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소설] 새벽의 산책자

by 홍윤표

그것은 새벽 1시에 지상에 잠시 내려온다.
모두가 잠이 든 한 밤 중, 가로등의 귤색 불빛만이 띄엄띄엄 내려다보는 인적 없는 골목길을,

그것은 나지막한 휘파람을 불며 느긋하게 산책한다.
이따금 저 멀리 술 취한 행인의 불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리면 가로등 불빛의 등 뒤에 몸을 잠시 숨겼다가,

발소리가 저 멀리 사라지면 슬며시 나와 다시 능청스럽게 휘파람을 불며 거닌다.
아무도 없는 어둡고 조용한 놀이터에서 그것은 그네를 타기도 하고

한낮에 아이들이 놓고 간 웃음소리를 발로 차며 굴리기도 한다.
그것은 이따금 담벼락에 훌쩍 올라가 두 팔을 벌리고 중심을 잡으며 담 위를 걷기도 한다.
대부분의 집들은 불이 꺼졌지만

내일 시험을 앞둔 학생의 방처럼 늦은 밤까지 불이 켜진 집도 있다.
그런 집이 보이면 그것은 불 켜진 방 창가에 몰래 다가가 커튼을 살짝 흔들기도 하고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잠든 학생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잠자는 갓난아기의 새근새근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볼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골목길에서는 쓰레기통을 뒤지던 고양이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벼운 목례를 하면 그것도 정중하게 목례로 답한다.
그렇게 여유로운 밤 산책이 끝날 즈음 때맞춰 해가 슬슬 기어 나오고,
그것은 점점 옅어지는 달빛의 끝자락에 겨우 몸을 싣고 지상을 떠난다.
달빛 속에는 이미 그것의 수많은 친구들이 옹기종기 앉아 오늘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수다스럽게 떠들고
그것은 친구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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