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아카이브 - 신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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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계절에서 느껴지는 적막함은 외로움과 다르다. 아무렇지 않기에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렇기에 영원하지 않음은 비극이다. 죽음을 학습한 이후부터 우리는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영원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기에 영원이란 말에 집착한다.
디지털로 넘어오며 기록의 수단은 오히려 더 짧은 수명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나 쉽게 저장하고 옮겨질수록 소중함을 잃어 바스라지고 부서지고 만다. 찰나에 불과한 반도체 장치들의 삶보다 자연의 거대한 바위들의 숨이 더 길다. 너무도 많은 영원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그 소중함을 잃은 채 영원하지 못한다. 언젠가 끝이 있음을 알아야만 소중한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듯 끝나지 않으리라 여겼던, 어쩌면 그 끝이 너무도 두려워 외면했던 순간들이 서서히 다가오면 그저 무력해진다. 슬픔이나 두려움보단 허탈함과 공허함이 가득 채워진다. 영원할 것 같던 학창시절의 순간들은 이제 기억조차 잘 나지 않으며 영원토록 슬플 것 같던 이야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술 테이블 위를 오르 내린다. 끝이 나지 않을거라 믿었던 마음이 비극이 되고 그 비극도 결국 끝이 도래한다. 가끔 누군가는 그 감정조차 끝이 났단 사실에 더 공허함을 느낀다. 그 어느순간보다 가슴뛰던 순간들이 무뎌짐을 느끼고 그런 비영원성을 외면하며 습관적으로 또다른 "영원"따위를 찾아 나선다.
진실은 무력하다. 그때의 마음도 진실이었고 지금의 마음도 진실이다. 거짓되지 않았어도 진실이 더 가혹한 법이다. '오직'이란 단어가 '단지'가 되어가며 단단하던 옹벽도 결국 세월에 무너진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없다. 내가 변하지 않아도 내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바뀐다. 영원은 없다. 진실조차 영원하지 못하다.
사람의 마음들도 디지털화하며 많은 순간들이 영원하리라 여겨지기 시작한다. 사진 속에 웃고 있는 젊은 내가 영원하리라 믿고 어제했던 연락이 내일도 오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느시기보다 사람들이 느리게 성숙하고 빠르게 늙어간다. 변화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육체적 한계뿐이다. 아는 것이 고통으로 돌아오고 더 넓게 볼수록 더 많은 상처만 가지고 돌아온다. 그들의 순간은 영원같고 나의 영원은 순간같다. 매일보는 그 풍경, 지나다니는 그 길의 공사현장은 영원같고 저녁의 친구들과 즐거움은 순간같다. 아무렇지 않게 좇는 영원한 행복은 없다. 그렇기에 더 절망적이다. 실재하지 못할 것을 바라는 것이 가장 비참한 것이다. 영원은 없다.
나만 힘든 것 같고 세상은 놀라우리만큼 문제없이 굴러간다. 나라는 개인의 비극이 이 세상에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비참할수록 화창한 하늘과 웃고 떠드는 사람들. 내가 작아질수록 세상은 더 크게 웃는다. 내가 오늘 내일 나가던 나가지 않던 달라질 것은 없다. 정체되는 것은 나뿐이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의 대칭성이 성립하지 않기에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기억조차 휘발한다. 약해지고 연해진다. 파편화된 기억들 사이를 메우는 것은 원래의 기억들이 아니라 내가 지어낸 새로운 것들. 본래의 색을 잃어간다. 하지만 감정은 흉터처럼 남기에 그 감정들이 우리가 곧 사람이란 것을 자각하게 한다.
언젠가 모든 것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꼭 죽음의 형태가 아니어도 그러하다. 잊혀짐은 인간의 또다른 형태의 죽음으로 내 삶이란 장편 속에서 퇴장하는 누군가가 되어버린다. 이제는 물건보다 더 빠르게 소모되고 고장나는 인간관계들은 인간이 필멸하단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런 흐름을 즐기는 자가 있고 그러지 못한 자가 있겠다. 나는 전자의 사람이다.
영원하지 않단 것은 모든 것에 대입된다. 비가역의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슬픔과 동시에 해방을 주지만 비가역이라 하여 다시 찾아오지 않는단 법은 또 없다. 즐거웠다면 또다시 그런 웃음이 찾아올 수 있고 어제 힘들었다면 내일은 더 힘들 수도 있다. 다만 그렇기에 더 삶이 살아볼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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