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념일

나의 기념일 - 이이언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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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그 사람이 태어난 날. 결혼기념일은 그 부부가 서로에게 공식적으로 약속을 맺은 날. 기일은 그 사람의 생명 활동이 끝이 난 날을 말한다. 모두가 다 사람에게로부터 부여된 '가치'이다. 그것이 기념일. 인간이 정한 1년이란 단위, 그 안에 월일 속에 매겨진 특별함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장치가 된다. 기억은 곧 인간이고 내가 된다. 가끔은 그런 기념일들이 내가 나로 남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이자 단순하고도 쉬운 장치가 아닐까란 생각을 하곤 한다.


기념이라는 방식으로 수많은 날들이 달력에 쓰여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챙기던 날들이 잊혀지기도 하며 새로운 것들로 가득해지기도 한다. 나와의 약속, 그리고 이를 지켜주리라 같이 맹세한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한다. 아무 것도 아닌 그 시간 그 때의 하루가 똑같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무뎌지는 것은 감정과 사건들만이 아니라 일상도 마찬가지다. 비슷하고 다를 것 없는 그런 많은 날들이 익숙해져 내 삶의 공백을 만들기 시작한다. 마치 용량을 아끼기 위해 비슷한 장면들을 묶어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파일들처럼 내 기억도 중복된 부분들을 굳이 여러개로 나눠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은 특별함이 필요하다.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기란 쉽다. 웨이팅이 긴 식당에 줄을 선 뒤 1분마다 내려다보게 되는 그 시계. 티켓팅을 하기 위해 틀어놓은 서버 시계. 퇴근을 위해, 끝나가는 수업을 위해 쳐다보는 시계까지. 우리는 시간을 좇을 때 가장 시간이 우리로부터 멀어진다. 분명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자동차지만 멀리서 볼땐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듯. 따라가려하면 멀어지는 것이 시간이다.


따라간다면 조금 더 느리게 삶을 느낄 수 있을까. 무언가를 고대하고 염원하며 살아가면 음미할 수 있을까. 해마다 돌아오는 어떤 날처럼.


새해가 오면 기다리게 되는 날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너무도 사소한 날이 내겐 특별한 가치가 되어 때때로 시계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런 날이 내게 있다는 것. 그것이 난 너무도 좋다.


인간은 기억이다. 기억으로 형성되고 기억으로 나를 증명하며 기억되지 못한다면 죽음에 이른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모두 다 우리가 그 인간이 인간다움을 보여주던 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즉, 인간은 정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관측에 따라 정의되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잊혀지고 싶지 않아 한다. 삶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준다면 그것으로 살아갈 수 있다. 관계의 동물이기에 그 어떤 누구와도 연결없이 이름이 잊혀진다면 그는 살아있지만 죽은 것이다.


기념일이란 깃발을 이 곳에 꽃는다. 내년 다시 이 장소에 이 깃발을 함께 보았던 다른 이들을 보기 위해. 언젠가 강렬한 자외선에 어디에 꽃혀 있었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 깃발의 색이 사라지듯 녹겠지만. 그 날을 우리가 기억하고 그 날이 우리를 기억한다. 그런 관계의 연속이 삶이고 인간다움이다. 우리는 싫어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부여된다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 화폐라 약속하고 화면 속 오르내리는 그래프로 우리의 자산이 움직이는 걸 본다. 모두 그 자체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모두가 그렇다. 우리는 모든 것들을 필요에 의해 가치를 부여하고 없는 것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지불한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리란 약속이 있었고 믿음 위에 세워진 사회와 국가는 우리가 통제됨으로 가장 자유롭고 안전함을 느끼도록 한다. 그 실체가 존재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약속했다. 인간의 모든 것들은 이런 식으로 부여된 것이기에 허무하면서 동시에 고유하다. 무자비한 폭력과 무질서, 생존 욕구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가치를 부여하고 약속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작동하기에 우리는 삶의 모든 것들을 스스로 부여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사소한 일부가 기념일이고 나아가 삶의 전반적 방향성과 목적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돌과 나무를 그대로 쓰지 않고 뜻에 맞도록 가공하고 변형한 뒤 가치를 부여하며 발전했다.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선사시대의 뗀석기를 가져다 놓아도 길 가의 돌맹이와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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