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공포 2

나의 거짓말은 새벽 늦게 자는 것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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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반댓말, 공포. 앞에 펼쳐진 것에 대한 이야기. 보이지 않은 것이지만 마치 보이는 것인냥 표현되는 것. 어두움은 부정적, 밝음은 긍정적. 앞이 보이지 않으면 걸을 수 없고 아무 것도 없으면 주저 앉을 수 밖에 없다.


무한히 반복되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자각하는 순간 공포가 시작된다. 좋아하던 것이 아니더라도 당연하듯 걸어온 이 길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우린 멈춰선다. 희망이 부러진 그 순간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란 믿음이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숨막히는 하루들을 지탱할 수 있을테지만 그런 경우조차 없다면 무슨 느낌이겠는가. 많은 것을 바라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저 먹고 잘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유지를 하기라도 한다면 다행이라 여겼을 것이다. 모두가 꿈꾸는 '평범함'이라도 좋다. 그것이 희망만 될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쌓여가면 사람들은 희망을 잃는다.


희망은 뛸 수 있게 만든다. 지각할 것 같은 사람은 뛰지만 이미 지각인 사람은 걷는 것처럼. 삶에서 뛸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가능성이 보이는 것에 노력하게 만들고 땀을 흘리게 한다. 정해진 운명이었다면 그랬을리가 있겠는가. 배고픈 하루를 넘겨가며 미래를 그리고 그 밑그림에 하나 둘 색칠해가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인생이란 시간을 정해놓고 그리는 그림이기에 완성은 없고 끝없이 그 위에 디테일을 더해가는 것이다. 다만 모든 사람이 밑그림대로 그려낼 순 없고 계획은 언제든 바뀐다. 그 한가운데에 서서 처음과 달라지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무슨 기분일까.


눈을 뜬 아침. 충분히 잠들지 못함에도 다시 잠들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날이 있다. 집을 나서기 전 충분한 시간이 있음에도 뜬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다가 더이상 늦출 수 없을 때 움직이는 그런 날이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피로감에 다음 날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내일도 알람을 맞추고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지금보다 나아지리란 나지막한 희망이 내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높은 확률은 사람을 무던하게 만들고 낮은 확률은 희망을 품게 만든다. 같은 일에 두고 달릴 수 있는 나를 만들려면 희망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높은 목표를 잡는다. 쉽게 잡지 못할만큼 큰 목표. 그러하면 그 목표가 부서지더라도 파편은 커다랗다.


공포는 죽음과 같은 근원적 공포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우린 투자로부터 생기는 손실,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한 것에 대한 실패, 인간관계의 붕괴 등이 더 살결 가까이 스쳐가는 공포다. 공포는 리스크에서부터 오는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명확한 기준이 없더라도 우리는 더 잃기 두려운 것을 피해 도망친다. 책임을 모두가 피하려고 하는 것도 얻는 것은 없지만 잃을 것들이 커져가기 때문이다.


희망과 공포는 연결되어 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공포도 희망으로 뒤바뀔 수 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공포에 잠식당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빠져들게 된다. 생각이란 연소반응을 통해 내 수명을 태워버린다. 그러다 불현듯 끝을 맞이하기도 한다. 희망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상황이 문제면 바꿔야 하며 환경이 문제면 옮겨가야 한다. 내가 오랫동안 나의 것이라 믿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 차라리 아니라는 확신이 되면 공포는 사라진다. 공포와 희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마음이다. 두렵다면 차라리 장막을 들춰 확인을 하는 것도 지혜이다.


잠이 들기 전 느껴지는 많은 것들. 생각들 중 희망을 끄집어 한참 들여다보다 잠으로 사라진다. 마치 주마다 사는 복권처럼. 내 인생에 배팅하고 벌어질지도 모를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고 떠올려보라. 그것이라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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