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nneth Jan 03. 2019

리틀 포레스트 남쪽으로 튀어

자기만의 숲을 찾은 사람과 자기만의 숲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시지 않은 분은 읽지 마시길 바랍니다.)


난 임순례 감독의 영화를 딱 두 개만 봤다. 리틀 포레스트와 남쪽으로 튀어. 임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이전 대표작들을 아직 하나도 안 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리틀 포레스트'와 '남쪽으로 튀어'는 나한테는 묘하게 병렬이 되는, 그래서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것이 이상하게 생각나는, 서로 안 어울리지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이다.


한 평론가는 리틀 포레스트를 삼시 세 끼, 효리네 민박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영화라고 평했다.

비슷한 정서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둘 다 음식과 자연, 시간이나 세상의 문제들에 쫓기지 않는 편안함, 사람들의 꾸밈없이 소소한 생활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즐거움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재가 같으면 정서가 같아야 하나? 내가 보기엔 리틀 포레스트는 연예인들의 진솔한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아내서 대 성공을 거둔 리얼리티 티브이 프로그램들과 비슷한 겉모습을 하고 있을진 모르지만 전혀 다른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혜원의 자급자족은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의 손길이다. 혜원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때로는 특이한, 그리고 어떨 때는 진기하기 까지 한 음식들은 모두 혜원의 엄마가 혜원에게 가르쳐준 또는 혜원이 어깨너머로 배웠을 음식들이다. 서울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에게 음식은 허기를 채워주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엄마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과 독립한 현재를 연결해주는 고리인 것이다. 그래서 이 음식들은 아름답고 먹음직스럽지만 그래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지만 정작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안에 채워지지 않은 배고픔 같은 것이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이 영화를 지나치기엔, 리틀 포레스트는 나에게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영화이지 않나 싶다. 물론 이 영화에서 마냥 힐링과 즐거움만 가져간들 뭐가 잘못이겠냐만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가 나를 미소 지으며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면 남쪽으로 튀어는 나를 유쾌하게 그리고 크게 웃게 만드는 영화이다. 

두 영화에서 모두 임순례 감독은 주인공들이 처한 어렵고 비관적인 상황을 마치 마법사처럼 매직 완드를 휘둘러 유쾌하고 긍정적인 상황으로 둔갑시킨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분식회계의 분식도 이 정도면 프로다. 하지만 이 분식은 유쾌하고 합법이다. 우리가 웃는 웃음은 남쪽으로 튀어의 주인공 해갑의 철두철미한 사상과 기이한 행동을 비웃는 게 아니라, 그와 그의 아내 봉희의 뚜렷한 자기 확신과 삶에 대한 변하지 않을 가치관의 방석 위에 앉아 편하게 웃는 힐링의 웃음이다. 마치 혜원의 천진난만하게 하루하루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저절로 미소 짓게 되듯이 말이다. 한 평론가는 남쪽으로 튀어에 대해서 " 남쪽으로 튀어는 설정에서부터 비극을 전제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끝까지 희극적으로만 마무리되기에 아이러니한 극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설정에서부터 희극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끝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마무리되기에 아이러니한 극인 것이다. 해갑과 봉희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해갑을 간첩으로 몰아 실적을 올리려는 안기부 요원들에게도 리조트 개발을 추진해 섬마을을 망친 국회의원을 테러하려는 봉만덕에게도 세상은 고민 덩어리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일정 선을 넘지 않는다. 고민이 고뇌가 되고, 걱정이 현실이 되며, 싸움이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되거나,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사람이 죽거나 부상을 입는 걸 막는 그런 선 말이다. 임순례 감독은 그 선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관객들이 맘 편하게 웃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웃으면서 마냥 맘이 편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혜원은 서울로 가고, 해갑과 봉희는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고.

혜원은 엄마의 편지를 뒤늦게 보고 엄마를 이해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아주심기를 통해서 봄에 돌아올 것을 암시한 채로. 혜원에게 엄마가 이야기해 주었던 자기만의 작은 숲은 엄마가 돌아왔을 것 같은 그녀의 고향집일까? 하지만 그녀가 다시 올라온 서울의 모습도 내가 보기엔 이미 혜원의 작은 숲이 가꾸어진 안전하고 아늑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자기만의 작은 숲은 해갑과 봉희가 투쟁을 통해서 또는 배를 타고 무작정 찾아 나서야 하는 그런 고정된 절대적 공간에 존재하는 세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단 한번 찾고 나면 항상 내가 어디에 있던지 그 주위를 감싸고도는 그런 유동적인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혜원은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혼자의 힘으로 헤쳐나가면서 매일매일의 시골 생활을 통해 그리고 옛 친구 들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리를 통한 엄마의 끈을 놓지 않으므로써 희망을 잃지 않는다. 해갑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위해서 나름 극단적인 선택을 마다하지 않지만 그 역시 모든 선택은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에서 비롯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파괴적일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위안을 얻고 자신의 삶에서 희망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힐링 영화", "많이 아쉬운 영화다... "

두 영화의 평론들을 읽다 보면 보게 되는 말이다. 어떤 게 어느 영화를 향한 건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난 감정이 힐링일까?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만 나한테 이 영화는 단순한 리얼리티 티브이의 힐링보다는 좀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세상의 무게에 눌려있다가 엄마가 오랜 시간을 통해 재워놓은 또는 심어놓은 재료를 발판 삼아 결국 그 위에 앉아서 웃을 수 있게 된 주인공. 그것은 관객인 나에게는 안도이자 희망이며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떤 작은 확신 같은 것일지 모른다. 반면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남은 것 하나 없이 끝까지 달려온 땅의 마지막 끝에서 또다시 미지의 을 찾아 작은 배를 타고 떠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난 어린아이 같은 즐거운 감정을 느낀다. 나라면 할 수 없을 일들을 그냥 끝까지 질러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이다. 난 이 영화가 그냥 재미가 없어라고 하는 사람은 이해가 되지만, 웃기려고 용을 쓰는데 아쉽게도 안 웃겨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한다. 배를 잡고 웃게 만드는 폭력배나 경찰 소재의 영화는 여전히 누군가 만들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달라 보이지만 의외로 같은 것을 공유하는 이 두 영화에서 난 굳이 여성 감독의 섬세함이나 독특함을 보지 않는다. 임순례 감독은 자기의 세상을 갖고 그것을 화면에 완벽하게 표현할 줄 아는 꽤 많은 훌륭한 감독들 중 하나일 뿐. 다른 영화들도 빨리 하지만 찬찬히 아껴놓고 봐야겠다. 마치 즐거운 시간이 빨리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