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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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지독한 취기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 모름을 알게 되면 무엇을 알아가야할지 알 수 있는 것. 쌓아가는 것은 별 것 아니었음을 깨닫고 그와 동시에 중요하단 것을 알게 되며 헛된 것은 그 어느 것도 없음을 확인하게 된 순간. 아무리 내게 힘들고 고된 순간이었다고 한들 그 모든 것은 내게 얼마나 큰 공부였던가. 내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 어느 1년보다도 격동의 1년이었으며 마치 허물을 벗기 위한 그 과정을 통째로 옮겨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1월부터 6월의 시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들이 훨씬 더 긴 느낌이다. 오죽하면 그 앞의 6개월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부산을 떠나 인천과 서울의 새로운 삶은 충분히 충격적이었고 내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대부분이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수많은 새로운 인연과 세계, 내가 겪어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들이 쏟아지듯 다가왔다. 모두가 나와 내 주변 사람처럼 사는 줄 알았건만 이 세계에서는 모두가 이런 삶을 살고 있었다. 하루를 쪼개서 2가지 이상의 일을 쳐내고 눈에 불을 켜고 다음 일을 찾아 나선다. 열정은 기본이며 식지 않고자 고뇌하고 때론 번아웃까지 오는 삶. 모두가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내 뇌의 환경이 또다른 곳의 틀에 맞춰지고 있었다.
두 단어를 뽑아보자. 첫번째로 떠오른 단어 '갈증'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올 무수한 두번째 단어의 후보들. 그럼에도 간신히 골라내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면 '서울'을 뽑아도 무방하겠다.
갈증은 목마름이다. 목이 쩍쩍 갈라지고 속이 쓰리며 때론 힘조차 안나며 탈수가 오듯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갈증은 필수적으로 채워주어야만 하는 욕구. 분명히 채워지지 못하면 죽음에도 이를 수 있다. 그 단어가 내게는 늘 존재했다. 내 마음 한켠에 언제나 존재했다. 모습과 풍기는 향이 매번 달랐지만 모두 갈증이었다. 바다를 떠나 민물을 찾아왔다고 마실 수 있는 물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끝없이 걷고 찾고 고민하며 그 과정에서 찾게되는 썩은 물과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물들. 절망보단 독해져야겠단 결심뿐이었다.
일을 하고 싶다. 끝없이 하고 싶다. 하루하루가 바쁘면 좋겠단 생각을 매번한다. 차라리 어디를 들어가 일을 할까란 생각도 한다. 정기적으로 출퇴근하던 알바가 안정감은 훨씬 뛰어났다. 어딘지 모를 밀림에서 다음 구역에 내가 먹을 것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 계속 나를 던져야 함을 알기에 혹시나 몰라 끝없이 아끼고 절약한다. 일에 대한 갈증은 곧 돈으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늘 2~3개월을 염두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란 오만함까지 든다. 분명히 작년, 제작년의 나라면 진작에 때려쳤을 것이다. 긍정의 힘으로 견디기 힘든 무한한 스트레스가 올 때가 있다. 그래, 생각은 연소반응, 스스로 되뇌인 그 문구를 통해 생각 자체를 그만둔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중단해본다. 먹을 것에서부터 사치를 줄이고 최대한 아끼는 방향으로 살아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나 잘 통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내 욕구 조절하며 살아가는 것에는 능하기에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단 마음 자체가 사라졌고 비싼 것을 사야한다는 강박도 사라졌다. 괴로움으로 느껴졌던 갈증에 대한 스트레스도 당연함을 치환해 넘겨버렸다. 글을 쓰며 늘어난 것은 글솜씨나 논리적 의견 제시따위가 아니다. 내가 나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여태 해왔던 것은 나에 대한 메뉴얼을 작성하는 과정같은 것이었기에.
사람은 늘 어렵다. 늘 고맙고 늘 믿기 어렵지만 믿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 가장 어려우면서 가장 친근해지고 같은 처지일수록 이해할 것이 많지만 서로에게 가장 쓸모없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일을 해보면 아리라 믿는다. 사람 간의 감정은 마음으로 오가지만 철저하게 뇌로 판단해야한다. 그게 기본으로 깔리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살면서 만나온 수많은 인연들, 정말로 감사하게도 늘 내게 큰 도움이 되고 공부가 되었다. 일일히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나열하진 않겠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만으로 25년을 살아오며 올 한해 내 인생의 평가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짧게 만난 누군가에게도 좋은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었고 이쁨 받을 수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봐왔던 누군가로부터는 댓가없는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헛되게 살지 않았다.'난 이 한줄이면 충분하다. 이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단 사실만으로 내 삶의 만족도는 너무도 높다. 갈증을 느끼고 경제적 허덕임은 그 외의 문제다. 그것이 내게 불행을 주진 않는다.
인생은 늘 작은 상자같다고 생각했다. 뭐든지 담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내가 담을 수 있는 것은 너무도 작았고 그렇기에 담아내기보단 덜어내며 굳이 버리기보단 나누려고 했다. 내가 받은 것들이 있기에 그만큼 나눠주는 것은 꽤나 바람직해보이지 않는가. 항상 말해왔던 들고 갈 수 있을 무게만큼만 담는다는 것이 내 모토 중 하나였다. 25년엔 가득 채우는 한해보단 내가 걸어온 발자취의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이었고 내가 주워담은 것이 아니라 쥐었다가 내려놓은 것 또는 진작에 포기했던 것들도 돌아봤을 때 그 걸어온 길 위에서 반짝이며 빛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멈추는 것보다 끊임없이 걷기를 택했던 삶에서 의미가 없던 기억은 없었고 때론 내 삶의 별자리가 되어 내 앞길을 알려주기도 했다. 쌓아온 기억들, 내 수많은 별자리들. 잊혀지기 시작했더라도 그때 그 자리에 떠 있단 사실은 자각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사람으로써 내려진 축복이다. 그 축복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현실을 도약하며 다닐 순 없다. 나보다 뛰어난 이들은 늘 존재하고 인생을 숫자로 계산하면 내가 가진 것보다 좋은 것들이 언제나 존재한다. 쓰던 제품도 새로운 제품이 늘 나오고 시장에는 나보다 젊고 능력이 뛰어난 누군가가 늘 나타난다. 그럼에도 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 시작이다. 무너짐은 내가 나에게 일으키는 일이며 절망또한 나 스스로 나를 내려 깎음이 시작이다. 내가 하는 일이 괴로움이 되는 것도 내가 자처한 일이며 내가 괴롭다 여겨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죽을듯 힘들어도 하고 있단 것은 아직 그 일에 대한 좋은 점이 남아있단 반증이 된다. 늘 살아가며 좋은 것만 생각해도 모자라고 힘들 때가 있다.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무장해도 육체적 한계에 다다르면 힘들다. 정신력도 신체적 체력에서 오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늘 건강하게 살아야 하고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을 지켜야 한다. 나는 그걸 위해 늘 공부하고 노력했다. 내가 왜 괴로운지 힘든지 자각하는 순간부터 괜찮아졌다. 지금 이런 내 인생의 격동기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함에 있어 내가 지치고 싶지 않기에 택한 생존 방식이다.
적어도 25년 한해동안 끊임없이 지켜낼 수 있었다. 내가 하고픈 일을 하며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내가 지켜내고픈 20대의 추억과도 같은 동아리를 여전히 추억하고 사랑하며 그와 동시에 현재도 놓치지 않았다. 내 건강을 위해 가능하면 늘 운동을 병행했고 굳이 가리지 않고 일을 하려했다. 가까운 것보다 멀리멀리 보는 법을 배웠고 바로 앞에 떨어진 불똥을 보고 곧바로 꺼질 것인지 게속 커질 일인지 구분하는 법을 알았으며 책임져야 할 일에 직면하는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했다. 이 모든 것에서 도망치면 모든 게 소용없이 질 것 같았다. 내가 가진 유일한 두려움은 내가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그에 대한 우려가 내가 살고 있는 한국, 나아가 지구 전체의 경제적 배경을 보고 있을 지경에 이르렀다. 경기가 안좋아 내 일이 줄어들면 어쩌지? 국가적 분쟁이나 외교적 마찰이 내 업무에 지장을 주면 어쩌지? 그래서 뉴스나 시사에 더 눈을 돌리게 되었고 내 귀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들을 담고 정리하고 그에 대한 인과 관계를 분석하고자 노력했다. 때론 건방지게 변할 때도 있었지만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고 모든 것을 알려했던 욕심을 내려놓고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전문가를 신뢰하는 법도 배웠다.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대우만큼 상대를 대접해주라 했던가. 신뢰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파 신뢰를 주었고 그 와중에 때론 적절한 대비를 통해 그러지 않을 때에도 충격을 받지 않았다. 늘 좋은 사람만 있을 수 없고 늘 내게 좋은 일만 일어날 순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26년이 기대가 된다. 오르막을 오르고 있단 것은 다음 계단이 반드시 오리란 믿음이 생긴다. 내가 성장하는 것이 있단 만큼 내가 바뀌고 있는 것이 있단 것이고 그만큼 고민할 것도 많아질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이 많아지면 그만큼 앎에 대한 댓가가 생기듯 높은 곳에 올라가려 하면 준비해야할 것도 많을 것이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내가 그 곳에 오르면 어떻게 하지란 고민이 다 의미 없단 것을 깨달았다. 일은 저지르고 해결해나갈 수 있다. 거짓이 없었다면 상대도 감당가능할법한 수준을 부탁한 것이니 땀을 쏟아가며 해치우면 된다. 못할 것은 없다. 그렇게 대단한 이들도 나와 같은 순간이 있었을테니. 늘 매년 그래왔지만 이번 해가 내 인생에 가장 큰 분기점인 것 같고 아마 내년에도 똑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그 느낌이 영원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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