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 - 브라운 아이드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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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산 톨게이트를 앞두고 1km 남짓, 우렁차게 달리던 1.7톤의 차의 시동이 펑하고 꺼졌다. 시속 120km에서 정지까지 길지 않은 시간동안 뭐가 문제일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까지 일거란 것도 말이다. 놀람보단 안심이 더 컸던 것은 이렇게 되리라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방정비를 하기엔 너무 큰 항목이기에 굳이 건들이지 않고 있었고 운전 중 늘 마음 한켠에 그런 상황을 염두 해 두고 있었다.
이별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23년 3월부터 25년 12월까지 5만키로를 함께한 특별한 사이였지만 우울함이나 좌절따윈 없었다. 낙천적인 성격의 탓보단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 더 컸던 것 같다. 순식간에 다음 차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인스타를 보고 있자니 정이 들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모든 이별이 그렇다. 이제는 그리 두렵지 않다. 모든 인연이 끝나리란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 지내던 인연들 중 이제는 더이상 기억조차 힘든 이들이 더 많다. 그렇게 정을 주고 친하게 지냈던 이들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누구보다 끈끈하게 붙어 일하고 고민하고 웃던 군대 동기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별이 아쉽지 않다. 예전엔 너무도 괴로워 했건만.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비용에 대한 미련이 안남기에 더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아마 이에 대한 아쉬움은 모두 이런 매몰비용의 오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순수성이 더럽혀진다면 분명 무의식 속의 내 욕심이 반응할 것이다. 무언가를 원했고 기대했던 것들이 내게 댓가의 형태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 그런 것이다. 순수하였다면 그런 순간도 받아들여질 것이고 다시 또 맞닿게 된다면 전혀 불편함 없이 다시 마주하리라. 모든 행동에 의도를 담지 않는 그런 순수함이 중요한 것이다.
늘 그렇듯 인간 관계의 투명함을 흐리는 것은 몸부림치는 우리다. 우연처럼 맞닿은만큼 우연처럼 멀어질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물건도 마찬가지고 가치가 높은 금붙이따위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곤 한다. 내가 나 자신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내가 아닌 것을 어찌 마음대로 소유하려 들겠는가. 나도 내가 의도하는 방향대로 온전히 조종하지 못한다. 가끔은 해야하는 것도 미루고 단순한 화학반응에 이끌려 본능에 따라 작동한다. 내가 나부터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일이다.
떠나가는만큼 찾아오는 것이 있다. 새로운 것을 위해선 가끔 옛것을 놓아야 한다. 손에 한웅큼 쥐고서 또다른 것을 나를 순 없다. 욕심이 곧 정체되게 하는 것이고 적정을 지키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다. 육체의 한계는 명확하다. 정신의 한계도 명확하다. 그 범위 내에서 내가 감당 가능한 만큼만 관계를 가져가게 된다. 그렇기에 성인이 되고서의 인간관계는 확장보단 가지치기에 집중하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진짜 열매가 날 가지를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썩어버린 것은 과감히 끊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 순간의 판단은 각각에게 달렸지만 판단의 기준은 상대보단 내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았던 기억이라도 과거와 현재의 공백이 너무 크다면 그 사이의 간극이 너무도 벌어져 있을 것이다. 과거를 생각하며 얘기를 해도 멀어진만큼 서로가 더 노력하고 신경써야 할텐데 그럴 체력과 의지가 우리는 더이상 없다. 차라리 꾸준히 만났었거나 처음부터 그럴 일 없는 인연이었다면 나을텐데. 오래 전 친구는 어쩌면 남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 사실을 알기에 과거로부터 미련이 아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돌아가고 싶단 마음조차 사라진다. 그 과거를 들고 있는 지금이 좋은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이별은 생각보다 더 쉽고 간편하다. 물론 이것은 죽음과는 완전 다른 얘기이다.
바닥이 차갑다. 한순간 공허함이 존재한다. 그것은 분명 슬프지 않은 것과는 다르다. 모든 유에서 무로의 전환은 그 빈 공간만큼이나 허한 마음이 남는다. 마음 속 빈 공간에 바람이 드나들며 쌀쌀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추위에 익숙해지거나 다른 것으로 채워 넣는다. 새로운 무언가로 덮어 씌워 흐려지게 만든다. 잊고 싶은 일들도 마찬가지다. 그만 보고 싶단 마음에 그만하자고 선언하더라도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데이터를 삭제한다고 실제로 삭제 되는 것이 아니라 삭제 되었다고 표시만 해놓는 것처럼 우리도 잊을 수 없다. 다만 흐려지게 하는 것일뿐.
마음에 두고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없지 않을까. 대비하는만큼 충격은 덜하고 힘듦도 줄어든다. 그게 어떤 것이든. 새로운 것은 끝이 없다. 특별히 대체가 되지 못할 몇을 제외하면 우리는 매몰비용에 대한 후회에 빠지는 것이다. 그로 인한 괴로움으로 방황은 기회비용이 될 뿐이다. 과거는 지나간 것으로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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