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였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

Onetime bestseller - Nell

by 노예올빼미

-


유행은 끝없이 이동한다. 메뚜기떼처럼 무리지어 땅의 모든 것을 소모하고 황폐화된 땅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난다. 지나간 자리는 철 지난 유행이란 이름으로 불리운다. 그 순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해의 베스트셀러들이다. 화석처럼 자리잡은 그 형태를 우리는 추억처럼 찾아가고 그때를 추억한다.


베스트셀러, 우리가 누렸던 것들, 우리가 느꼈던 베스트셀러의 순간들은 언제일까. 우리는 왜 누군가를 오랜기간 만나오며 그때 당시의 모습으로 끝없이 마주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의 모습으로 어울리는 것. 10년이 지나도 우리는 그때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좇는다.


대학교 이전의 기억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아 패스하고 20살부터 천천히 돌아가보자. 나는 20살 때 어떤 사람이었는가. 왜 내 삶의 2019년 상반기 기억은 남아있지 않는가. 그게 내 변화의 핵심이었다. 늘 혼자였고 늘 집이 좋았고 늘 게임이 좋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길 원했고 그러면서 쉬운 방법만을 택했고 그 와중에 욕심은 있었다. 내 찌질함의 역사가 절정이었던 그 순간. 밖으로 나기기 시작한 그 순간이 내게 결정적이었다. '아름다운 가게' 그 이름 아래에 펼쳐진 무궁무진한 나의 생각과 고민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어쩌다 기계공학과를 고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 중 겪은 실패 속에 내가 아직 버리지 못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동아리 활동이라곤 하지만 내가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단순히 착한 사람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늘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신경전들로 눈치를 기르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아갔다. 나는 미천한 방구석 벌레였기에 살아남고자 격하게 요동쳤다. 아직까지 누군가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는 연습이 미흡했던 나머지 내 삶의 첫 실패와 충격들이 포진되어 있는 시기이다. 나라는 인간이 형성되기 위한 테크트리의 시작들이 이 순간에 시작되었다. 그 순간 나는 서서히 고등학생 티를 벗기 시작하였다.


21살, 코로나가 찾아오기 시작한 그 순간. 서서히 멈춰가던 시간에 맞춰 나도 서서히 멈춰가기 시작했다. 현실을 마주하기엔 너무나 파란만장하고 꽃으로 가득했던 내 머릿 속, 처음으로 피웠던 꽃밭이 너무도 소중해 당연히 지고 꺾이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군대를 가기 전까지 서서히 나조차 시들어감을 느꼈다. 사람을 너무 쉽고 사람에 너무 쉽게 실망하던 나약하고 어린 내가 가장 이기적이던 시기. 이기적이란 말이 어려운 말이 아니다.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에 몰두하던 그 시기. 남들의 생각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 그 모습으로 상대도 나를 봐야했고 그렇기에 원래 그렇지도 않았던 그들에게 나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길 반복.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자각보다 먼저 사람에 대한 불신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군대로 들어간 나는 불신을 안고 사회생활을 배워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어보일 때가 있어야 하며 참으며 배려해야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굴러가는지, 사회의 더러움을 군대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느꼈다. 동기들에게 연락하지 않으라 선언하고 철저하게 내 일에 집중하며 책임의 재미와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며 내가 어떤 순간에 내 일에 희열을 느끼는지 찾아가고 있었다. 전공을 포기하고 소방공무원을 꿈꿨다가도 새로운 대학 생활을 꿈꾸기도 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참 방황하던 시기였으며 동시에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질문을 던지던 시기였다. 유난히 생각할 시간이 많다던 군대에서 더더욱 생각할 시간이 많던 보직에서 나는 내가 살아온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줄을 찾기 위해 몰두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이것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와는 사뭇 다르다. 내가 나를 완전히 알기 전까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렵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선 내가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 알아야 한다. 좋아한다고 믿어왔던 일들은 생각보다 나 스스로 최면의 결과인 경우가 많으며 수많은 고난 속에서 식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알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힘들면 운동을 하던 습관은 내 삶의 육체적 활동에 대한 필요성을 상기 시켰고 덕분에 재미를 붙여 꾸준히 해올 수 있었다. 간지나는 보직을 위해 먼저 나서고 고민하고 노력했던 순간들이 내 삶의 방향성, 내가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향성을 제시에 어떤 인간상이 되고 싶은지 알게 해주었다. 1호차를 구한다는 반장님의 말에 가장 먼저 내가 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 기억의 내가 있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대기하는 것보단 수송부에 내려와 누군가와 섞여 일을 함에 더 즐거움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는 것, 나는 내가 어떤 곳에서든 역할이 부여되어야만 활력을 느낌을 깨달았다. 즉 내가 필요로 할만한 사람이 되는 것-기술이든 실력이든 안목이든- 그럴만한 능력을 길러야겠다는 다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모든 행동에 무게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대대장 비서 역할, 그런데 나는 그 부담감이 싫지 않았고 그 책임감이 좋았다. 그렇게 내 삶의 좌우명, '책임이 커지는 방향으로 살아가자'가 되었고 군대에서 찾아왔던 동아리 활동의 소식에 내가 다시 하고 싶던 창작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나는 무엇인가를 끝없이 만들고 생성해야 했다. 그게 그림이었고 글이었고 영상이었다. 모든 순간들은 누군가가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을지도 모를 상황에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유와 정도를 탐구하며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야 내가 필요한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았으며 그제서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괴로운 기억없이 누구에게나 편하게 다녀왔다고 할 수 있는 군생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1호차라는 특수한 보직만의 이유가 아닐 것이다. 분명히 난 시간을 잃었다기엔 얻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고 내가 나를 완성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깔아둔 것이었다. 그럼에도 제대와 복학이 이뤄진 후는 괴로웠다. 이전에는 없던 책임이라는 집착이 오히려 짐이 되어 돌아온 동아리에서 나를 괴롭혔고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그런 모범적인 선배가 되고자 고민하고 고통받았다. 생각해보면 그때 2022년 23살의 나는 참으로 어렸다. 그때 보았던 동생들이 그때의 내나이가 되었다. 내가 보기엔 여전히 어려보이는 그 동생들의 나이엔 나도 남들에게 그런 어린 아이였겠지. 그럼에도 나와 비슷한 나이의 동기와 높은 기수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필요도 없는 짐을 짊어졌다. 중용을 찾기 위한 과도기에 겪었던 책임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립하기 좋은 순간이었다. 이때의 고민은 25살까지 이어진다. 힘들던 때에 자전거를 타고 카메라와 함께 하던 광안리와 해운대의 밤은 아마 잊지 못할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감정의 몽환감은 평생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을 다시 느끼기엔 나이를 먹어버린 탓일까. 그립다.


그 다음해는 수많은 새로운 경험과 동시에 내 인생 속 가장 바빴던 시기이다. 영화 촬영, 3학년 시간표, 주 3일 배달 알바 그리고 연애까지, 단 하루도 집에서 나가지 않던 적이 없던 말이 안되는 순간들이었다. 시험공부와 영화 기획를 동시에 소화하고 수업을 들은 그 당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알바를 한 뒤 월요일엔 5시간 남짓 자고 다시 수업을 들으러 갔다. 모든 학점을 가득 채운 전공 수업 속에서 가장 어려운 과목들을 들으며 4년 중 가장 높은 학점을 얻어간 1년이었다. 차를 얻게 되며 내 삶의 세계가 넓어지고 하지 못했을 것들을 경험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경계를 넘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성인이라고 부를만한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으며 동아리 임원으로 임하며 생길 수 있는 모든 경우에서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수용적인 생각을 기룰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여기까지 두고보면 참으로 동아리 활동 자체에 둔 가치는 나자신보단 동아리였던 것 같다. 좀 더 재밌는 동아리가 되면 좋겠고 내가 느낀 감정을 다른 동아리원들도 느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오만함이었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나를 탐구하기 위해 끝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게 묻고 내가 답하고 타인이 본다면 재미는 커녕 불쾌할지도 모를 글들을 써내리며 이유를 알고 싶었다. 뭐든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넘어가질 못하는 그 성질이 나 스스로에게 발동되었고 무엇을 물어볼지 몰라 인터넷이든 책이든 보이는 모든 물음에 스스로 답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듯 나온 단어에 꽃혀 끝없이 내 생각을 나열해보고 다시 읽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싶은지. 은연 중 내가 비춰지면 좋겠는 나의 모습을 알아보고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자 했다. 힘듦을 느끼면 왜 힘든지 행복하면 왜 행복하다 여기는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왜 그런 생각에 빠져드는지 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아 나에 대입해보고 다시 정리하였다. 세상엔 철학과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누구나 할법한 고민들을 앞서서 해냈던 사람들의 기록물들이 넘쳐난다. 같은 주제의 다양한 견해 속에서 나만의 철학을 완성해나가고 해석했다. 모든 근거와 자료들이 나를 설득시키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었고 난 나를 믿기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잘 알게 되어갔으니.


슬펐다. 무엇인가 한없는 우울함이 느껴졌었다. 그와 동시에 피어난 내 마음 속 무언가는 갈증이 아니었을까. 무엇으로도 해소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바닷물을 끝없이 마시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급했던 것일까. 혼자 쫓고 쫓기며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술래잡기에 잠에 못드는 새벽이 수십번, 가장 한가했고 생각할 시간이 많았던 4학년 2학기, 그 순간 나는 가장 스스로에게 갇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를 위한다는 말이 오히려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넘어가는 썩어버린 나무들. 내 마음에 자리잡았던 썩은 생각들이 말끔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졸업하고 싶었다. 미련은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생각을 놓지 못한 것이기에 제대로 된 샘을 찾기 위해 벌떡 일어섰다. 그 발걸음 끝에는 내가 알던 것들이 아닌 땅이 존재했다.


그렇다. 뭐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삶이 그러했다. 추억이라 불리울만한 나는 늘 불완전했고 방황했으며 어렸다. 나는 과연 내가 찬란했다고 부를만한 순간이 있었을까. 지금의 내가 평가하기엔 내 눈이 너무 높아졌다. 어쩌면 그런 사실이 축복아닐까. 그리워할만한 시절이 없다는 것. 돌아가고 싶단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행운 아닐까. 행복의 역치가 낮다고들 하였지만 이전의 순간이 행복과 거리가 늘 멀었던 탓에 늘 행복으로 다가가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지금이 늘 어제보다 나은 것이다. 무언가 끝이 나더라도 배운 것이 있다면 앞으로 나아갔단 생각뿐이었다. 내 삶의 베스트셀러를 찾아봐도 다시 찾을 수 없다. 잔혹하게 피로 물든 내 옛날 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은 우울함과 분노뿐이었다. 그것이 과연 베스트셀러로 등극될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행복을 과도하게 좇는 것은 아니지만 늘 그런 고민과 생각 사이엔 나만이 알 수 있는 끝없는 추함과 잔악함, 더러운 면모들이 함께한다. 나는 그렇게 더러웠기에 회개할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다. 그렇기에 과거를 추억하고 싶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그런 생각들이 싫다. 그럼에도 그게 나임을 받아들인다. 괴로울지라도 그것이 나다. 그렇게 비겁하고 혐오스런 인물이 나다. 그걸 인정해야 나아갈 수 있다. 끝없이 생각하고 직면해야 지나칠 수 있다. 꽁꽁숨긴 내 이면의 모습들이 언젠가는 다시 고개를 내밀 것을 알기에 차라리 내가 나를 상대한다. 마주함 끝엔 또다른 추악함이다. 나는 진짜 정말로 그닥인 인간이다. 때론 최악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잘 알기에 그것이 때론 저주이기도 하다.


삶은 짧다. 누군가는 순식간에 내 삶을 스쳐 순식간에 멀어져가고 나는 준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기회는 지나치고 있다. 사회의 어려움과 달리 내가 느끼는 내 삶의 속도가 빠르다. 나이가 듦이 오히려 즐겁지만 영원할 것 같은 누군가의 얼굴도 한없이 늙어가고 멈춘 것 같은 지구도 끝없이 우주 공간을 나아가듯 직면한 지금 이 관계, 상황, 행복도 언젠가 떠나간다. 사람이 늙고 죽어감은 피할 수 없다. 그런 순간 속에서도 사람들은 과거를 베스트셀러로 펼쳐내 추억한다. 모두가 은연중에 그 짧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유행이 돌고 돌듯이 내 삶의 유행도 돌고 돈다. 내가 느꼈던 행복이 다음 해엔 하찮은 것이 될 수도 있고 그 다음 해에 다시 소중한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그때의 감정을 잘 기억해놓는 것. 삶은 짧지만 내 삶은 길게 써내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겪어온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매분 매초마다 달라지며 그렇기에 나도 무한히 변화한다. 모든 우주의 것들은 나라는 인간의 육체가 가진 오감으로 받아들이기에 필연적으로 해석을 동반한다. 진실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 모든 거짓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진리는 없고 모든 고통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삶에서 터져온 내 모든 시련들에 무너지는 것은 내탓이고 일어서는 것도 내 덕이다. 내가 지금 여기는 어제의 기억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하는 것도 그것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자가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돌아볼 날이 온다면 지금을 끝없이 추억하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즐거움을 찾아 현실에서 허우적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가치는 늘 바뀌기에 과거에 두었던 가치를 그리워 하는 순간이 올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의 무언가를 다시 찾아 떠나고는 한다. 한없이 우울해지고 외로워진다면 분명 즐거웠던 시기의 가치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친구보다 일이 우선시 된다고 가치로 두었던 친구들이 소중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까먹을 뿐. 괴로움이 몰려오는 것은 뒤늦게 찾아온 기억들과 함께다. 내가 더이상 악해지지 않는 선에서 내 가치를 지켜가며 살아갈 방법이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현대 사회에서 갈수록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일까. 왜 행복과 멀어지는 것일까.


나를 끝없이 알아도 끝없이 모르는 것들이 튀어나온다. 내가 나를 알아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그러고 싶던 것들이 내일 아니게 되고 울던 것들에 웃기 시작하게 된다.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은 짐승이겠다만 그럼에도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급류처럼 쏟아진 물들에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도 오는 것이다. 내가 이런 나인걸 어떻게 하는가. 그럼에도 노력은 해보는 것이다. 지금 이런 내가 왜 이런 것인지 알 수 없다면 차라리 알 때까지 버텨보는 것이다. 모르겠다고 놓아버리면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겠는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성숙한 어른 아니겠는가. 책임조차 지지 않으며 선택을 번복하며 끝없는 상처를 늘 주고 살아간다면 누가 남겠는가. 지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악하지 아낳고 추하지 않아지고 싶지만 늘 가장 큰 걸림돌은 나다. 나는 내가 가장 어렵고 무섭고 두렵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괴로운 때가 있다. 원인을 알아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내 모습들을 마주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기분이다. 내가 그럴 수 없다 여김에도 버티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나를 알면 알수록 알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나도 나 자신을 속이고 배신한다는 것. 그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묘미 아니겠는가. 그런 부분들을 억눌러야 할지 어떻게든 해소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이성은 늘 언제나 강할 수 없다. 사람은 늘 언제나 단단할 수 없다. 그렇기에 두려운 것이다. 내가 약해진 틈 사이로 세어나올까 두려워 늘 힘들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나중엔 힘들지 않은 척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어지곤 한다.


베스트셀러, 그 속에는 늘 날붙이가 있다. 사람이 관련된 모든 것에 절대적 답은 없다. 세상은 늘 변해왔고 여기던 선은 늘 바뀌어 왔다. 베스트셀러는 그 당시의 진리따위로 여겨지는 거짓된 위상을 대표한다. 언제든 부숴지고 다시 세워질 수 있는 광장 한복판의 동상같은 것. 한 때의 베스트셀러, 왜 유행은 지나갈 수 밖에 없는가. 사람이 멈춰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행이 어떻게 튈지 모르는 것처럼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게 두렵다.


-

작가의 이전글기록들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