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스페인에 있었다.
소심하고, 생각 많고, 말수 적고.
늘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왔다.
그런데 산티아고를 걷는 동안,
나는 웃고 있더라.
맨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무심한 표정만 짓고 있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 숙소를 ‘알베르기’라고 부른다.
보통 2~3일 정도 걷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걷는 속도가 비슷하고, 머무는 마을도 비슷하면
그때부터는 동료가 된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이층 침대에서 누군가 내게 영어로 물었다.
“너 북한 사람이야?”
영어가 서툴러서, 나는 손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두두두두! No!”
그는 크게 웃었고, 나도 웃었다.
아마 그때,
얼마 만에 남 눈치 안 보고 웃어본 건지 ...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더 좋았던 건,
그들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나 역시 그들을 몰랐다.
그래서 편했다.
눈치 볼 필요도,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산티아고를 걷다 보면
새로운 내 모습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