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그리고 청록 마지막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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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본 푸르고 아름다운 오로라. 눈 밭 위에 펼쳐진 색깔이 밤하늘을 밝게 채우고 추위를 까맣게 잊고 하얀 도화지에 은은하게 깔린 그 빛과 함께 부유하고 있었다
꿈에서 본 누군가. 늘 얼굴을 기억할 수 없는 그 어떤 누군가. 평생 중 스쳐가듯 본 누군가일테지만 기억해낼 수 없는 얼굴. 나는 온종일 괴롭혔다. 살면서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과 말투로 누군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분명히 그 사실만은 기억한다. 주눅들다 못해 고장나버린 표정을 보고 나는 희열을 느꼈다.
꿈은 늘 의미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그 씨앗은 분명히 내 머릿 속에 있다. 결석처럼 쌓인 나도 모를 것들이 구현되기도 하는 파편화된 것들의 실체화. 마치 그림자 놀이처럼 빛이 가려진 실루엣이 때론 본래의 크기보다 훨씬 크게 비춰지곤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휘발되어버리는 기억같지도 않은 것들은 왜 어째서 잔상처럼 남는 것인가. 그 일부에 나는 감정을 느끼거나 생각에 잠기는 것인가.
오로라만큼 기억에 남는 그 사람의 표정.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얼굴이 어떤 모양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는지는 기억한다. 나는 왜 그렇게 행동했으며 왜 기뻐했을까. 뭐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를 그렇게 증오하고 싫어하며 행동으로 뒤바꿔서 응징에 가까운 행위를 할만큼 큰 사람인가 하면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그정도의 비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꿈에 나타난 것일까. 내면의 무의식 속 욕구인걸까. 알 수 없는 내 무의식은 커다란 빙산의 일각처럼, 저 깊은 바다의 심해처럼 닿고자 하여도 닿을 수 없고 보고자 하여도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뻗어버린 내 손끝도 볼 수 없다. 내가 아닌 누군가는 나의 그런 심해를 관통하여 볼 수 있을까.
오로라를 보고 싶다. 직접 오로라를 눈으로 담아내고 싶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이 아닌 철저히 지구와 우주, 태양 간에 일어나는 초월적 자연현상. 어렸을 적부터 토네이도, 열대성 저기압, 쓰나미, 화산 등 처럼 어마어마한 자연현상이 늘 좋았다. 인간의 무력감이 느껴질만한 엄청난 규모의 무언가. 그런 상황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가장 자연적인 그 상황.
그렇다고 그 꿈 속에서 본 그 사람과의 상황도 그러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가장 불편하게 여길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꿈 속의 난 분명히 즐기고 있었다. 그 상황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걸까. 그런 일을 기필코 해내고 말겠단 다짐이 들정도로 그 사람이 싫었던걸까.
사실 꿈은 색이 없다고 한다. 흑백으로 이뤄진 꿈에서 우리가 채워졌다고 생각하는 색깔들은 그저 가지고 있던 기억에서 억지로 채워지는 자동완성같은 것이라 한다. 내가 본 그 회색의 오로라는 기억 속에 초록이고 청록이며 파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표정이자 얼굴은 살구색이었다. 그 살구색 일그러짐은 밤하늘의 오로라보다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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