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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24. 2023

몸 쓰고, 마음 쓰며 깨달은 나의 전생

예민한 그녀가 애쓰며 찾은 사명

“왱~” 새벽에 들려오는 주취자의 술주정보다 더한 불청객이 찾아왔다. 50kg이 넘는 몸을 가볍게 일으켜 주는 그놈 목소리에 ‘잡히면 뒤진다’라는 마음으로 모기 퇴치약을 들고 방안을 어슬렁거린다. 잡힐 때까지 안 자다가 2시간을 흘려보낸 적도 있다. 남편은 너무 예민하다며 적당히 하라고 했다. 오감이 예민하게 태어난 걸 어쩌라는 것인가 본성대로 나를 예민하게 하는 것에 집중했을 뿐!


  아침 출근길 사무실에 앉기도 전에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거린다. 어제 해야 할 업무를 했는지, 궁금증을 모아뒀다가 해결책을 갖고 있는 이에게 물어본 이는 죄가 없다. 그 질문을 받는 청취자의 마음만 거지 같을 뿐. ‘아침부터 왜 나한테 시비를 걸지?’라는 심정으로 청취를 한다. 사실, 그는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 그것에 대한 답을 하고, 못한 일은 지금 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아침의 평온이 무너진 것에 대해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는 나의 예민함을 혐오했다.


  내게도 어떤 작은 문제가 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면서도 등을 돌리고 있었다. 등을 돌리면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줄줄 알았던 것 같다. 이해는 개뿔. 예민하고 옹졸하다는 소리만 자꾸 들었고, 어려움을 회피하려 한다는 말도 들었다. 말랑말랑하던 생각과 상상력도 주어진 환경과 예민한 기질 속에서 무기력으로 굳어져 버렸다. ‘사랑의 잔소리’도 ‘간섭’으로 해석해 버리고,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타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그런 예민함 속에서도 동글동글, 말랑말랑, 부드러워지고 싶었다. 그럴수록 굳어지고, 딱딱해져서 굳어져버린 내가 안쓰럽기도 했다. 나만 생각하기엔 일과 가정이 있었기에 아이들과 장난치고 대화를 나누며 일상을 케이크처럼 달콤하게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 애씀의 시간도 몸이 아프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만성 두통으로 구토를 반복하고, 이석증에 목 디스크까지 말랑해지고 싶은 몸마저 더욱 딱딱해져 있었다.


  ‘위기의 예민 언니, 살아내자. 나를 드러내고, 살을 들어내며 살아보자.’  



  제일 먼저 시작한 건 운동이 아닌 ‘결단’이었다. 할까 말까 고민하는 그 시간들 속에서 제일 먼저 결단이 필요했다. 그다음 헬스장을 등록하는 ‘실행’이 필요했다. 매일 짧게는 10분, 길게는 60분을 러닝머신 위를 걸었다. 나중에는 뛰고, 그다음에는 헬스장의 차가운 기구로 내 몸을 뜨겁게 달구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만 갔던 예민한 마음과 몸이 뜨거운 것들을 만나면서 녹기 시작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매일 ‘의식적인 운동’을 했다. 숨쉬기나 집안일이 아닌 진짜 ‘나만 보는 시간’을 마련해 계속 움직였다. 예민한 언니가 동그란 척할 수 있는 순간은 이때부터 찾아왔다. 불청객 모기가 찾아와도 열심히 운동한 탓에 너무 졸려 온몸이 물려도 행복하게 일어났다. 아침 출근길 듣기 싫었던 목소리에도 ‘화(花) 답’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끝나면 그녀 인생 ‘해피엔딩’이겠지만 갈 길이 구만리였다. 운동을 해도 마인드 컨트롤은 언제든 필요했다.



 365일 운동만으로 예민한 존재가 무딘 존재로 변한다는 것은 속 빈 강정이 마치 꽉 찬 것 마냥 과시하는 것과 같았다. 그 속에서 책 속의 문장들을 만나고, 정기적인 독서모임을 하며 속 빈 강정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모임을 통해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얼마나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지 깨달을 때마다 달콤한 초콜릿을 입에 넣고 행복해하는 아이처럼 웃어댔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연습을 시작하면서 동글동글해지기 시작했다. 몸 근육을 조금씩 늘려갈 때마다 마음근육도 함께 단련되어 갔다. 덕분에 세상에 태어나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 진지하게 묻는 순간들을 맞이했다. 진지하게 묻고 답하며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나처럼 예민하게 살다가 아프거나 힘들거나 외로워서 숨어버리는 이들에게 ‘함께 합시다.’라고 손을 내밀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했다. 당신의 삶, 욕심내서 살아내 보자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나를 믿고 따라왔다.


어쩌면 전생에 나는 ‘워리어’였을지도 모른다.


  몸을 움직이고, 책을 읽고, 함께 나누는 삶 속에서 내 인생은 ‘챌린지’ 그 자체였다. 전생에도 매일의 도전에서 몰두하고 골몰하는 ‘워리어’였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전사들을 한 마음으로 전투에 임하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 전투를 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 당시, 자신에게 했던 질문과 실행의 해답을 다 찾아내지 못하고 전사했기에 다시 태어났을게다. 내가 ‘워리어’라 생각하니 이 모든 도전들이 다시 가슴을 뛰게 한다. 다이어트하느라 조금 힘들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다시 가슴이 뜨거워진다. "역시 난 전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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