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안개 속처럼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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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우연히 유튜브 좋아요를 눌러둔 재생목록을 들어갈 일이 있었다. 눌러놓고도 다시 잘 꺼내보진 않았던 버리지 못한 물건들 담아놓는 상자같은 공간. 다시 볼거였으면 나중에 볼 영상에 넣어두고 진작에 다시 봤다. 1400개가 조금 안되는 그 숫자에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렸다. 너무 많이 쌓아뒀다고 선입선출 식으로 옛것부터 사라지는 구조가 아니어서 약 고2에서 고3무렵부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렇게 가장 첫 영상, 아마 카스글옵의 플레이관련 짧은 영상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하나씩 올라가며 먼지와 함께 쌓인 잡동사니 분리수거를 시작했다.


아주 높은 비중으로 노래나 그와 비슷한 것들이 나오고 그 뒤로 게임과 자동차가 뒤를 이었다. 그래도 적어도 내가 봤던 기억이 남아있는 것들이었지만 중간중간 도저히 고민해도 처음보거나 들은 것이 분명한 것도 섞여 나왔다. 그런 것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더 납득이 어려웠다. 흡사 기억의 필름 일부가 잘리고 이어붙여진 느낌이었다.


사실 살면서 우리과 과거를 다시 휘젓다보면 내가 넣은 것인지도 모를 재료들이 떠오르곤 한다. 친구와 나의 기억이 달라 친구 탓을 하기엔 그저 내 기억이 너무 불확실하다. 그런 때가 오면 생각보다 훨씬 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고 자각한다. 장기 기억으로 넘어오지 못한 것들은 그저 그런 실루엣만 남기고 형체는 사라진다. 마치 태양볕에 드리운 내 그림자가 벽에 흔적을 남기듯 그저 무언가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만 남는다. 대표적으로 내게 엠씨더맥스의 사랑의 시가 그러하다.


우연히 듣게 된 이 노래. 너무도 익숙한 전개와 후렴, 가사가 머리를 멤돈다. 분명 들어본 적 있다. 엠씨더맥스가 부르지 않는 버전으로. 분명히 기억한다. 창법과 높낮이, 라이브로 부른 이유로 소리의 크기마저 오가는 옛날 영상 특유의 소리까지. 후렴을 가성이 아니라 진성으로 처리한 것마저 기억난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런 커버는 없다. 본인이 진성으로 부른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이와 매우 비슷한 허각의 혼자 한 잔을 들어봐도 이것도 아니다. 분명 존재하는 기억이라 여겼는데 찾아갈수록 내 기억과 다른 것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 재생목록 속 수백개가 넘는 노래 중 그런 노래가 몇몇 있었다. 들어본 기억이 없는 라이브나 생각한 것과 다르게 불러진 노래들. 기억은 때론 기억 해내는 것과 못해내는 것을 제외한 이상하게 기억한다는 또다른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게 생각보다 나를 훨씬 더 혼란스럽게 한다.


내가 소장한 노래 목록에서도 그런 곡이 가끔 튀어나온다. 수백 수천 곡 사이에서 듣도보도 못한 노래가 튀어나오고 어쩔 땐 인생곡이 되기도 한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디깅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도 한 것이다. 그런 기억의 불연속은 완전함이란 착각 속에서 이상한 현상을 일으키곤 한다.


내가 나와의 신뢰 관계가 느슨해질 때 비로소 끊임없는 확인을 하게 된다. 분명히 눈으로 보고 읽었음에도 서너번은 확인하고 숫자를 제대로 더했는지 확인하려고 계산기도 수없이 두드린다. 마치 시험에서 답안지를 제출하기 직전처럼. 살면서 그런 실수에 대한 경험과 두려움을 겪어본 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재생목록, 지워지지 않은 무한히 쌓여가는 나의 메모리 속 mp3 파일들은 그런 불완전함을 필연적으로 안고 간다. 중요하진 않았지만 사소하지 않았던 것들에 반가움을 느끼고 또한 당혹스러움도 느낀다. 내가 온전히 기억하고 조종하는 내 의식에도 불완전함이 있고 술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내게도 이런 불안정성이 내재되었단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내가 나 일 수 없음이 싫어 끊었는데 내 기억이 온전치 않다면 그러지 않을 수 있단 것 아니겠는가. 기억으로써 정의되고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 인간인데 그렇다면 기억을 혼동하게 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공포인가. 기억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 다르다. 마치 조현병처럼 내가 알고 믿던 것들이 사실 완전한 거짓이란 것일 수 있다니.


살아가며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품고 있는 것들이 있다. 기억의 매개, 매질, 촉매처럼 어떤 사진을 보면, 어떤 노래를 들으면, 영상을 보면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떠오른다. 그것이 내겐 사진보단 재생목록이고 그때의 노래를 듣던 나의 어린 모습들이 생각난다. 그 기억도 언젠가 다시 사라지고 튀틀리며 심지어 그것이 사실이라 믿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섬뜩하다.


온종일 옛 영상과 노래를 들으며 집중했다. 1400개의 영상을 거의 일일히 확인하며 분류했다. 그렇게 지금은 130여개의 영상만 남기고 모두 지웠다. 서서히 거슬러 올라오며 영상의 업로드만으로 시기를 짐작하긴 어려우나 그때의 기억과 내가 흥미를 가졌던 시기로 어느정도에 추가된 좋아요인지 가늠하는 것도 나름 재밌는 체험이었다. 그 소름끼치는 당혹감은 뒤로 하고 일단은 다시 과거로 떠나고 난 뒤 내가 변해온 취향과 흥미를 둘러보면 참 재밌다. 어느 게임을 타고 변해가고 자동차에서 오토바이 영상이 추가 되고 노래 가수들이 서서히 바뀌어가고 사진 강좌에서 영상으로, 영상에서 편집으로. 가끔 들어간 뜬금없는 영상들과 재미를 느끼던 것들이 무표정으로 넘겨지고 그런 사실들이 생각보다 재밌는 경험이다.


그래서 옛날 노래들도 듣기 시작했다. 특히 그 시절의 게임들. 게임을 하며 별 생각이 들었던 노래들은 고2 고3 따위가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머무는 기억도 있다. 뇌에 뭐가 들어 차기고 전이라 그런가 게임과 노래에 대한 기억이 유독 선명하다. 하긴 그만큼 빠져 살았고 생각보다 학교와 집에서의 기억 외엔 밖에 돌아다니질 않았으니 기억에 남을리가. 물로켓 대회를 나가고 울며 돌아왔다던가 반강제로 부회장을 하고 학교 신문부를 하고 했던 기억의 흔적만 남았지 그 디테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긴 이 기억들은 촉매가 없으니. 그런 흐릿하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기억이니 어쩔 수 있겠는가. 내일은 다른 곳에 내 흔적을 남겨둔 목록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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