 때까지.”
미주가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5시 38분. 밝아지려면 약 두 시간 정도 남았다.
“만약 그때까지 선물을 못 주면?”
“크리스마스에 선물 못 받는 아이가 생기는 거지.”
“그게 끝?”
“그게 끝이라니. 잘 생각해 봐요. 크리스마스에도 선물을 못 받는 아이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돼요. 일 년 중 딱 하루. 오늘 하루만이라도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딱 하루만이라도.”
산타클로스는 두툼한 장갑을 낀 검지를 치켜들었다. 연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연수를 대신해 민주가 말했다.
“도울게요. 그 아이 찾는 거.”
“우리가요? 어떻게요?”
“연수 씨는 안 도와주셔도 돼요. 이런 쪽은 사회복지직인 제가 더 잘 알 테니까.”
연수는 조금 서운했다. 조금은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도 좋을 텐데…….
“아뇨. 저도 도울게요. 주민등록시스템으로 아이의 주소를 찾는 걸 도울 수 있을 거예요.”
“그거 불법 아녜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긴 한데……. 그래도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가 생기는 것보다는 좋지 않을까요?”
연수는 동의를 구하기 위해 산타클로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산타클로스가 활짝 웃자 덥수룩한 하얀 수염이 턱을 따라 올라갔다.
“아이의 주민등록번호는…… 당연히 모르시겠죠?”
“주소는 알아요. 지금은 살고 있지 않은 거 같지만…….”
“그거면 됐어요. 이름하고 살던 주소만 알면 현재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 수 있어요.”
“근데 작년까지는 그 아이한테 선물이 잘 갔나요?”
미주의 질문에 산타클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올해 처음이에요. 작년까진 우리 목록에 이름이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동안엔 누군가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한 거죠. 우리 목록에 갑자기 생긴 걸 보면 최근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군요.”
*
일단 산타클로스가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거기다 커다란 순록까지 있으니 사람들 눈에 더 잘 띌 거 같았다.
“일단 자리를 피하죠. 여긴 언제 사람들이 지나다닐지 모르니깐.”
연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눈 덮인 거리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어디로 가지?”
산타클로스가 물었다.
“우리 집이 그나마 가까우니까 그리로 가면 좋긴 한데, 순록이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연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순록을 쳐다보며 말했다. 순록이 무릎을 핥다가 연수를 마주 봤다. 코는 여전히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근데 왜 순록이 한 마리에요? 보통 아홉 마리가 썰매를 끄는 거로 알고 있는데.”
산타클로스가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어 다리가 저렸는지 두 발을 쭉 펴고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나머지는 먼저 보냈지요. 많이 있어봤자 사람들 눈에 더 띄기만 하니까.”
“얘가 루돌프예요?"
미주가 순록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분명 빨갛게 빛나는 코를 보니 루돌프가 맞는 거 같다.
“네. 가장 신뢰하는 녀석이죠. 호, 호, 호.”
“빨리 치료를 해야겠어요.”
미주가 루돌프의 무릎에 손을 가져갔지만 차마 손을 대진 못했다. 그때 루돌프가 미주의 손바닥을 핥았다. 미주가 간지러운지 쿡쿡 웃었다. 연수는 미주의 웃는 얼굴을 처음 보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미주 씨는 웃을 때 눈이 초승달처럼 되는구나.
그때, 어디선가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신문 배달원일 것이다.
“일단 어서 이동해야겠어요. 어디로 가지?”
“사무실로 가요. 지하실에 있는 보일러실이라면 아무도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미주가 말했다. 산타클로스는 읏차, 하면서 거구를 일으켰다. 키가 생각보다 컸다. 연수가 산타클로스의 어깨에 겨우 닿을락 말락 할 정도였다.
미주가 학교 정문 앞에 세워둔 트럭을 끌고 와서 어린이공원 앞에 세웠다. 루돌프가 살짝 절뚝거리며 트럭 뒤에 힘겹게 올라타자 은방울이 흔들리며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미주와 연수와 산타클로스는 썰매를 들어 루돌프 옆에 싣고 차에 탔다. 산타클로스가 앉자 뒷좌석이 꽉 찼고 차체가 아까보다 많이 가라앉은 게 느껴졌다. 미주는 천천히 트럭을 몰아 오르막길을 올랐다.
다행히 행정복지센터에는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정말 오고 있는 거 맞나? 연수는 순간 합리적인 의심을 했지만 일단 산타클로스와 순록을 보일러실에 숨기는 게 우선이다. 미주가 트럭을 주차하고 셋은 루돌프와 썰매를 차에서 내렸다. 미주가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를 보일러실로 안내하는 동안 연수는 사무실로 뛰어 올라가서 보일러실 열쇠를 가져왔다. 보일러실은 퀴퀴한 냄새가 나고 썰렁했지만 꽤 넓었다.
“오, 이 정도면 훌륭한걸요?”
산타클로스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루돌프도 마음에 드는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춥지 않으세요? 전기난로라도 가져올게요.”
“아니에요. 이건 추운 것도 아니죠. 우린 워낙 추위에 익숙하니까.”
미주가 미화 창고에서 간이의자를 가져왔다.
“일단 여기서 조용히 쉬고 계세요. 우린 올라가서 그 아이 주소를 찾아볼게요.”
미주와 연수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연수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주민등록시스템을 열었다. 연수는 아이의 이름과 산타클로스가 알려준 주소를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눌렀지만 검색결과가 없었다.
“음, 아무래도 이 주소로 전입신고를 한 적이 없나 봐요.”
흔히 있는 일이다. 초등학교 입학, 아파트 청약 신청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실거주지를 옮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주민등록시스템에는 전입신고가 된 주소로만 검색이 가능하다. 일이 복잡해졌다.
“사회복지망 시스템은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검색이 되는데…….”
미주가 옆에서 말했다. 연수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미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산타클로스가 주소를 잘 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건 아닐 거예요. 산타클로스는 선물을 줘야 할 아이의 주소를 언제나 정확히 알고 있다고 했어요. 실수를 할 거 같진 않아요.”
그렇지. 마법에 실수가 있을 수 없지. 미주는 자기 자리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파일을 뒤지다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있는 복지 대상자 명단을 뒤져봤는데 이채영이란 이름은 없네요.”
“이렇게 된 이상, 직접 그 주소지로 한번 가볼까요?”
사무실 벽시계가 5시 50분을 가리켰다. 다른 직원들이 슬슬 올 시간이다. 사무실에서 마주치는 것보다 나가는 게 더 나을 거 같았다. 미주와 연수는 일단 밖에 나가서 직접 그 주소로 가보기로 했다.
“시스템에서 찾아봐도 이채연이란 이름은 없네요. 직접 집으로 가볼까 하고요.”
연수가 사무실에서 가져온 따뜻한 녹차를 산타클로스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참 미안하게 됐군요. 제가 할 일을 여러분이 대신하게 돼서.”
산타클로스가 녹차를 홀짝 마셨다.
“음, 향이 좋군요. 고마워요.”
“따뜻한 우유를 가져올까 했는데 사무실에 우유가 없더라고요.”
“아뇨, 아뇨. 훌륭합니다. 아주 고소해요.”
미주가 사무실에서 가져온 구급상자에서 붕대와 소독약을 꺼내 루돌프의 다리를 임시 처방했다.
“완벽하군요.”
산타클로스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루돌프도 기분이 나아졌는지 빨간 코가 더 빛나 보였다.
미주와 연수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새 눈발이 더 심해졌다. 길에도 제법 두껍게 눈이 쌓였다. 연수는 아까 열심히 염화칼슘을 뿌린 곳에도 눈이 다시 쌓였을지 궁금했다.
둘은 일단 산타클로스가 말해준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집은 행정복지센터에서 도보로 오 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각자 롱패딩과 구스다운 파카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푹 숙이며 눈발을 뚫고 전진했다. 눈이 모자에 닿으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괜한 일에 끼어든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연수가 입술에 들러붙는 눈발을 뱉으며 말했다.
“글쎄요. 전 이것도 우리가 하는 일에서 크게 벗어나는 거 같진 않아요.”
“우리가 하는 일이요?”
“네. 우리 공무원이 하는 일. 특히, 저같이 사회복지 담당자가 하는 일.”
그런가. 이런 것도 주민 복지증진을 위한 일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연수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오 분 정도 걸렸을 거리를 십 분 동안 걸어서 겨우 도착했다. 작은 골목에 조그만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였다. 돌담과 녹슨 철문에 붙은 주소표지판을 보며 산타클로스가 알려준 집을 찾았다. 낡은 동네에서도 가장 오래된 거 같은 2층짜리 주택이었다.
“여기인 거 같네요.”
연수가 대문을 살짝 밀자 끼익-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단독주택에 딸린 여러 방을 세주는 형태의 집이었다. 산타클로스는 아이의 집이 B01호라고 했다. 호수에 B가 붙으면 보통 반지하 방을 지칭한다. 연수는 문이 여러 개 있는 건물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가장 구석진 곳의 문에 검은색 매직펜으로 휘갈긴 B01이란 글씨를 찾았다.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곳이었다. 연수는 미주에게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고 계단을 조심히 내려갔다. 계단에도 이미 눈이 소복이 쌓여 꽤 미끄러웠다. 괜히 도둑질하는 거 같아서 마음에 걸렸지만, 한편으론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연수는 차가운 철문에 가만히 귀를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미주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2층에서 벌컥 철문이 열리더니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미주와 연수는 움찔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바라봤다. 꼭 나쁜 짓 하다가 들킨 거 같았다. 발소리의 주인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대문으로 가다가 반지하 방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미주와 연수를 보고 흠칫 놀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였다.
“에구머니나! 누, 누구세요?”
“아, 저, 그게…….”
“행담2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나왔어요.”
어버버 거리는 연수 대신에 미주가 말했다.
“복지 뭐?”
“동사무소요. 행담2동 동사무소.”
미주가 파카 주머니에서 공무원증을 꺼내 보였다. 언제 저런 걸 챙겼지. 연수는 챙길 생각도 못 했다.
“아, 동사무소. 공무원 양반들인가 보네. 근데 이 시간에 어쩐 일들이여.”
“복지조사 때문에 나왔어요. 여기 혹시 이채연이란 여자아이가 살지 않나요?”
“이 뭐?”
“이, 채, 연이요. 일곱 살 여자아이.”
“아이는 못 봤는데. 저 집엔 여자 혼자 살아.”
“여자라면, 혹시 아이 엄마는 아니고요?”
“아이는 못 봤다니깐. 여자가 매일 새벽에 일 나가서 밤늦게 오는데. 얘기도 잘 안 해봤어. 뭔 말을 해도 잘 못 알아듣겠는걸 뭐.”
연수와 미주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쉽게 찾지 못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실망감을 감출 순 없었다.
“여기에 이 집 아니더라도 여자아이가 살고 있는 집은 없나요? 아니면 근처에라도.”
미주가 포기하지 않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내가 그걸 다 어떻게 아나. 여기 통반장도 아니고. 나중에 통장한테 직접 물어보든지.”
이 시간에 통장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는 건 무리다. 나중에 두고두고 어떤 욕을 먹으려고……. 사실 통장님들도 동네 사정을 다 아는 건 아니다. 분명 어려운 상황에 있는 주민들의 사정은 어느 정도 알 순 있지만 산타클로스도 못 찾는 아이를 통장님이 알 거 같진 않다. 미주와 연수는 할머니께 꾸벅 인사를 하고 힘없이 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불러 세웠다.
"저 동사무소 양반들. 혹시 보일러 고칠 줄 알아?"
연수가 돌아보며 말했다.
“네? 보일러요?”
“어, 보일러. 동파인지 뭔지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밤새 추워 혼났네. 혹시 고칠 줄 알아?”
“아……. 죄송해요. 잘 모르는데. 날 밝는 대로 업체에 전화 한 번 해보셔야 할 거 같아요.”
둘은 할머니께 다시 꾸벅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너무 막막하네요. 이 시간에 아이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러게요. 아직 미취학 아동이니까 학교나 교육청에 물어봐도 소용없을 거 같고…….”
“잠깐.”
연수가 발걸음을 멈췄다.
“분명 산타클로스가 작년까지는 누군가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죠?”
“네, 그랬죠. 아.”
미주도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네. 맞아요. 작년까지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해서 산타클로스의 직접배송 명단에 올랐다고 했어요. 그렇다는 건, 작년에는 부모나 누가 있었지만 올해는 없어졌다고 볼 수도 있죠.”
“그 누군가가 돌아가셨다거나…….”
“네. 슬프지만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올해 일 년 동안의 사망신고서를 뒤져보면 단서가 있을 수도 있어요.”
둘은 서둘러 행정복지센터로 돌아갔다.
*
밖에서 보니 사무실 불이 켜져 있었다. 미주와 연수는 불안한 가슴을 안고 사무실 문을 살짝 열었다. 사무실은 북적거렸다. 어느새 동장을 포함한 전 직원이 나와 있었다. 낭패다.
"여, 미주 씨, 연수 씨. 이제 들어오는 거야? 고생했네.”
임병호 주무관이 손을 들며 반겼다.
“아, 네. 다들 오셨네요.”
미주와 연수는 쭈뼛쭈뼛 사무실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원탁 테이블 근처에 모여 서 있었고 동장과 팀장은 다른 두 사람과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송영국 주민자치위원장과 장광오 통장회장이었다. 아니, 이 꼭두새벽에 두 사람이 웬일이지? 설마 제설작업을 하러 왔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까 동장님. 지금 빨리 나가봐야 한다니까요.”
주민자치위원장이 동장을 다그쳤다.
“지금 제설작업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통장회장도 옆에서 거들었다. 동장과 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에요?”
연수가 이한울 주무관 옆에 서서 살짝 물어봤다.
“우리 관내에 산타클로스가 있을 거라네요.”
“네?”
연수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이 일제히 연수를 돌아봤다가 연수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연수가 이한울의 귀에 대고 다시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산타라니?”
“통장회장님이 신문 배달부한테 들었대요. 통장회장님 신문보급소 하시잖아요. 거기 배달부 중 한 명이 오늘 새벽에 배달 돌다가 멀리서 봤다네요. 산타랑 루돌프.”
이런. 아까 그 오토바이 소리.
“산타가 우리 동네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 이보다 더 좋은 홍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동장님, 산타랑 사진도 좀 찍고, 시장님도 오셔서 같이 찍고, 티타임도 좀 갖고. 그럼 우리 행담2동뿐 아니라 안흥시 이름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거지요. 하하하.”
“그럼요! 그럼 앞으로 우리 행담2동은 산타클로스 특화마을로 거듭나는 겁니다. 매해 축제도 하고 테마공원 같은 거도 좀 만들고 하면 관광객이 또 얼마나 몰려오겠냐 말이죠! 허허허.”
“맞아요! 이런 게 지역경제 살리기 아니겠습니까? 참, 우리 주민자치위원회 현수막도 빨리 만들어야겠네. 산타랑 사진 찍을 때 들고 찍으려면. 통장회는 현수막 있나?”
언제부터 둘이 저렇게 죽이 잘 맞았었지? 매번 만날 때마다 서로 으르렁거렸던 거 같은데.
“음, 네. 알겠습니다. 마침 직원들 다 나왔으니까 제설작업도 하면서 동네 한 바퀴 돌아보죠.”
“거참, 동장님. 지금 제설작업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눈은 놔두면 알아서 녹을 거 아녜요. 거 엉덩방아 몇 번 찧는다고 안 죽어요.”
연수는 산타클로스가 주민자치위원장과 통장회장 사이에 끼어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람들이 다리가 불편한 루돌프를 이리저리 만지며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상상했다. 끔찍했다. 설마 루돌프의 뿔을 탐내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분명 주민자치위원 중에 한약재 파는 분이 있었지 아마.
결국 동장은 환경미화원을 포함한 전 직원에게 관내를 샅샅이 뒤지라고 말했다. 만약 발견하게 되면 반드시 공손하게 이쪽으로 모셔오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이 2인 1조로 짝을 지어 사무실을 나섰다. 미주는 다른 사회복지 담당인 김현희 주무관과 한 조가 되었고, 연수는 이한울과 한 조가 되었다. 미주는 현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며 연수를 바라봤다. ‘확인해 봐요.’ 연수는 미주의 입 모양을 읽었다.
“동장님, 근데 사무실이 춥네요. 난방이 고장 났나? 중앙제어기가 어디 있죠?”
송영국 주민자치위원장이 말했다. 그렇다. 난방 중앙제어기는 보일러실에 있다. 그리고, 송영국 주민자치위원장의 직업은 보일러 기술자였다.
“제, 제가 가보겠습니다!”
“연수 씨 보일러도 볼 줄 알아? 시설직도 아니잖아.”
주민자치위원장이 물었다.
“아, 예전에 알바할 때 어깨너머로 잠깐 배운 적이 있어서요. 위원장님은 여기서 편하게 앉아 계시죠.”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동장이 본의 아니게 옆에서 나이스 타이밍으로 거들었다.
"그러시죠. 위원장님하고 회장님은 제 사무실에 가셔서 차나 한 잔 하세요. 온풍기 있어서 거긴 따뜻할 겁니다.”
동장과 팀장, 주민자치위원장, 통장회장이 우르르 동장실로 몰려 들어갔다. 연수는 이한울에게 먼저 출발하라고 하고 지하 보일러실에 내려가는 척하다가 다시 사무실로 올라왔다. 문 닫힌 동장실에서 시끄럽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수는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가족관계등록시스템을 열었다. 검색조건에 일 년의 기간을 입력하고 사망신고건만 검색을 해봤다. 총 162건이 나왔다. 연수는 하나씩 클릭하며 정보를 검토했다. 하지만 이 정보들만으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지 막막했다. 사망한 사람이 아이의 부모라고 생각한다면 대략 삼십 대로 한정하면 되지만, 조부모일 가능성을 생각하면 고려대상이 너무 많아진다. 결국 다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연수가 하릴없이 마우스를 클릭하며 검색을 하는데 미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수 씨, 아직 사무실이세요?”
“네, 지금 사망신고 접수한 거 보고 있는데, 봐도 잘 모르겠네요.”
“일단 나오세요. 어디 있는지 알 거 같아요.”
“정말요? 어디요?”
*
어두웠던 하늘이 어느새 코발트블루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눈발은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연수는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여섯 시 삼십 분이 넘었다. 동틀 때까지 약 한 시간. 골목길에 접어들었을 때 앞에 미주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미주 주무관님!”
연수는 미주를 부르고 뛰어가다가 하마터면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미주가 얼른 손을 뻗어 연수의 팔을 잡았다.
“현희 주무관님은요? 같이 계신 거 아니었어요?”
“사무실 화장실에 잠깐 간다고 하고 왔어요.”
미주와 연수는 아직 제설작업이 되지 않은 눈 쌓인 골목을 걸어가 집 앞에 섰다. 아까 들렀던 그 집이었다.
“여긴 왜 다시 온 거예요?”
연수가 대문을 열기 전에 물었다.
“일단 얼른 들어가요. 제 생각이 맞다면, 아이는 여기 있어요.”
미주가 연수를 제치고 대문을 열었다.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 B01호 문을 열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미주는 포기하지 않고 철문을 약하게 두드렸다.
“계세요? 안에 누구 없어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주무관님, 여기 아무도 없는 거 아까 확인했잖아요.”
미주는 연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렸다.
“채연아. 채연아 안에 있니?”
미주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안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이거 타는 냄새 아니에요?”
분명 무언가 타는 냄새였다. 그리고 냄새는 B01호 안에서 새어 나오는 거 같았다. 미주는 더 세게 문을 두드리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연수는 재빨리 계단을 올라가 건물을 돌며 방 창문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창문이 보이지 않았다.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미주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둘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 이 방 열쇠 없어요?”
누군가 위층에 올라가 할머니를 불러왔다. 아까 봤던 그 할머니는 넋이 나간 얼굴로 연수에게 열쇠를 건넸다. 연수는 다시 계단을 뛰어 내려가 아직 문을 두드리고 있는 미주를 밀치고 열쇠를 꽂아 문을 벌컥 열었다. 순간 매캐한 연기가 미주와 연수의 얼굴에 엄습했다. 연수는 롱패딩 모자를 뒤집어써 코와 입을 가리고 방으로 뛰어들었다. 검은 연기가 창문 하나 없는 조그만 방안을 꽉 채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
미주가 소리치며 가리킨 방구석에 여자아이가 누워있었다. 연수는 아이를 안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 사이 미주는 119에 전화를 했다. 사람들이 모두 나와 구경하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아이는 혼자 울었는지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어느새 눈이 그쳤다.
*
아이의 이름은 이채연.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한국 이름만 지어줬다. 엄마는 불법체류 중인 파키스탄인이고 산동시에 있는 방제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어젯밤 불이 나 아홉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그 공장이다. 아이 엄마는 오늘 새벽에 죽었다.
“엄마가 불법체류 상태여서 아이의 출생신고를 못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 주민등록전산에도 없었던 거고요. 그동안 사람들 눈에 띄면 강제추방 당할까 봐 아이는 방에서만 생활했나 봐요. 그래서 집주인 할머니도 아이를 못 봤던 거 같고.”
미주가 등받이 없는 간이의자에 앉아 병상에 누워있는 아이의 옆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이는 다행히 생명이 지장이 없어 일반 병실로 옮긴 상태였다.
“채연이 같은 아이를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해요. 출생신고를 못 하니까 주민등록도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다른 기본적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죠. 취학, 의료보험 기타 등등.”
연수는 벽에 기대어 아이의 얼굴을 내려 보며 미주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산타클로스의 말이 생각났어요. 오늘 새벽 갑자기 명단에 아이 이름이 추가됐다고요. 그리고 아까 트럭에서 들었던 화재사고 뉴스가 생각났고요. 할머니는 여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었죠. 전 그게 할머니가 가는귀먹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아이 엄마가 한국말이 서툴렀던 거죠.”
아이는 보일러가 고장 난 추운 방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혼자 기다렸다. 그러다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스케치북에 성냥불을 붙이고 잠이 들었다. 소방관이 알려준 화재 원인이었다.
"그동안 어린이집도 못 다녔던 거 같아요. 방 안에서 엄마가 올 때까지 하루 종일 혼자 놀았을 거예요."
연수는 창문 하나 없는 방에서 엄마가 올 때까지 혼자였을 아이를 생각했다. 아이의 세상은 그 조그만 방이 전부였을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죠?”
“당분간은 보육시설에서 보호를 할 거예요. 곧 학교도 가야 하는데 입학은 학교장 재량이거든요. 이 말은 학교가 입학허용을 안 할 수도 있다는 거죠.”
“왜요?”
“이유야 많죠. 다른 학부모들의 반대가 가장 큰 이유라고 들 하더라고요. 학교 이미지가 떨어진다는 이유도 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더 큰 문제는 채연이가 성인이 됐을 때에요. 우리나라는 미등록 이주 아동에게 체류 자격을 주는 방안 자체가 없거든요.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이 되면 법에 따라 강제추방하도록 돼 있어요. 그럼 채연이는 생전 처음 가보는 파키스탄으로 쫓겨나게 되는 거죠. 사실상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밖에 모르는 아이가요. 결국, 한국인도 아니고 파키스탄인도 아닌 게 돼버리는 거예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는 거죠.”
“그땐 정말로 산타클로스도 찾지 못하는 아이가 되는 거네요.”
7시 30분. 어스름한 햇빛이 창을 통해 병실로 들어왔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병실 문은 아니었다. 창밖을 보니 산타클로스가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창밖에 있었다.
“아.”
“덕분에 루돌프 다리가 다 나았어요. 그리고 이거.”
산타클로스가 붉은색 보따리에서 조그만 선물상자를 꺼냈다.
“아이에게 꼭 전해주세요.”
연수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선물을 받았다.
“두 분께 정말 뭐라 감사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정말 고마워요.”
“이제 가시는 건가요?”
“네. 가야죠. 올해 할 일은 다 끝났으니 저도 가서 좀 쉴까 합니다.”
“저, 내년에도 채영이 선물을 주러 오시나요?”
미주가 연수 옆에 서며 물었다.
“글쎄요. 올해처럼 아이에게 선물을 줄 사람이 없다면 제가 오겠지요. 그런데,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군요.”
산타클로스가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자,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가 손을 흔들었다. 루돌프가 은방울을 딸랑거리며 힘차게 발돋움했다. 썰매는 순식간에 하늘 위로 솟구쳐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연수는 채영이의 머리맡에 선물상자를 놓았다.
“뭐가 들었을까요?”
“글쎄요. 어쨌든 채영이가 선물을 받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미주가 채영이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의 공식 SNS에 산타클로스의 위치가 다시 떴다. 산타클로스는 12월 25일 오전 7시 38분에 대한민국 안흥시 상공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뒤 7시 39분에 도쿄 상공을 지나 북극으로 선회했다. 주민자치위원장과 통장회장은 산타클로스를 잡지 못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괜히 동장에게 핀잔을 주며 집으로 돌아갔다.
“연수 씨, 미주 씨랑 같이 있지? 거기 일 마무리 됐으면 돌아와. 제설작업 마저 해야지.”
동장에게서 온 전화를 끊고 연수는 미주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쨍쨍한 햇빛이 하얀 눈 위에서 눈부시게 부서졌다. 완벽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